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All That Boiler] 산업용보일러의 역사
[기획 - All That Boiler] 산업용보일러의 역사
  • 강은철
  • 승인 2004.05.0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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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경제발전 중추 역할 수행
태동기 : 보일러 산업 메카로 용산 부각

이륙기 : 열연수관보일러 ‘사관학교’ 역할

성장기 : 보일러 업계의 ‘르네상스’ 시대

황금기 : 보일러조합 탄생… 업계 대변



우리나라의 보일러 산업의 역사는 곧 난방의 역사다. 다시 말해 ‘온돌의 역사’라도 할 수 있다. 일제의 침략을 받기 이전까지는 나무를 연소시킴으로써 난방을 하는 온돌방 구조가 전부였으나 구한말 외세에 의한 강제 개항을 통해 근대식 증기난방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1900년대 우리보다 일찍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여 서양식 증기난방을 이용하던 일본인들에 의해 관청이나 공공건물 등에 증기난방 및 온수난방이 도입됨으로써 증기를 생산하는데 필수적인 보일러 및 관련장치들도 국내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일반 가정용이라는 개념은 전혀 없었고 그 때 막 신축되기 시작하던 대형건물이나 백화점, 영화관, 기숙사, 호텔 및 공공기관 같은 관청건물 등의 난방용 및 공장을 가동하기 위한 산업용으로 보일러가 도입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 태동기(1945~1960년대)



1945년 8월15일 마침내 민족의 염원인 해방이 되면서 우리나라의 기계공업도 자주적인 첫발을 내딛게 됐다.

당시 일제의 시설을 인수한 우리나라는 기술진용의 미흡으로 소규모적인 수공업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다 6·25 발발로 인해 경제정세의 심각한 변화는 정부시책을 물가안정을 기조로 한 소비재중심 정책으로 전환하게 됐다. 무통제하의 무역행정은 차관도입 등 시설재 수입에 있어 기계공업분야를 저버림으로써 국산화 및 기술개발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보일러 업계에 따르면 태동기의 보일러 산업은 부(富)보이라제작소와 동진 주물제작소가 이끌었다고 한다. 1945년 설립된 동진주물제작소는 현재의 용산에 위치해 있었으며 주물보일러와 방열기를 생산해 크게 인기를 끌었다. 문배동에는 부보이라제작소, 동광공영주식회사, 한국보이라공업사, 세일보일라제작소, 만화주물공장, 경성주물 등 7~8개에 이르는 보일러 회사들이 있었다. 용산일대는 ‘우리나라 보일러 산업의 메카’라고 불렸다.

51년에는 한국보이라공업사가 국내 최초의 횡형원동식 보일러 및 횡형다관식, 입형보일러 제작에 성공해 향후 60년대말 강압통풍식 Z보일러(연관식) 개발의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 이륙기(1960~1970년대)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 5.16 군사혁명으로 인해 경제발전이 처음 시도된 시기다. 64년도에 무연탄 전용도시가 20여개도시에서 58개도시로 확대되는 등 본격적인 개발이 이뤄진 시기로 보고 있다. 특히 온돌구조 개량 등의 연구가 이뤄져 61년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울마포아파트에 연탄온수보일러를 이용한 난방이 실용화되었으며, 원동기 단속법이 제정돼 63년 7월부터 내무부 치안국 보안과에서 내연기관 및 보일러 검사업무를 시행했다. 또 62년도에는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이 제정, 공포돼 업종별 협동조합이 설립, 중소기업의 생산, 판매, 기술, 경영 등 다각도의 보호육성책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현재의 한신보일러의 전신인 한신공업사가 설립돼 64년 무연탄 수관식보일러 실용신안을 획득, 본격적인 보일러제작을 시작한 시기다. 또 열연수관식보이라제작소의 전신인 열연연구소는 이미 59년말에 설립돼 냉온 덕트를 제작했다. 특히 이 회사는 직관식 수관보일러 위주였던 국내 시장에서 곡관식 수관보일러를 처음으로 제작했다. 지그재그형 곡관식 수관식보일러 개발로 당시 주종이던 무연탄을 사용해도 열효율이 80%를 상회해, 보일러 산업의 혁신이 가져왔다. 또 65년엔 국내 최초로 수관식 패키지 보일러를 제작했다.

열연수관식보일러의 가장 큰 특징은 현재 보일러 산업을 이끌고 있는 보일러사의 거의 모든 대표자들이 거쳤다는데 있다. 사관학교 역할을 했던 이 회사의 출신들은 부스타보일러의 유동근 회장, 화성플랜트의 박덕칠 사장, 대열보일러의 신춘식 사장, 동양보일러(현 동보중공업)의 이중기 회장 등이 이곳 출신이다.



□ 성장기(1970~1980년대)



1970년대는 우리나라의 모든 산업이 경제개발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실천에 의해 확대재편되는 시기였다. 보일러 업계에서는 ‘보일러 업계의 르네상스 시대’라고도 불렀다.

연료측면에서도 60년대가 신탄의 시대였다면 70년대는 확식한 석탄의 시대라 할 수 있다. 한국종합에너지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1978년 도시가구의 월간 에너지사용량의 구성비중 87%가 연탄이었다.

또 전국적으로 연탄보급율이 확대되면서 연탄가스 누출방지와 열성능 제고를 위해 연탄아궁이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연소장치가 고안되어 출시됐다.

산업이 발달하면 필연적으로 장치산업도 호황이다. 70년대 들어 정부주도로 시행되던 부양정책들은 전반적인 관련산업의 발달을 도모하게 됐으나 73년 오일쇼크의 여파로 에너지수급문제의 심각성이 제기됨에 따라 열관리 대책으로 열사용기자재의 형식승인제도가 도입, 법제화됐다. 75년 당시 한국열관리협회에는 6종 37개품목이 등록됐다.

‘보일러 산업의 르네상스 시대’로 불리는 성장기에는 현재 보일러 산업을 영위하는 거의 모든 업체가 집중적으로 설립된 시기다.

70년 대열보일러제작소를 시작으로 강원보일러, 동양보일러 대림로얄보일러의 전신인 대림공업사, 화성보일러, 부스타의 전신인 열연보일러, 동성보일러 등 산업용보일러 업체가 설립됐다. 가정용보일러 보일러업체로는 73년 롯데기공이, 74년엔 린나이코리아가 사업을 개시했다.

본격적인 형식승인업무가 시작된 75년 이후에는 삼원기계, 삼화보일러, 우진설비, 삼양보일러 등이 설립됐으며 경동보일러의 전신인 경동기계가 78년에 설립됐다.



□ 황금기(1980~1990년)



정부주도의 급격한 산업화의 발달이 이뤄진 70년대를 넘어오면서 80년대에 본격적인 수요가 확대된 시기다. 보일러 업계엔 없어서 못 팔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설비투자의 증가는 그만큼 보일러의 수요도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보일러업계의 성장이라는 순기능과 더불어 보일러 업체들의 난립을 초래해 부실을 낳는 요인으로 작용하던 시기다.

79년 12월 공포된 에너지이용합리화법에 따라 한국열관리협회가 에너지관리공단으로 통합되고 83년 12월에는 보일러 제조업체의 숙원사업이던 한국보일러공업협동조합이 설립돼 창립총회가 열렸던 시기이기도 하다.

보일러조합의 설립은 보일러 업계엔 대단한 의미성을 가진다. 당시의 보일러 제조업체 대부분은 기계공업회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기계공업회는 보일러 한 분야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어서 보일러 업계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대변할 수 없었다.

따라서 보일러 업계의 목소리를 여과없이 그대로 대변하면서 권익을 보호하고 단체수의계약제도를 통해 조합원사의 안정적인 경영 확보와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을 확대해 업계의 보호·육성을 달성할 수 있었다.



□ 해외 진출 및 구조조정기(1990년~현재)



1988년 개최된 서울올림픽은 우리나라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산업설비들이 첨단화, 대형화되면서 시설투자금액 조달에 애로가 없는 대기업들은 모든 분야로 사업분야를 확정해 갔고 반대로 전문업을 지키고 있던 중소기업들은 시장의 한계성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과당출혈경쟁에 시달리는 등 상대적으로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던 시기다.

이러한 타계책으로 보일러 업계에서는 해외 진출에 눈을 돌리던 시기이기도 하다. 한편 94년 2월에는 산업용보일러의 형식승인제도가 폐지됐다. 또 환경문제로 인해 청정연료 사용 의무지역이 점차 확대되어 갔으며, 보일러 및 압력용기 검사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들이 이뤄져 일정요건을 갖추고 보험에 가입하면 에너지관리공단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제조 및 계속사용중 감사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97년 1월1일부터는 중소기업고유업종에서 기름보일러가 해제되기도 했다.

90년대 들어 보일러 업계에서는 ISO 9001 인증부터 시작해 해외 수출을 위해 유럽인증인 CE마크, 러시아국가연방규격 GOST, 중국 품질안전인증 CSQL 등 인증획득에 심혈을 기울렸다. 이시기엔 보일러社들은 부설연구소 설립 ‘붐’이 일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80년대 말 귀뚜라미가스보일러를 시작으로 92년 동양보일러, 93년 경동보일러, 95년 한국보일러, 대원보일러, 97년 부스타 가 속속 기술연구소를 개설했다.

90년대 대표적인 업체였던 동보중공업의 전신인 동양보일러는 90년 7월 한국지역난방공사가 발주한 신도시 지역난방 보일러 100T/H 10기를 제작, 납품하면서 지역난방용보일러 분야의 기술을 축적, 대기업 중공업업체들을 제치고 가양, 방화, 등촌지구(91년), 수서지구(92년) 등 지역난방용 보일러를 수주하면서 코스닥에 등록됐다.

또 93년엔 업계최초로 경동보일러가 기업을 공개했으며, 중국 연변에 경동보일러유한공사를 설립해 중국시장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기도 했다. 이후 귀뚜라미보일러 등이 중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산업용보일러 업체들의 중국시장 진출도 러시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간의 과열경쟁으로 인해 대다수 업체들이 이미 중국에서 철수한 상황이며 꾸준히 시장분석을 통해 틈새시장을 공략한 일부 업체만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면서 힘겨운 영업을 하고 있다.

현재 산업용보일러를 영위하는 업체는 100여개사에 이르고 있다.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향후 2~3년내에 산업용보일러 업계의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업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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