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무 에너지경제연구원 가스정책연구실장
[투데이에너지] 어느새 가을이 완연해지면서 사람들이 입는 옷도 두꺼워지고 한 겹, 한 겹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른 한파 두어 번에 겨울이 멀지 않음을 곧 실감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겨울이 다가옴을 체감할 사람들은 가스업계 종사자들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가정용 난방 수요의 비중이 높은 편이어서 겨울철이면 가스 소비량이 대부분의 주요 가스 소비국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올라간다.

그래서 겨울을 앞두고 가스업계에서는 재고를 채우고 LNG 도입량을 늘리고 공급시설들을 다시 확인하며 정부에서는 동절기대비 점검에 나서고 고위 관계자가 직접 현장을 방문하곤 한다.

우리나라 천연가스산업이 직면한 도전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어서 천연가스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과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먼저 천연가스의 국내 도입 단계부터 살펴 보자.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소량의 동해 가스전 생산분을 제외하면 우리가 쓰고 있는 가스는 모두 해외에서 들여오는 것이다. 자국 내 생산량이 많다고 해서 천연가스의 공급 안정성이 반드시 담보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국내 생산이 거의 전무한 나라는 공급 안정성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와 같이 대규모 장기 물량 계약에만 의존해 공급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은 수요 예측 실패 위험 등을 고려할 때 더 이상 비용효과적인 대안이 아니다. 게다가 가스공사가 우리나라의 가스 수급의 책임을 거의 전적으로 떠맡으면서 발전회사나 에너지 다소비 업체 등의 대량 수요자들이 천연가스 수급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일상화됐고 그것이 우리나라의 가스 조달 비용을 가시적으로 높이는 경우도 눈에 띄어 왔다.

대외 여건의 변화에 자신의 수급을 스스로 책임지는 직수입 수요 증가와 같은 내부 환경까지 생각한다면 LNG도입 창구의 다변화와 국내시장 기능의 활성화로 공급 안정성을 높이려는 현재의 정책 방향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단 수입된 천연가스를 최종 소비자에게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국내 가스 공급 인프라의 운영과 보강이 핵심적이다. 우리나라의 가스 공급 인프라는 꾸준히 신·증설돼 온 LNG 인수기지와 잘 발달된 전국 배관망 및 소매 배관망을 통해 급격히 증가한 수요를 잘 감당해 왔다.

이제 장기적으로 천연가스 수요가 성숙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공급 확대를 위한 인프라 추가 건설 필요성은 상당히 감소됐고 이미 갖춰진 인프라를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앞서 언급된 도입선 다변화와 활성화된 시장을 통한 공급 안정성 확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원하는 사람이 자유롭게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물리적인 공급 안정성, 특히 자연 재해나 사고에도 대비가 잘 돼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가스공사와 도시가스회사들은 꽤 오랫동안 큰 사고 없이 배관시설을 안전하게 운영하고 있으나 최근 들어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바로 빈발하고 있는 지진이다.

대부분의 가스배관이 지하에 매설돼 풍·수해보다 지진에 의한 피해가 더 클 수 있으며 가스 누출 시에는 막대한 규모의 2차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필자가 지난해 여름 샌프란시스코에 출장을 갔을 때 공교롭게도 진도 4의 지진을 겪고 나서 지역 유틸리티 업체인 PG&E를 방문했는데 지진대비 감시시스템을 잘 갖춰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수 년 전 도쿄가스를 방문했을 당시 자신들의 비즈니스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지진이라고 말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 가스업계도 이들과 비견할 만한 수준의 안전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바 국민들의 관심이 국가 인프라의 지진대비 수준에 쏠려 있는 지금이야말로 대비 태세를 점검해 가스의 안정적 공급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다질 수 있는 기회이다.

윈스턴 처칠이 1차 대전을 앞두고 영국 해군장관으로 재임하던 때에 전투력 제고를 위해 군함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던 석유가 제 때 공급되지 않으면 아무리 막강한 해군력이라도 의미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 석유 공급의 안정성은 오로지 공급원의 다양성에 있다고 논파했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천연가스 공급원이 다양해지고 있는 시류에 맞게 국내 도입과 공급 인프라 측면에서 가스 공급의 안정성을 바라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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