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투데이에너지] 산업부는 지난 3월7일 일반대리점(이하 석유대리점)이 가짜석유 유통 후 폐업하는 불법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석유대리점 등록요건 중 저장시설과 수송장비의 50% 이상 자기소유 의무화를 골자로 한 석대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번 입법안의 목적은 매년 수천억에서 수조원대로 추정되는 가짜·탈세석유를 근절하는데 있다.

현재 국내 석유유통시장의 물류 흐름은 정유사-주유소와 정유사-대리점-주유소로 이원화돼 있는데 물량면으로 보자면 전자와 후자가 48%대52% 정도의 비율이다. 치열한 석유시장에서 여전히 석유대리점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대규모의 저장시설과 자금력, 그리고 수송수단 등을 보유해 유가인하에 기여하는 대리점의 순기능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석유대리점은 당초 저장시설과 수송장비 자기소유 의무화를 전제로 한 허가제였으나 1999년부터 저장 및 수송시설의 임대차도 가능한 등록제로 바뀌었다.

이러한 결과 2015년 현재 600여사에 이르고 있다. 이들 대리점 중에는 전화기 한 대만을 놓고 영업을 하는 1인 사장의 영세·부실 대리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영세·부실대리점들은 자본력이 약해 석유대리점 고유의 기능을 포기한 채 이른 바 자료상(가짜세금 계산서 발행) 역할을 하며 부가가치세 탈루를 일삼고 있다.

이로 인해 해마다 수천억원에서 수조원대의 세금탈루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자료상 역할 후 폐업을 하고 종적을 감추거나 폐업 후 명의만 변경해 재영업을 하는 등 치고 빠지는 식의 불법행태를 보이고 있지만 국세청 등 당국의 적발은 더디기만 하다. ‘열 명의 포졸이 막아도 작정한 도둑 하나 못 잡는다’는 옛 말이 작금의 석유유통업계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차제에 이들이 불법행태가 판을 치지 못하도록 아예 그 판을 바꾸자는 것이 이번 산업부 개정안의 요체다. 저장시설의 일부를 자가소유 의무화하게 되면 자본력을 제대로 갖춘 대리점은 진입이 가능하겠지만 전화 1대로 운영되는 대리점은 사실상 진입이 불가하다.

그러나 이러한 대리점등록 요건 개정안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바로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 통과다.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는 오는 6월 중에 있을 예정이다.

이 법은 규제 측면보다는 개정 의도에 부합하게 가짜·탈세석유 차단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규개위 위원들이 신규만 적용하는 것은 법의 형평성에 어긋나며 또한 기존까지 적용해야 입법안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는 방향으로 심사를 진행하면 오히려 규제를 더 강화하는 셈이다.

기존 업자들 입장에서 볼 때는 소급적용으로 5억~10억원에 이르는 저장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큰 비용부담이 아닐 수 없다. 굳이 행정행위의 불소급 원칙을 따지지 않더라도 ‘저장시설=가짜석유’라는 등식이 설립되지 않는 현실에서 기존까지 소급하는 것은 기존 업자들에게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어찌 보면 유령대리점을 운영해온 ‘꾼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방향으로 논점이 흘러 결국 이 법안 자체가 좌초되는 것을 바랄 것이다.

규제강화라는 측면을 피할 수 없지만 그러한 가운데서도 규제 최소화 방안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면서 석유유통시장의 투명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규개위를 통과하는 해법은 바로 산업부 입법안대로 신규만 적용해서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굳이 소급적용을 하지 않더라도 기존 사업자까지 가짜·탈세석유를 예방하는 지렛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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