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송두환 기자] 천문학에 빠진 한 남자가 있었다. 어두워지면 밤새 하늘의 별을 보며 걷다가 어느 날은 발을 헛디뎌 우물에 빠졌다. 그 모습을 본 하녀는 하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고 하는 사람이 자기 발밑 상황은 모른다며 비웃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의 일화이다.

한국 소재산업의 현황이 이와 비슷하다. 밤하늘의 빛나는 별, IT산업과 제조업만 바라보면서 정작 발밑의 소재에는 관심이 없다. 지금은 수입을 통해 버티고 있지만 언젠가 발을 헛디뎌 우물에 빠질 날이 올 수도 있다.

민경일 (주)메탈플레이어 대표는 우리나라 산업계를 “모래 위의 성”이라고 진단했다. 좋은 소재 하나가 여러 곳에 쓰이는 ‘원소스 멀티유즈(OSMU)’라는 개념에 반해 소재산업에 뛰어들었다는 민경일 대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편집자 주

▲ 간략한 기업소개 부탁드린다.

(주)메탈플레이어는 금속분말(Metal Powder), 세라믹분말(Ceramic Powder)을 생산·유통하는 업체다. 인천 송도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생산보다는 유통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대부분의 거래처는 중국과 일본이다.

▲ 금속분말이란?

말 그대로 금속을 가루로 쪼갠 것이다. 쪼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금속마다 다르고 용도마다 다르다. 강한 충격을 줘 부수는 금속도 있고, 스펀지처럼 부풀려서 부수는 금속도 있다. 와이어처럼 가늘게 선을 뽑아서 자르는 금속도 있다. 질산이나 염산에 녹여서 결정화하는 방법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금속을 녹여 액체 상태로 뿜어내는 것이다. 가스를 사용해서 뿜어내는 것을 가스아토마이징(Gas-atomizing), 물로 뿜어내는 것을 워터아토마이징(Water-atomizing)이라고 한다.

생산방식에 따라 분말가격이 다르다. 입자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이 동글동글한 분말이다. 입자모양이 달라지면 특성이 달라지고, 특성이 달라지면 용도가 달라지고, 용도가 달라지면 가격이 달라진다. 이건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금속분말은 주로 어디에 쓰이나?

금속산업을 포함해 산업전반에 많이 쓰인다. 강한 화학제품이 자주 닿는 설비, 예를 들면 염산이 자주 닿는 설비가 있다고 하자. 이 설비에 산에 강한 금속분말을 코팅하면 손망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코팅방법과 금속분말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 ‘세라믹 코팅’이라는 말 들어보셨을 것이다. 세라믹분말을 강한 압력으로 분사해서 한 겹을 덧입히는 기술이다. 세라믹 코팅을 하게 되면 녹이 슬지 않고 마모에 내성을 가지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제품은 용접봉이다. 용접봉에 피복이 되어있는데 그게 다 금속분말이다. 또 자동차용 도료에 알루미늄분말이 들어간다. 이건 가장 대표적인 것들만 꼽은 것이고, 최근에는 3D프린터 소재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 한국의 금속분말분야 현황은?

대부분 초보적인 수준이다. 알루미늄이나 구리처럼 흔하고 다루기 쉬운 금속들 위주로 생산한다. 나머지는 수입에 의존하는 형태다.

사실 금속분말 혹은 세라믹분말시장이 그렇게 크지 않다. 사용량은 많지만 가격대가 높지 않다. 시장이 작기 때문에 경쟁사도 많지 않고 대기업이 뛰어드는 경우도 없다. 철분말처럼 특이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미래지향적인 산업이긴 한데 국내여건엔 잘 들어맞지 않는다. 금속분말은 한적한 공간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전문인력도 구하기 힘들고 산업특성상 분진폭발의 위험도 있다. 일정한 공간 안에 몇 개 이상의 입자가 있으면 자연적으로 폭발한다. 위험성이 있으니 규제도 많고 지자체도 공장입주를 꺼린다. 이런저런 이유로 중국에 비해 경쟁력이 부족하다.

한국의 금속분말분야가 성장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소비시장이 작기 때문이다.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금속분말은 한번 생산할 때 밀가루만 한 것들, 쌀알만 한 것들, 콩만 한 것들, 팥만 한 것들까지 다양한 크기의 분말이 한꺼번에 나온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밀가루만 한 것들만 찾는다. 쌀알만 한 것, 콩만 한 것, 팥만 한 것은 아무도 찾지 않는다. 다시 녹여서 쓸 수는 있는데 녹이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경제성이 떨어진다. 다시 녹인다고 해도 똑같이 쓸모없는 크기의 분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공장이 많아서 콩만 한 것, 팥만 한 것까지 찾는 업체들이 있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 중국·일본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금속분말분야 수준은 어떠한가?

우린 일본에서 기술이전을 받았다. 한국 기술수준이 많이 올라왔다고는 하는데 우리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과 일본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하다. 일본의 철저한 국민성은 절대 못 따라간다. 금속분말 만드는 설비는 먼지가 자욱할 수밖에 없는데, 일본은 작업장에서 밥을 먹어도 될 정도다. 작업자들의 태도도 흠잡을 데 없다.

중국의 합금기술과 금속을 다루는 기술은 솔직히 한국보다 한 수 위다. 중국은 자체기술로 항공모함도 만들고 우주도 간다. 한국은 아직 멀었다. 다만 디테일한 부분이 상품가치를 좌우하는데, 그런 부분을 중국이 채우지 못해서 저평가 받을 뿐이다.

실제로 중국 현지업체에서 시제품을 가져왔는데 금속분말에 이쑤시개가 섞여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작업현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경우도 많다. 금속분말 옆에서 담배를 피우면 점화원이 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데도 개의치 않는다.

그 후로 중국 직수입은 한계가 있다고 보고 직접 현장을 돌아 믿을만한 업체를 선정해 계약을 맺었다. 우리 업체는 중국에 가서 금속분말 관련기술을 가르쳐주고 엄격한 품질관리를 통해 분말을 가져온다. 혹시나 이물질이 나올까 거래처마다 품질관리에 만전을 기한다.

▲ 3D프린터에 금속분말이 많이 쓰일 것으로 기대된다.

플라스틱을 소재로 한 3D프린터는 연습게임이었다고 보면 된다. 금속분말이나 세라믹분말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게 본게임이다. 지금 의료용 세라믹 3D프린터에 좀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 같다.

3D프린터는 애초부터 소재의 문제였다. 만드는 기술은 끝이 정해져있다. 추후엔 모두 평준화될 기술이라는 뜻이다. 결국은 소재싸움이다. HP나 캐논에서 2D프린터를 사면 괜찮은 제품을 15~20만원에 사서 평생 쓴다. 근데 잉크를 매번 충전해서 써야 한다. 미래산업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3D프린터는 집집마다 있고 필라멘트나 토너, 소재를 판매하는 싸움이 될 것이다.

▲ 한국의 금속분말분야 발전을 위해 한 말씀

일본이나 선진국들의 소재산업은 개발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은 수입품 대체에 초점을 맞춘다. 출발점이 다르다. 없는 것을 새로 만드는 것과 수입 대체는 차원이 다르다. 수입품을 대체하려면 품질이 월등해야하고 가격이 낮아야 한다. 이런 핸디캡이 있으니 아무도 투자하지 않는다. 설사 만들어낸다고 하더라도 이미 뒤쳐진 기술이 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모래 위에 성을 짓고 있다. 소재산업 없이 IT발전·제조업 발전시켜봐야 뭐하나. 이래서 가마우지 경제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빵 만드는 방법에만 관심이 있고 밀가루 만들 생각은 조금도 안하고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은 많지만 기초산업이 허약하면 죄다 거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정책은 필요한 곳보다 돈이 되는 곳에만 투자하려는 경향이 있다. 돈이 안 되도 필요한 게 있다. 오히려 투자가 필요한 곳은 그런 쪽이 아닌가.

다른 업종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푸드트럭·게스트하우스 창업을 하는 사람과 소재분야 창업을 하는 사람은 다르다고 본다. 소재산업은 시간도 많이 들고 돈도 천문학적으로 들어간다. 설비가 비싸 진입장벽이 높다. 생산기술연구원이나 화학기술연구원 같은 곳에 설비사용 의뢰를 할 수는 있는데 그것도 다 돈이다. 금속분말 하나 만들어 사진을 찍거나 분석 한번 받으려면 매번 수십만원씩 깨진다. 청년들이 창업할 엄두가 안 나는 분야다.

그렇다고 대기업이 달려들 아이템은 아니다. 돈을 들이는 만큼 반드시 성공하는 분야가 아니라서 그렇다. 잘만하면 작지만 강한회사가 나오는 분야인데 지원이 미흡한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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