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가까이 자리를 잡지 못한 체 공사시작은 물론 부지도 정해지지 못한 핵폐기장이 지난해 12월17일 중·저준위 폐기물과 사용후 연료로 나눠 건설키로 확정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내년 상반기안에 ‘공론화기구’를 통해 핵폐기장 건립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이나 환경연합 측은 이번에도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정부는 끊임없이 핵폐기장의 안전성을 홍보하고 원전발전에 대해 노력하며 추진하고 있으나 지역주민·환경단체들과의 사이는 이제 곪아 터져버려 설득시키기에는 늦어 버린 듯하다.

2005년도엔 그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 보다는 해결방안을 찾아야 할 때인 것이다. 따라서 본지는 지금까지 진행돼 온 경위와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알아보고 해외의 핵폐기장 선정과 관리는 어떻게 이뤄졌나 살펴본다. / 편집자주

정부는 국내의 원전발전과 핵폐기장 부지선정에서 큰 난항을 겪고 있다. 반면 국민들은 원자력 발전에 대한 안전성과 정부에 대한 믿음이 떨어져 회복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국내 총발전량의 40%나 차지하고 있는 원자력의 중요성과 이에 따른 핵폐기장의 필요성은 국민들도 알고는 있으나 자기가 살고 있는 터전이 오염돼지 않을까하는 우려감을 갖고 있다. 또한 지난 몇년간 정부가 사회적 합의없이 추진했던 것이 큰 폭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성급한 결정이 국민들의 시야를 어둡게 했고 지금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젠 누구에게 책임이 있느냐가 중요하진 않다. 원전과 핵폐기장 문제로 정부와 지역주민·환경단체간의 갈등은 깊어져 있다. 그러나 원자력과 핵폐기장은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사업이기 때문에 해결은 돼야한다.

각계의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역주민·환경단체 간 뿐만아니라 국민 모두가 현 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대화를 통해 갈등을 조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또한 힘의 대결이 아닌 대화와 타협의 길을 선택해야 하며 독일의 경우처럼 핵폐기장 부지선정을 두고 오랜기간을 갖고 주민참여 속에 신뢰를 다져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지금은 당장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의 불만과 반대가 늘어날지라도 대화와 신뢰가 가춰져 있다면 효율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 상처만 남긴 핵폐기장 추진법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원전위상국 답지않게 그 정책사업에선 혼란을 겪고 있다. 핵폐기장 건립추진 사업은 1986년에 시작했으나 1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체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며 이로 인해 임시저장고가 포화에 달해 울진원전을 시작으로 2008년이면 한계에 도달하게 될 상황에 처해있다. 그러나 이제 더 시급해진 것은 정부와 국민간의 신뢰이며 2005년엔 이 관계가 개선될 수 있게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18년간 안면도, 굴업도, 부안 등을 부지로 선정하면서 남은 것은 주민들의 상처뿐이였다. 후보지로 선정된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으며 ‘부안사태’라는 엄청난 아픔을 남겼다. 그동안 진척도 없이 핵폐기장에 대한 이미지만 나빠지고 만 것이다. 또한 주민들은 정부와도 사이가 좋아지지 못했지만 찬·반이 다른 주민과 주민과의 사이도 안좋아지는 현상을 빚었다.

□ 핵폐기장 부지는 국민이 결정해야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일까?

전문가들은 정부의 발표가 너무 빠르다는 지적이다. 주민들과의 대화와 설득보단 먼저 결정하고 보자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불만을 품을 수 밖에 없으며 정부 또한 결정한 일에 협조해주지 않는 주민들에게 섭섭함이 생길 것이다. 결국 ‘부안사태’ 같은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가의 일은 주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국민들도 핵폐기장 건립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 국민들은 정부가 지역주민들과의 충분한 대화를 하고 상호신뢰를 얻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안면도를 시작으로 한 핵폐기장 건립 부지선정 후보지는 지난 18년간 굴업도와 부안군 위도를 선정했었지만 지난해 11월30일로 모든 것이 무효로 돌아갔으며 정부는 얻은 것 하나 없이 지역주민들의 불신만 받게 됐다.

자원을 97%가량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원전은 꼭 필요하며 거기서 나온 쓰레기를 버릴 곳도 필요하다. 그러나 누가 자기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면 좋아하겠느냐가 문제다. 이에 따라 일부에선 원전건설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 서두르기 보단 신뢰다져야

이렇게 긴 기간동안 정부는 왜 국민들에게 그 당위성을 설득시키지 못했던 것일까?

아무리 좋은 조건과 자유로운 투표를 준다해도 주민의 의견과 사회적합의를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핵폐기장 건립을 처음 추진하고 나선 1986년, 핵폐기장 추진은 이때부터 잘못되기 시작했다는 평이다. 정부는 주요 국책사업을 시행할때 국민들의 의견은 듣지 않고 정보를 비공개하며 결정이된 후에 발표하는 식이었다. 군사정권 시절 국민들은 불만을 억누를 수 밖에 없었지만 민주화가 되가며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핵폐기장 건립추진은 이렇게 부정적 이미지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1987년에 들어서 정부는 처음으로 경북 영덕군 남정면, 영일군 송나면, 울진군 기성명 등 동해안 3개지역을 핵폐기장 후보지로 지정한다. 그러나 핵폐기장 반대운동이 이때 최초로 일어났으며 결국 백지화됐다. 그러나 1990년 11월3일 충남 안면도를 핵폐기장 후보지로 내정한다. 1여년동안의 시위속에 1991년 7월 결국 안면도 핵폐기장 추진계획이 완전 백지화 됐다. 이때부터 반핵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전국이 떠들썩해지기 시작한다.

이후 정부는 또다시 1994년 굴업도를 핵폐기장으로 선정한다. 하지만 그곳은 지질이 활성단층으로 밝혀져 1995년 11월30일 계획이 또 백지화됐다.

1997년 핵폐기장 추진주체가 과학기술부에서 산업자원부로 변경된 후 산자부는 민주적 결정방식을 위해 지차제 유치 공모를 시작했으며 지원금을 약 3,000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이 또한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부안이 유일하게 2003년 7월 군수가 단독으로 유치신청서를 제출, 산자부는 바로 부안군 위도를 핵폐기장으로 확정한다. 그러나 그후 부안에선 엄청난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정부는 주민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성급한 결정을 내려 주민들의 시위를 일이키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정부는 대규모 공권력을 투입, 부상자까지 발생하면서 시위는 날로 커져만 갔다. 이때부터 촛불집회가 시작됐다.

정부는 뒤늦게 지난해부터 주민에 의한 예비신청공모로 바꿨으나 이미 맘이 돌아선 주민들에게서 좋은결과를 바라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결과는 ‘0’ 이었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긴 하지만 이제 원자력발전소나 핵폐기장 건설사업은 빨리 결정해 추진하기 보다는 멀리보고 주민의 참여속에 신뢰를 다져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기존방식은 버려야

그러면 다른 원전국가들은 어떤방식으로 추진에 성공했나?

우리나라는 이제 지난 18년간의 기존방식을 버리고 독일의 경우처럼 새로운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평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19기의 원전이 운전중인 독일의 경우를 보면 주민참여와 투명성을 가장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의 연방환경부는 1999년 2월 ‘아켄트위원회’란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장 부지 선정방식을 위한 위원회를 결성하고 2000년 10월에 기존의 부지적합성 조사를 중단했다. 핵폐기장 건설을 장기간의 검토끝에 건설하겠다는 독일정부의 의지이다.

독일의 아켄트 위원회는 부지선정과정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으로 부적합한 지역은 제외(지질학적으로) △지상조사를 위한 후보지 3~5군데 선정 △지상조사 허용위한 주민투표 절차 △지하조사할 부지 2군데 선정 후 주민투표 실시 △지하조사 실시 후 결정 등 다섯단계로 나눠 해결한다는 방침이다. 독일 정부 또한 이 과정이 긴 시간이 투입될 것으로 보고 2030년에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짓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 8월 탈핵과 대안적 국회의원 연구모임에 초청돼 온 미하엘 자일러 독일 원자로안전위원장은 “주민들의 참여가 번거롭고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해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주민들의 참여방식으로 대화와 투명성, 정보제공, 권한의 공평한 부여, 감독형태의 참여, 책임감 순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서 “스웨덴과 스위스를 방사성페기물 처분장 건설절차를 가장 잘 수행한 나라”로 평가했다.

우리나라도 원전선진국으로 이제 그들의 좋은방법을 참고하고 해결해 나가야할 것으로 보인다.

□ 원전정책부터 바꿔야

그렇다면 우린 어떤방식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나?

독일과 스웨덴의 경우처럼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는 평이다. 그러나 핵폐기장 부지문제 이전에 원자력의 필요성과 안정성에 대한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 문제가 해결되면 핵폐기장 문제는 조금이나마 쉽게 풀리것으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원자력과 사회적 합의’란 주제로 열린 심포지움에서 각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의견을 내놓고 사회적합의가 절실히 필요하다며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학계에선 여러의견들이 나오고 있으나 체계적인 사회적 논의와 정부가 원전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개해야한다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오미영 신라대 교수는 “사회적 합의형성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필요하다”며 “원자력 정보가 양적으로 충분하게, 질적으로 다양하게 제공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쌍방적이고 균형적이여야 한다며 정부는 앞으로 기관의 신뢰성과 위상을 높이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영희 카톨릭대 교수도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해선 이해 당사자를 비롯한 ‘공공의 참여’와 충분한 정보제공 및 토론을 위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적 합의 형성을 위해선 내부 의견을 모아 발표하는 ‘합의회의’와 무작위로 선별된 시민과 토론을 거쳐 정책권고안을 공개하는 ‘시민배심원’, 과학적 확률표집을 통해 국민을 선발한 다음 참여자들의 의견을 조사하는 ‘공론조사’, 특정사안에 대해 투표를 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국민투표’제도 방식을 내 놓았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12월17일에 열린 ‘원자력위원회’에서 중·저준위 폐기물과 사용후 연료를 나눠 분리 저장키로 설정했다. 이에 대해 원자력 관계자들은 2008년까지 중·저준위 폐기장을 건설키 위해서는 최소 올 상반기안엔 부지를 선정해야한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환경연합과의 공론화과정에서 큰 난항이 또 다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이 신뢰를 다져간다면 올해엔 진전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원전선진국들의 핵폐기장의 관리시설은]

전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을 하는 나라는 31개국이며 이중 처분장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 5개국 정도에 불과하다. 원자력발전 6위국가로서 아쉬운 대목이다. 국민들도 이부분에 대해선 인정하고 수십년동안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는 해외 핵폐기장의 사례를 알아보자.

□ 스웨덴

스웨덴의 경우 11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며 국가발전량의 50%를 원자력 발전을 통해 공급하고 있다. 스톡홀름에서 약 160km 떨어진 지점에 건설된 포스마크 처분시설은 해저 60m에 만들어진 세계유일의 해저 동굴처분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처분시설의 용량은 6만m3(약 30만드럼)이며 최종적으로 9만m3(45만드럼)로 증설할 계획이다.

□ 프랑스

프랑스의 경우 59기의 원전을 운영하며 국가 발전량의 78%를 원자력발전으로 공급하고 있다. 벌써 두번째 처분시설을 운영중인 프랑스는 파리에서 동남쪽으로 150km 정도 떨어진 내륙평지에 부지면적 약 30만평을 처분부지로 갖고 있다. 처분용량은 100만m3(500만드럼)로 앞으로 40년간 발생될 원전수거물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의 핵폐기장이다.

□ 일본

일본의 경우 54기의 원전을 통해 총 발전량의 25%를 공급하고 있다. 도쿄에서 북쪽으로 700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건설해 1992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처분용량은 300만드럼 규모이며 처분방식은 깊이 5m, 폭 90m, 길이 115m의 콘크리트 구조물에 수거물을 처분하는 천층처분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현재 사용후연료 재처리시설도 건설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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