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
[투데이에너지] 한동안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였다. 업계는 모두 그 가격수준을 전제로 사업계획을 짜고 경제 전망을 했다. 2014년 하반기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지금은 배럴당 3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이 2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이 기조가 앞으로 좀 더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렇게 유가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데에는 수급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먼저 석유에 대한 수요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 선진국의 경기 불안이 계속되고 있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성장도 둔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낮은 유가로 인해 산유국은 재정 부담이 커지고 있고 석유개발부문에 대한 투자도 줄면서 다시 세계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 구조도 지적된다.

석유 공급면에서는 산유국간 증산 경쟁이 유가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석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이것을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간 에너지 패권 경쟁으로 보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석유 생산 동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생산부문이 국영화돼 있으며 재정 수입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유가 하락은 바로 재정 수입 감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유가 하락은 오히려 재정 확충을 위해 더 많이 석유를 생산해야 하는 배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세계 산유국들이 증산하고 싶지만 더 이상 하지 못하는 것은 유휴 생산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은 민간부문이고 철저하게 이윤 추구를 위해 석유를 생산한다. 유가가 생산 단가에 못 미치면 생산을 포기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셰일오일 업체들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생산성 향상을 통해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다. 2~3년 전만 하더라도 셰일오일의 배럴당 생산 단가는 70달러대로 여겨졌으나 지금은 배럴당 40달러대에도 생산할 수 있는 업체가 있을 정도다.

따라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간의 치킨게임이라는 것은 현실을 극적으로 보게 하는 프레임일 뿐이다. 오히려 산유국간 경쟁 패턴의 변화라고 보는 것이 설명력이 더 있을 것이다.

석유생산부문이 국영인 산유국의 경우 재정 수입을 결정짓는 것은 유가와 시장점유율(생산량)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또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영향력이 컸을 때에는 생산량을 줄여 유가를 올리는 전략이 유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글로벌시장에 석유가 넘쳐나고 OPEC의 영향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생산량 감축은 유가는 올리지 못하고 시장점유율만 떨어뜨리고 따라서 재정 수입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런 배경으로 산유국간 시장점유율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증산의 동기가 되는 것이다.

시장점유율 경쟁은 산유국간 감산 또는 생산 동결의 논의를 더욱 어렵게 한다. 올해 초부터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 국가들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생산 동결을 위한 논의를 해왔지만 이마저도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간 시장점유율 경쟁이 상황을 더욱 곤란하게 하고 있다. 이란은 국제제재로 인해 그동안 석유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제재가 해제됐으니 제재 이전의 수준 즉 일산 400만배럴 수준을 도달해야 생산 동결 합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의 참여 없이는 생산 동결에 합의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놓고 있다.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은 생산 동결 논의에는 벗어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유가 하락에 따라 적자를 낼 수밖에 없다면 생산량 감축이 불가피하다. 다만 생산성 향상에 따라 그 정도를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유에서든지 유가가 회복되면 이 업체들은 다시 생산을 늘릴 것이고 이는  유가의 추가상승을 제어하는 역할이 될 것이다.

이러한 석유 공급 구조하에서는 적어도 단기적으로 유가가 급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가 상승의 모멘텀은 선진국이든 신흥국이든 생산과 교역활동이 다시 활성화되고 글로벌 경제가 되살아나는 데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 입장에서는 유가가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되는 지금이 석유의존도를 줄이는 구조개혁의 적기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유가 변동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로부터 영향을 덜 받기 위해서는 석유를 덜 쓰는 생산전략과 에너지공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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