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장

[투데이에너지]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제8차 전력계획)이 2016년 12월 수립에 착수한 이후 지난해 12월29일 확정됐다. 이번 제8차 전력계획은 수립하는 중간에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에너지전환을 둘러싸고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특히 ‘숙의 민주주의’라는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쳤는데 갈등을 유발하는 어려운 이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기도 했다.

제8차 전력계획의 수립은 2031년까지 우리의 나아갈 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었기에 그간 있었던 많은 논의는 어찌 보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약 1년간 70여명에 달하는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해 열띤 토론을 통해 수립된 국가의 공식적인 계획이며 국회와 협의 및 공청회를 거쳐 그 내용이 확정된 만큼 이제는 더 이상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번 제8차 전력계획의 수립 과정 및 결과는 과거와 차별화된 몇 가지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첫째, 전력수요를 전망하는 데 있어서 좀 더 학술적으로 진일보한 모형을 개발해 적용했다. 제6차 계획부터 이용된 거시모형에 전세계 100여개 국가의 전력수요 패널자료 분석결과를 반영하는 전력패널모형도 적용해 예측오차를 줄이고자 했다.

특히 전력패널모형의 학술적 완성도에 대해 학계의 검증을 받아 지난 2016년 에너지경제분야 세계 최고 수준의 학술지인 Energy Economics에 관련 논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둘째, 최대전력 수요관리 목표를 제7차 전력계획의 12%에서 제8차 전력계획에서는 12.3%로 상향 조정했다. 공급위주의 전력수급정책을 수요관리 중심으로 전환하고자 했으며 에너지효율 향상, 에너지관리시스템 보급, 전기요금 체계 개편과 같은 기존의 조치들을 보다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자가용 태양광 및 수요자원시장의 확대를 신규 수요관리수단으로 포함했다.

특히 에너지공급자 효율향상 의무화 및 에너지절약 우수사업장 인증 등 수요관리 이행제도도 새롭게 마련했다.

셋째, 그간 수요전망, 설비계획, 예비율 등에 대한 중간결과를 수차례에 걸쳐 기자브리핑의 형태로 공개했으며 각종 학술토론회 등을 통해 전문가, 에너지업계, 시민환경단체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화의 과정을 거쳤다. 이렇게 중간결과를 언론에 설명하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면서 각 수치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을 거친 것은 사실 처음이라 할 수 있다.

넷째, 재생에너지의 확대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할 수 있도록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20%를 달성하겠다는 이른바 ‘3020 계획’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3020 이행계획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 비중은 2017년의 9.7%에서 2030년 33.7%로 약 3.5배 증가하는 등 재생에너지 확대를 둘러싼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원전/석탄발전 확대 및 신재생의 완만한 증가로 대표하는 수급계획의 기조가 원전/석탄발전의 축소 및 신재생의 대폭 확대로 변경된 것이다.

다섯째, 친환경 및 분산형 전원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이들 전원의 수익성 개선을 명시적으로 천명했다. 미세먼지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도록 미세먼지 배출이 작은 전원인 가스발전의 정산비용 현실화 및 세제 개편을 추진하면서 급전순위 결정시 환경비용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2013년의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로 우리가 얻었던 중요한 교훈인 분산형 전원의 확대를 실질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분산형 전원에 대한 용량요금 보상 확대를 제시했다.

이러한 5가지 큰 의의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이 4가지 측면에서 좀 더 고려할 점이 있으므로 적절한 후속조치를 통해 제8차 전력계획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 전기요금 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안전과 환경을 중시하려는 에너지전환에는 현재보다 비용이 추가적으로 소요될 수 있음을 밝히면서 전기요금의 인상 가능성에 대해 국민들을 설득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난 1998년 팔당호 오염문제가 불거지면서 상수원 지역의 주민지원사업과 수질개선사업을 위해 1999년부터 물이용부담금제도가 도입됐다. 당시 수도요금은 톤당 약 400원이었는데 톤당 80원의 물이용부담금이 부과되면서 수도요금이 실질적으로 20% 인상됐다.

IMF 구제금융 직후라 국민들의 반발이 클 수도 있었지만 국민들 대다수는 추가적인 부담에 동의했다. 물이용부담금 제도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정부가 국민들을 충분히 설득한 것이 주효했다. 이를 교훈삼아 전기요금의 인상이 필요하다면 그 필요성에 대해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얘기하면서 합의할 필요가 있다. 안 그러면 한전의 전력구매비용 및 계통건설비용이 증가하더라도 과거처럼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해 한전의 부채만 늘리면서 소비자들에게 왜곡된 가격신호를 주는 일이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

둘째,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 극복을 위해 백업설비로 2GW 용량의 신규 양수발전 3기를 계획했는데 부지 결정, 수용성 제고 방안 마련 등 보다 현실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양수발전은 전력수요가 급작스럽게 높아 질 때 즉각적인 기동이 가능한 장점을 가진다. 원전의 경우 최초기동에서 최대출력까지 1주일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양수발전은 신재생의 변동성 대응능력이 우수하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을 포함한 세계 각국은 재생에너지의 확대와 함께 양수발전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하지만 인공적인 댐 구조물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산림 및 경관이 훼손되고 수몰지가 발생하는 등 환경훼손이 불가피하며 이러한 이유로 영월댐, 영양댐, 달산댐 등의 다목적댐도 모두 건설이 백지화된 바 있다. 특히 부지 선정, 주민 설득, 각종 인허가,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공사 등 댐 건설에 최소한 10년의 기간이 소요되므로 지금부터 보다 철저한 양수발전 건설계획을 수립해 재생에너지가 대폭 확대되는 시기에 양수발전이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친환경 전원인 가스발전이 확대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축소되고 있으므로 가스발전 축소정책을 실질적인 확대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가스발전을 확대한다고 하면서 2030년 18.8%의 발전량 비중을 발표했는데 2016년의 가스발전량 비중이 22.4%임을 감안하면 발전량 비중은 오히려 축소되는 것이다. 특히 별도의 대책 없이는 이번 정부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경 가스발전 비중이 10% 수준으로 축소되면서 가동률 자체도 크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돼 가스발전은 서서히 ‘죽음의 계곡’에 진입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민간 가스발전사 대부분은 심각한 적자에 시달리면서 가스발전소는 짓자마다 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원가 보상은 충분히 되지 않고 발전용 가스에 붙는 세금 등 각종 부담금은 발전용 유연탄보다 2배 이상 비싸며 교차보조로 인해 발전용 가스 가격도 비싸니 가스발전사가 수익을 내기는 무척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정부 출범 당시 가스발전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석탄화력발전소 대부분도 결국에는 사업자의 반발 때문에 연료전환없이 원안대로 건설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선진국들이 온실가스 및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또한 재생에너지의 확대에 따른 공급안정성 확보를 위해 가스발전을 대폭 확대하는 것과는 반대로 우리는 가스발전이 당분간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대표적 분산형 전원인 집단에너지를 확대하겠다고 계획한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만 선언적 의미로만 그치면 안 된다. 2016년 기준으로 집단에너지 사업자 전체 35개 중 약 70%에 해당하는 24개가 만성적인 적자를 보고 있는 등 집단에너지사업은 고사 직전 상태다.

예를 들어 2015년 10월 최신식 발전기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올해 70%의 가동률을 기록하고 있는 한 열병합발전의 경우 2년 연속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2016년에 비해 2017년 적자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열제약발전시 변동비를 보상받지 못하고 변동비의 85% 수준인 증분비 또는 계통한계가격으로만 정산을 받기에 가동률이 높아질수록 적자가 심화되고 있다. 집단에너지 열병합발전은 대부분 대도시에 입지하고 있기에 부지 및 건설비용이 일반 복합화력보다 크게 높은 반면에 용량가격은 동일해 고정비 회수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집단에너지사업의 위기는 단지 사업자의 어려움에 그치지 않고 올해 정관신도시에서의 정전 사태와 같이 지역에서의 에너지 공급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해 국민들의 에너지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

에너지전환의 모범국가라 할 수 있는 독일이 재생에너지의 지속적 확대와 함께 각종 지원을 통해 집단에너지 열병합발전도 대폭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변동비를 적절하게 보상하고 고정비도 분산형 전원의 특성을 반영해 현실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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