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훈 소장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투데이에너지]에너지전환 정책 1단계가 오랜 진통 끝에 매듭이 지어졌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거쳐 원전 감축 로드맵이 수립된 이후 공정률이 낮은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계획이 재검토되고 노후 석탄설비 가동 제한 및 폐기 일정이 수립됐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로 높이는 이행계획도 수립됐다. 따로 진행됐던 원전 감축, 석탄화력 억제, 재생에너지 확대 논의와 계획은 지난해 12월29일 확정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되고 통합됐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환경과 안전을 고려한 새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이 오롯이 8차 전력수급계획에 담기게 됐다.

그런데 전후 맥락을 모르고 8차 전력수급계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에너지전환 정책의 실체를 쉽게 읽어내기 어렵다. 이전 계획과 비교하면 전원구성의 구조와 방향이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8차 전력수급계획만 들여다보면 전원구성의 변화는 매우 점진적이고 또한 유동적이다.

2030년 발전량 전망을 보면 원전의 비중은 최근 30% 정도에서 24%로 줄어들고 석탄화력의 비중은 40% 정도에서 36%로 줄어든다. 원전과 석탄화력의 신규 건설을 억제하고 노후 설비를 폐기하는 계획에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환경급전도 고려했지만 이미 과거 계획에 따라 원전과 석탄설비가 크게 늘어난 결과이다.

더군다나 문재인 정부 임기 중에는 원전과 석탄화력의 비중 합계가 80%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에 가스화력 설비의 이용률이 30%선을 맴돌게 돼 파산 위기에 직면한 민간 가스발전회사들이 길거리에 나서서 정부를 성토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탈원전·탈석탄을 국내외에 천명하고 강력한 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 중인 정부 입장에선 매우 당혹스런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2030년 발전량 구성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다. 그렇지만 신재생에너지는 다른 분야에 비해 설비 계획의 유연성이 커서 설령 8차 계획대로 증설되지 않더라도 전력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8차 계획에 따르면 원자력과 석탄화력의 발전량 비중은 크게 줄지 않을 것이고 재생에너지의 발전량 비중은 3020계획의 이행 수준에 달려 있는 셈이다.

현재의 급전방식과 전력시장 환경에서 발전설비의 진입과 퇴출, 발전설비의 안정적 운영과 수급 안정을 위한 송전계획 위주로 수립되는 전력수급계획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동일한 설비계획이라도 규제가 달라지면 다른 이야기가 가능하다. 규제 강화로 원전과 석탄화력의 발전량 비중이 8차 계획보다 더 줄어들어 에너지전환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전력정책 외부에서 주어지는 안전과 환경 규제에 따라서 발전량 구성은 달라질 것이다. 원자력 안전위원회의 원전 안전규제가 한층 더 강화되면 원전의 평균적인 설비 이용률이 더 낮아져서 2030년 원전의 발전량 비중도 감소할 것이다.

환경부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배출 규제 및 물리적 제약뿐만 아니라 발전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강화한다면 석탄화력의 발전량 비중은 30% 미만으로 떨어질 수 있다.

발전부문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순조롭게 이행하는데 잠재력이 가장 큰 부문이다. 설령 원전과 석탄화력의 발전량 비중이 더 감소하더라도 가스화력의 설비이용률을 높이면 신규 설비 없이도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

이 정도는 돼야 에너지전환의 요란한 틈바구니에서 소위 청정에너지라 평가받은 가스화력도 생존할 길이 생기는 것이다.

마침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새로 출범하고 새해 상반기에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의 수정 보완 작업이 진행되며 연내에 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수립된다.

과거의 결정으로 구축된 원전과 석탄화력 위주의 전원 구성에서 안전과 환경에 대한 규제의 정상화를 통해 정부가 지향하는 에너지전환을 실질적으로 이행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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