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덕환 교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학

[투데이에너지]정부가 공론화위원회의 월권적 권고안을 핑계로 탈원전 로드맵을 내놓았다.

신규원전 건설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을 금지하며 2012년에 수명을 연장했던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겠다는 것이다.

그 대신 신재생의 비율을 2030년까지 20%로 확대한다. 원전 수출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원전폐로기술을 확보해서 국가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계획도 있다.

탈원전도 좋고 신재생도 좋다. 그러나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법과 제도까지 무시하고 탈원전을 무작정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절차적 정당성을 포기한 공약의 정책화는 국민들이 촛불혁명으로 분명하게 거부한 국정농단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고 국민투표까지 거쳐서 신중하게 결정하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다.

‘대선 공약’을 ‘헌법과 법률’보다 우선한다는 우리 대통령들의 착각에 국민들은 신물이 날 지경이다. 법치가 살아있는 나라다운 나라들 만들겠다면서 과거의 적폐를 반복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국민의 뜻을 확인하겠다고 떠들썩하게 시작했던 공론화도 무모하고 위험한 시도였다. 국회가 만든 에너지기본법·전기사업법·원자력안전에관한법 등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알량한 국무총리 훈령으로 급조한 공론화위원회도 실망스러웠다.

공론화위원회가 시민참여단의 의견을 정치적·의도적으로 왜곡하기도 했다.

원전 건설을 축소(53.5%)해야 한다는 의견과 유지·확대(45.5%)의 의견은 오차 범위 7.2%를 간신히 벗어나는 수준이었다.

시민참여단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월권적 질문에 유보적 입장을 확실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오히려 시민참여단의 솔직한 선택은 신고리 5·6호기의 공사를 재개한 후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묻는 질문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탈원전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13.3%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상 탈원전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던 것이다.

시민참여단의 선택을 정치적으로 왜곡시켜놓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들먹이면서 탈원전을 밀어붙이겠다는 정부의 선택은 국정농단 시절에 국민들을 절망시키던 유체이탈 화법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인정받는 ‘한국형 원전’을 포기하면서 우리 원전을 수출하겠다는 것은 황당한 아전인수(我田引水)이고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60년 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을 개발해왔던 우리에게 다른 나라의 원전 ‘철거’ 사업이나 해보라는 국무회의 의결은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일년에 고작 400억원 정도의 수입을 예상할 수 있는 원전 해체 산업은 어떤 경우에도 국가적 성장동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의 공약 집착증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 신고리 5·6호기의 공사를 느닷없이 중단시키는 바람에 3개월 동안 허공으로 날아간 비용이 1,000억원을 넘는다.

국가를 위해 열심히 땀 흘리던 3,000명의 근로자들이 가족들의 생계를 걱정하고 실직의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인구절벽과 일자리 창출에 써야 할 아까운 혈세를 아무 이유도 없이 공중으로 날려보낸 셈이다.

본격적인 탈원전 로드맵 때문에 발생하는 낭비적 비용은 훨씬 더 크다. 신규 원전 6기의 매몰 비용이 1조원에 가깝다고 한다.

멀쩡하게 돌아가는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는 경우의 낭비도 감당할 수 없다. 수명 연장을 위해 투입했던 7,000억원의 개보수 비용도 허공으로 날아간다.

수명 연장이 가능한 원전과 석탄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포기하는 것도 공짜가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경제성과 수급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는 LNG발전소의 증설과 가동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전기요금이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무책임의 극치다. 현 정부의 임기가 끝난 후에도 국민들은 어려운 삶을 이어가야만 한다.

탈원전은 절대 국민을 위한 선택일 수 없다. 탈원전으로 진짜 이익을 챙기게 된 사람은 따로 있다. LNG 발전소에 투자를 해놓은 재벌의 계열사들이다. 러시아와 미국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과연 누구를 위한 탈원전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에너지환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생물과도 같은 것이다. 60년 후의 미래 세대에게 족쇄를 채워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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