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이종수 기자] “전 세계 사회·산업·문화적 르네상스를 불러올 과학기술의 대전환기가 시작됐다.” 

지난해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 교수(세계경제포럼 회장)가 제시한 ‘4차 산업혁명’이 전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신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지식과 실무역량을 갖춘 공학인재 육성과 산학협력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본지는 총 4회에 걸쳐 실무능력 공학인재 수요가 상대적으로 많은 화학공학 분야를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공학인재 육성 방향을 조명한다.<편집자주>

▲ 공과대학 학생들이 실습을 하고 있는 모습.
공과대학 전공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학실무역량평가제도(Test Of Practical Engineering Competency, 이하 TOPEC)가 오는 2018년 화학공학 분야에 처음으로 도입된다.

이 제도는 공대 졸업생이 해당 산업분야에서 필요한 실무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지 객관적으로 진단·평가함으로써 산업계의 요구(실무역량을 갖춘 인재)와 괴리된 공대교육을 질적으로 개선하고 산업계가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실무역량 중심의 공학인재 채용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우리나라의 공대 졸업생 수는 OECD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공대 졸업생들의 전공지식과 실무능력, 기업현장 적응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산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 2014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수요 지향적 융합·실무형 공학인재 육성방안’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공학교육과 산업현장 직무 간 차이가 많다는 응답 비율이 83%로 나타났다. 공대를 졸업한 신입사원의 실무적용능력에 대한 산업계의 인식도에서는 ‘보통이다’ 54%, ‘대체로 잘못하고 있다’가 30%를 보였다. 실무에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는 방안으로 사내교육(71%)과 신입사원 대신 경력자를 채용(26%)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는 2025년까지 신규 채용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가 에너지·화학공학 기술자다. 산업계가 전공지식과 실무능력을 겸비한 공학인재를 시급히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TOPEC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주도형 공학실무역량평가, 산업계가 직접 출제

▲ 공학실무역량평가(TOPEC) BI.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고 한국산업기술진흥원과 한국생산성본부가 한국화학공학회, 한국공학교육학회와 공동으로 개발 중인 TOPEC은 ‘기업주도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업계가 요구하는 역량을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산업계 주도로 평가모델과 문항을 개발하기 때문이다. 

화학공학이 우선 개발 분야로 선정돼 지난 2015년부터 올해까지 3개년 계획으로 개발이 진행 중이다.

화학산업은 전자, 기계, 반도체, 조선 등 8대 주력산업 중 산업기술인력 비중이 13.8%를 차지할 만큼 전통적으로 인력과 기술 집약적인 산업이다.

또 화학공학과의 학부생들은 화학의 주요 분야인 정유·석유화학, 정밀화학, 제약뿐만 아니라 신소재 분야 등 다양한 산업에 진출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BT, NT와 같은 융합산업으로의 발전이 활발해 파급효과가 큰 분야이다.

28개 기업의 재직자와 21개 대학의 교수 및 평가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워킹그룹(약  100여명)이 화학공학 분야 실무역량평가 제도를 개발 중이다.  

▲ 화학공학 실무역량 평가모델.
그동안 화공 분야 워킹그룹은 공학인재가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을 도출하고 이를 신뢰성 있게 측정할 수 있는 평가내용과 구조 및 수준 등을 개발해 평가체계를 마련했다. 올해까지는 평가제도 개발과정의 일환으로 시범테스트를 실시하고 2018년부터 정기평가를 시작한다. 

한국생산성본부의 한 관계자는 “어떠한 능력을 측정해야 할 것인지, 대졸자에게 어떤 수준의 능력이 필요한 지 등의 분석은 산업계 중심으로 이뤄진다”라며 “전문가위원회 운영, 전문가 설문 및 인터뷰 등의 방법을 통해 기업 실무진 및 학계 전문가의 요구를 분석해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TOPEC 화학공학 분야는 산업계에서 화공 엔지니어에게 요구하는 4개 핵심역량(화학산업의 이해, 설계기초, 공정설계, 공정관리 및 안전)에 대한 기본 지식과 통합적인 활용능력을 평가하게 된다. 평가 비중은 화학산업의 이해 20%, 설계기초 26%, 공정설계 30%, 공정관리 및 안전 24%로 설계 분야가 56%를 차지해 실무역량 평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산업계 재직자가 직접 출제하고 학계가 감수하는 방식이다. 문항 수는 50문항(1,000점 만점)으로 선다형, 단답형, 서술형의 3가지 유형으로 출제되며 다양한 역량을 통합적으로 평가하는 문항이 출제된다.

화공 분야 워킹그룹에 참여하고 있는 A기업의 관계자는 “실제 현장의 상황이나 이슈, 고객의 요구, 업무 수행 시 제약조건 등이 반영된 상황이나 시나리오를 제시해 학교에서 배운 전공지식이 실무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문제들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응시자에게는 점수(전체, 역량별) 및 등급 정보가 담겨 있는 성적인증서를 제공하고 성적인증은 2년간 유효하다.

TOPEC은 화학공학 인력의 역량수준을 4등급으로 설정해 응시자가 현재 어느 정도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지를 진단할 수 있다.

TOPEC은 화학공학계열 전공 졸업(예정자)자로서 화공 엔지니어로 산업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인력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다. 대학 3, 4학년들도 전공과 관련된 실무역량을 점검하기 위해 평가에 응시할 수 있다. 

▲ TOPEC 화학공학 분야 공정설계 예시 문항.
▲ TOPEC 화학공학 분야 설계기초 예시 문항.

TOPEC 활용방안 및 기대효과는 

TOPEC의 활용방안은 다양하다.

기업은 신입직원 교육, 과정평가, 직무배치 등과 채용 시 우수 인력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방안으로, 학계는 공학교육인증의 학습 성과 도구 연계, 졸업시험, 교육과정 개선, 진로 및 취업지도 등에 각각 활용할 수 있다. 학생들은 자신의 역량수준을 진단해 향후 역량개발 및 능력향상을 위한 방향을 설정할 수 있고 취업에도 활용할 수 있다.

특히 기업은 신입사원 재교육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실제 기업은 인력 채용 후 직무에 바로 투입하지 못하고 자체적으로 해당분야의 전공지식이나 현장 적응능력 등을 높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 재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 재교육 기간은 18.3개월, 비용은 1인당 6,000만원으로 나타났다. 

기업이 공대생 채용 시 해당분야 졸업생의 실무능력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보니 학교, 학점, 어학성적 등 스펙 위주로 직원을 채용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TOPEC 도입으로 이러한 경향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 공학실무역량평가제도 활용방안.
화공 분야 워킹그룹에 참여하고 있는 B기업의 관계자는 “기업은 스펙이 아닌 해당 분야의 실무역량을 검증해 인재를 확보함으로써 신규채용에 따른 재교육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인재 선발 및 교육체계가 미흡한 기업에게는 인적자원 개발에도 유용하다”고 밝혔다.

TOPEC과 유사한 제도로는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 신 직업자격’이 있다. 둘 다 능력중심 사회를 지향하는 방향성은 동일하다. 하지만 NCS 기반 신 직업자격이 해당 직무수행에 필요한 자격여부를 인증하는 역할을 하고 TOPEC은 공학실무능력을 평가·진단하는 도구로서 공대교육을 질적으로 개선하고 전공학습과 진로선택 및 준비에 있어 가이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화공 분야에선 화공기사 자격증이 있지만 학교에서 배운 교과목 지식을 평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실무능력을 평가·진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전문가 워킹그룹에 참여하고 있는 한 대학교 교수는 “TOPEC은 공대생들이 전공지식과 실무역량을 진단함으로써 자신이 부족하거나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스스로 파악해 역량개발과 능력향상을 위한 방향을 설정하는 자기주도 학습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라고 밝혔다.

내년부터 화학공학 분야에 TOPEC이 본격 도입되면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을 주고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한 온라인 학습과정과 학습교재가 무료로 보급된다. 화학공학 분야의 제도 정착 이후 기계·전자·전기·토목 등 타 공학 분야로 순차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TOPEC 개발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의수 동국대학교 화공생물공학과 교수는 “요즘 ‘산학협력이 부족하다’, ‘공대를 졸업한 인재를 당장 실무에 활용할 수 없다’는 산업계의 불만이 많이 있는데 되짚어보면 전문지식을 실무현장에 적용하는 분야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TOPEC을 통해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사항이 무엇인지가 학계에 구체적으로 피드백 되고 대학에서는 이를 반영한 교과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TOPEC은 산업계의 만족도 제고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의 하나로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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