▲ 윤기봉 중앙대 교수
[투데이에너지]  ‘질소 질식 주의, 관계자 외 출입금지’이런 경고문을 봐도 보통 ‘질소’라고 과소평가하기 쉽다. 하지만 환기가 잘 안되는 공간인 지하 공간, 밀폐공간에서는 2~3분 만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공장이나 지하 작업장 사고가 많았다.

요즘은 그냥 건물 지하에서도 사고가 난다.  깔끔한 연구실에서도 병원에서도 질소 질식사가 발생한다. 잘 인식하고 대비해야 한다.

올해 1월에 파주 LG 디스플레이의 설비 유지보수 작업 중 질소누출로 3명이 질식으로 사망했다. 지난 2014년 12월 한수원 신고리 건물 지하 밸브룸에 내려간 3명이 들어가는 대로 순차적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CSB자료에 의하면 1992년~2002년간 10년 사이 미국에서 85건의 질소 질식사고로 80명이 사망하고 50명이 부상했다. 연간 8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2003년에 질식에 의한 사망이 질소를 사용하는 분야의 중대한 위해요인(hazard)이라고 경고하고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2000년~2005년간 89명이 사망했다.

질소는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에 78%나 있다. 때문에 질소는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질소는 적당량의 산소와 같이 있을 때는 안전하다. 냄새도 없고 산화도 안 일으킨다. 청소할 때에도, 압력을 가할 때에도, 심지어 과자 포장에도 질소를 쓴다. 이는 착한 질소다.
 
근데 산소 농도가 줄어들면 상황이 달라진다. 산소는 불이 붙으면 소모된다. 텐트 안에서 버너를 켜면 따뜻하지만 산소가 없어지니 죽는다. 맨홀에서, 쓰레기 처리장에서, 아파트 지하실에서 뭔가 썩거나 부식돼도 산소가 소모된다.

산소량이 안 줄어도 상대적으로 질소가 늘어나면 효과는 같다. 질소 탱크, 질소배관, 질소 밸브가 같이 있는 공간에서 질소가 새어 나오면 그때 질소는 착한 질소가 아니다. 괴물로 변한다.    

공기 중의 산소는 21%가 정상이다. 19%이하만 돼도 사람이 오래 버티기 어렵다. 산소가 10% 이하면 치명적이어서 즉시 졸도·의식불명·사망 등에 이른다. 산소가 없는 질소는 대략 2번 정도만 마시면 뇌가 망가진다고 알려져 있으며 2분이 넘으면 정상인으로 돌아오기 어렵다. 물에 빠진 것보다 질소에 빠진 것이 훨씬 치명적이다.
 
많은 질소 질식 사망자가 동료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구조하려다 본인도 사망하는 이유다. 환기가 안되는 공간에서만 사고가 난다고 생각하는 것도 틀린 생각이다. 탱크 안의 다른 가스를 불어내려 질소 퍼징한 탱크의 입구 근처도 위험하다.

탱크 입구에서 작업하다 작업하던 자세 그대로 사망한 사례도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질소 위험 공간에 ‘들어가지 마시오’를 ‘접근하지 마시오’로 경고문을 바꿨다.

대부분의 질소사고가 산업시설에서 발생하지만 연구실 또는 병원 등에서도 발생한다. 호흡을 위한 공기튜브에 질소튜브를 실수로 연결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호흡 마스크를 달고 밀폐공간에서 작업하거나 잠수 작업하다가 공급된 공기가 부적절해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질소와 산소 등의 체결부는 의도적으로 다른 방식을 쓰는데 잠시 편의를 위해 교대로 썼다가 사고가 난다.

CO₂도 환기가 안되면 질식사고를 일으킨다. 액화질소 관련 탱크와 시설도 환기가 안되는 공간에서 사용하면 위험하다. 요즘 같이 지하 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상황에서는 환기 및 통풍 시설이 매우 중요하다.
 
환기팬의 작동 유무가 지하 공간에서의 목숨을 좌우하게 된다. 산소 농도가 항상 모니터링되도록 센서가 설치돼야하며 비상벨, 비상등과 더불어 산소 농도가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출입문이 자동적으로 잠기도록 해야 한다. 환기시설의 전원을 복수화해 전원이 백업되도록 해야 한다. 질소 질식사고의 패턴이 바뀌었으니 대책도 바꿔야 한다.

저작권자 © 투데이에너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