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이상훈 소장

[투데이에너지] 에너지부 신설이 차기 정부의 과제로 논의되고 있다. 에너지전문가들이 에너지부 신설을 역설하는 가운데 야당의 정책 연구소와 대선 캠프에서도 같은 얘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

에너지전문가들은 대체로 에너지정책이 균형을 잃지 않고 고유의 공적 기능을 하기 위해서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독립돼야 한다고 본다. 1993년 동력자원부가 산업부(상공부)로 흡수된 후 에너지정책이 산업경쟁력 강화와 수출 확대라는 산업정책의 하위 수단으로 기능하면서 지속가능 발전 혹은 기후변화 대응 같은 시대적 과제와 괴리가 커지게 됐다는 것이다.

에너지정책이 산업육성과 물가안정 정책에 휘둘리면서 나타난 결과가 에너지가격체계와 시장구조의 왜곡이다. 우리나라는 전기가 같은 용도로 쓰이는 등유나 중유에 비해 저렴하다. 그래서 산업과 건물에서 유류나 가스보일러 대신에 전기보일러 사용한다. 전기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다른 에너지소비는 정체되는 가운데 전력소비만 증가하는 현상이 지속됐다.

이런 현상은 유류에는 세금이 많이 부과되지만 발전용 연료나 전기에는 세금이 거의 없는 탓이다. 결과적으로 에너지의 97%를 해외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주택용 전기요금은 OECD 평균의 64% 수준으로 저렴하다. 원자력과 석탄화력 같이 발전원가가 낮은 설비의 비중이 높은 탓도 있지만 전기에 과세를 하지 않는 탓이 크다. 주택용 전기요금이 우리나라의 3배에 달하는 독일은 요금의 약 절반이 세금과 부과금이다. 발전원가의 차이보다는 과세의 차이로 요금 격차가 생긴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한국 에너지정책 진단에서 전력 및 천연가스 시장개혁을 제안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점이 전력과 천연가스시장을 위한 명확하고 장기적인 비전의 부재라고 지적한다. 경쟁이 도입된 발전부문에서도 공기업의 비중이 지배적이지만 특히 전력 판매시장은 한전이 독점하고 있다.

천연가스 도매시장도 개방되지 않은 상태이고 다양한 사업자 간의 상호 거래도 매우 제한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전력과 천연가스시장의 개혁을 위해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함께 강력하고 독립적인 시장 규제기관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바 있다. 아무도 에너지위원회나 전기위원회가 고유의 역할에 필요한 중립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결과적으로 국내 에너지정책은 정책 수요자인 국민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환경여건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원전밀집도가 세계 1위이며 고리·신고리 원전단지 반경 30km에 약 34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원전을 확대하는 중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경주 지진을 겪으면서 원전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크게 저하됐지만 정책적 관성은 지속되고 있다. 파리협정 발효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발전부문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지만 석탄화력설비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한편에선 미세먼지 오염을 줄이겠다고 범부처 차원에서 대책을 열거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선 미세먼지를 추가로 내뿜을 석탄화력설비가 20기나 건설되고 있다.

만약 에너지정책이 산업육성과 물가 안정 외에도 안정성과 환경성, 형평성 등을 보다 균형있게 고려했다면 결과는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에너지행정을 산업부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에너지정책 바로세우기의 출발점으로 보는 것이다.

에너지부는 산업부의 에너지행정, 미래창조과학부의 원자력행정, 여러 부처에 산재한 기후변화 대응(온실가스 감축) 행정을 통합하면서 제4차 산업혁명에 맞춰 에너지시스템과 산업, 시장을 혁신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에너지부는 차기 정부가 소부처로 행정조직을 개편할 때 신설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통합형 대부처 체계로 간다면 프랑스처럼 환경(대기), 에너지, 기후변화를 하나의 부처로 묶는 방안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관련부처의 반대와 저항이 정부 조직개편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산업부가 정보통신업무를 다시 맡는다면 에너지자원실 분리에 대한 반발을 줄일 수 있다. 에너지부 신설은 차기 정부 에너지정책 개혁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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