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훈 기후행동포럼 집행위원장
이번 제9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러시아가 교토의정서를 비준할 지 여부가 여전히 불확실해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맥 빠진 분위기에서 시작된다. 미국, 러시아 등 기후변화에 큰 책임이 있는 국가들이 근시적인 이익을 앞세워 지구적 차원의 환경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과 전진을 가로막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하지만 국제 사회가 현실에서 전개되는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기후변화협약은 어떤 방식으로든 전개가 될 것이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기후변화협약이 전개되든 한국은 가장 어려운 위치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대표적인 화석연료 소비대국이다. 선진공업국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동분서주하는데 비해 한국은 이미 1인당 에너지소비가 이탈리아, 영국을 넘어서 독일, 일본 수준에 이르렀지만 증가세는 지속되고 있다.

2003년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9위인 한국은 2010년도 되기 전에 경제대국인 미국, 일본, 독일과 인구가 많고 국토도 넓은 중국, 인도, 러시아에 이어 세계 7위의 온실가스 배출 국가가 될 전망이다.

만약 러시아가 비준해 교토의정서가 발효된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선진국들이 제기해 온 개도국 참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OECD 가입국이면서 기후변화협약 상에서 개도국 지위를 가진 한국, 멕시코 등에 선진국의 압력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다른 개도국과는 다른 방식의 의무부담을 강요받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러시아가 제4차 IPCC 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교토의정서 비준을 미루겠다면 사실상 교토의정서 발효는 물 건너간다. 그러면 갈등과 조정기를 거쳐 새로운 의정서 협상이 시작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선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는 아니라도 최소한 OECD회원국 중 기후변화협약상의 개도국은 새로운 지위와 의무를 부여받을 것이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국제사회의 압력에 밀려 의무 부담을 강요받을 상황에 놓일 수 있다.

한국 정부는 기후변화협약에서 방관자적 위치를 벗어나 어느 정도 의무 부담을 질 자세로 협약에 임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 유럽연합 등이 거론하는 개도국 참여론의 목표물이 되는 당사국이다. 개도국 참여론은 선진국들이 교토의정서 이행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덜어 중국이나 동남아, 중남미 개도국들에게도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전가할 목적으로 제기한 일종의 정치공세이다. 하지만 한국, 멕시코처럼 이미 선진국(OECD)으로 간주되지만 기후변화협약상의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 나라들 입장에선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 정부는 ‘2018년 온실가스 의무 감축 참여 고려’라는 매우 느슨한 입장을 서둘러 수정하고 늦어도 2차 공약기간(2013~2017년)에는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해야 한다. 눈치만 살피다 억지로 떠밀려 온실가스 의무감축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적절한 의무를 다할 것을 먼저 약속하는 것이 합리적인 협상 정책이다.

이러한 한국의 능동적인 참여는 위기에 처한 기후변화협약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 새롭고 창의적인 협상 전개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이 예정된 부담을 제 스스로 지면서 선진국을 압박하고 개도국을 견인하여 정체된 기후변화협약을 끌어올리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면 한국의 외교적 위상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 산업구조와 생활양식의 변화를 유도하고 저탄소 에너지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에너지효율 향상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다행히 2011년까지 재생가능에너지 5% 공급을 추진하는 등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시동을 걸었으나 에너지 효율을 향상하여 에너지소비 증가세를 꺾는 조치는 여전히 미흡하다.

또한 온실가스 저감수단으로 청정개발체제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원자력 발전을 여전히 온실가스 저감의 주요 수단으로 보고 있다.

저탄소 에너지 경제의 실현이 온실가스를 줄이는 근본 대책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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