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의 안전한 사용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치로서 가스안전기기의 개발과 보급은 가스의 사용이 시작될 때부터 중대한 과제로 조명 받아왔다. 사용자부주의나 시설 미비, 제품의 불량 등의 사고가 전체 가스사고의 6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기초적인 가스안전기기의 보급만으로도 대부분의 가스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가스사고예방의 근본적인 대책의 일환으로 가스사고의 발생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가스시설에 대한 관련 기준을 강화하는 등 지속적인 노력을 펼치는 동시에 가스사고예방을 위한 안전기기보급에 노력을 집중 해왔다. 가장 두드러진 활동중 하나가 98년부터 일본의 가스안전기구 보급운동을 벤치마킹해 시작된 가스안전기기개발보급운동이다.

가스안전기기개발보급협의회가 정식 결성된 것은 98년 1월.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가스사고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스사용가구에서의 가스사고 근절을 목적으로 가스안전기기의 적극적인 보급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한국가스안전공사를 중심으로 가스공급자 및 관련 협·단체, 소비자 민간단체, 기기제조사가 참여한 협의회가 정식 발족한 것이다.

하지만 7년간의 활동에도 불구, 일본의 성과와 달리 국내의 가스안전기기보급운동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성공사례]

안전기기보급의 성과

일본의 경우 86년 공급자들의 중심으로 시작된 LP가스안전기기 보급추진운동은 일본의 가스사용문화를 획기적으로 탈바꿈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

7년만에 700여건에 달하던 관련사고를 1/5로 감소시키는 성과를 거뒀을 뿐 아니라 ‘위험한 가스’, ‘시골가스’라는 LPG의 이미지를 공급자의 노력으로 극복해 냄으로써 가스사용 문화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낸 것이다. 더구나 이를 통해 성공적으로 유통체계 개선을 이루어 냄으로써 경쟁연료였던 도시가스 및 전기와도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체계적인 배송체계와 주기적인 안전관리를 통해 소비자에게 선호 받는 에너지원으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는 견인차가 된 것이다.

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예방형 다기능 안전장치인 마이컴미터다.

마이컴미터의 보급

마이컴미터가 최초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86년도. 당시만 해도 일본은 연간 약 580여건의 LP가스사고가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전기기 보급운동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개념의 안전기기인 마이컴미터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바로 마이컴미터의 대중화와 함께 보급운동이 시작된지 10년후인 96년에는 보급률이 95%를 넘어서게 됐다.

이에 따라 관련사고도 1/6수준인 88건으로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고 지속적인 기기의 보완과 보급에 주력, 98년 소비시설의 99%에 마이컴미터가 설치되게 됐다. 또 100여건에 달하는 가스사고는 30건 미만으로 줄어들게 됐으며 소비 시설에서 발생하는 상당수의 사고를 줄이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일본이 마이컴미터 보급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사고 감소뿐만이 아니다. 보다 현실에 맞고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안전기기개발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왔고 이를 통해 개발된 것이 바로 자기학습기능을 갖춘 지능형 마이컴미터였다. 결국 새로운 기기의 개발과 보급은 기기사업자들에게는 새로운 제품생산을 통한 산업의 활력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사업자들에게는 안전기기보급을 통한 사고감소와 효율적 관리시스템을 갖추게 하는 계기가 됐고 소비자들은 가스사고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이다.

초창기 마이컴미터 보급을 주도한 것은 LPG업계였다. 하지만 LPG업계의 성공적인 보급은 도시가스시설에도 마이컴미터를 보급하게 하는 계기가 됐으며 이를 통해 현재 일본은 거이 전 사용가구가 마이컴미터를 사용하는 여건을 만들어 낸 것이다.

마이컴미터의 기능

마이컴미터의 기본 기능은 가스의 계량과 검침이다. 하지만 부가적으로 각종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종합적인 기능을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공급자에게도 편리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즉 가스의 사용량을 디지털 신호로 전환, 저장 송신하거나 가스누설여부를 상시 감시함으로써 미소누출 등 비정상적인 누설량을 판단해 자동 차단함으로써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

동시에 가스공급압력을 항시 감시해 비정상적인 압력상승이 발생할 경우 즉각 가스를 차단함으로써 대량 가스누출로 인한 사고피해도 예방하는 기능을 내장하고 있다.

지진감지센서를 부착할 경우 지진 또는 외부충격에 의해 가스공급관이 파손 손상될 경우 피해가 사용가에게 까지 미치지 않도록 가스를 자동 차단한다. 일본의 경우 고베 등 대규모 지진발생으로 수 많은 공급관이 파손됐음에도 정작 일반 사용가에서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마이컴미터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밖에 통신시스템을 통한 원격 계량, 검침이 가능할 뿐 아니라 공급자가 직접적으로 사용가의 가스를 감시하거나 이상여부를 판단해 원격지에서 즉각 가스를 차단할 수도 있다.

첨단안전기기 보급지원책

마이컴미터는 이같이 각종 편리한 기능을 소비자 및 공급자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보급하는데는 적지 않은 노력과 기본적인 여건이 구비돼야 했다. 바로 여타 안전기기와 달리 고가의 제품이라는 점 때문이다.

일본이 10년간의 보급운동을 통해 마이컴미터의 보급을 99%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과 도시가스사가 전 사용가를 대상으로 기기를 보급할 수 있었던 것, 또 95년 사용가에 마이컴미터의 설치를 의무화 할 수 있었던 것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 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시 보급 활성화를 위해 막대한 정책자금이 뒷받침 됐을 뿐 아니라 소비자의 경우 리스제도를 통해 기기 대금을 분할 납부할 수 있도록 여건을 구비해 줌으로써 기기보급에 따른 소비자 및 공급자의 부담을 최소화했기에 원할한 보급이 가능했던 것이다.

87년 마이컴미터 보급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일본정부는 정부산하금융기관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저리로 융자했다. 일본개발은행의 경우 40억엔을 금리 3%에 제공했으며 중소기업금융공고는 금리 5.2%에 370억엔을, 국민금융공고는 25억엔을 사업자에게 제공했다. 또 정부는 사업자들이 기기의 설치대금을 소비자 요금에 반영해 7년간 리스를 통해 분할 납부토록 함으로써 기본적으로 마이컴미터를 대중화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던 것이다.

현재 일본은 1세대 마이컴미터 보급이후 지속적인 기기개발을 통해 더욱 기능이 보강된 기기를 개발·보급하고 있다. 자기학습기능이 내장된 마이컴미터의 사용이 이미 일반화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통신인프라의 변화에 따라 기존 전화선을 이용하던 통신시스템도 각종 유무선망을 통한 관리시스템으로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또 각종 생활패턴의 변화에 따라 단순안전장치로서의 기능, 계량, 검침기기을 위한 기기로서가 아니라 각 가정의 홈 네트워크 시스템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매인 서버역할을 수행토록 함으로써 사용가의 유비쿼터스(Ubiquitous) 시대를 이끌고 있다.

[국내 안전기기 보급운동]

정체된 보급운동

가스사고가 정점에 이르렀던 90년대 중반 국내에서도 일본과 같은 안전기기 보급운동을 통한 가스사고 절감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고 동일한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에 따라 98년 국내에서도 가스안전기기보급을 목적으로 한 협의회가 가스안전공사를 중심으로 구성되게 됐다. 즉 사고발생 때마다 만들어진 가스안전관리 강화대책에도 불구 가스사고에 대한 감소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할 뿐 아니라 실제 피해를 수반하고 있는 2, 3급 사고의 감소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자 근본적인 대안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7년간의 안전기기보급 노력에도 불구 국내의 가스안전기기 보급운동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초창기 가스안전공사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가스안전기기 보급운동은 공사의 잦은 조직개편으로 인해 담당부서가 빈번히 교체되면서 본연의 기능인 새로운 안전기기의 개발과 보급이란 목적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기초안전기기인 퓨즈콕 보급운동으로만 전락한 상태다.

또 주체가 돼야할 LP가스업계의 참여는 형식적 참여로 전락해 버렸고 도시가스업계의 경우 지난해를 기점으로 퓨즈콕 보급이 완료되자 현재는 가스안전기기 보급 활동이 전면 중단된 상태가 됐다. 현재는 단지 64%에 불과한 LPG사용시설에 퓨즈콕의 무료보급이란 목적으로 공사와 가스수입업자, 정부의 지원책만이 남은 상태가 돼 버렸다.

일본과의 차이점

문제점은 가스안전기기 보급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일본의 경우와 비교할 때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가스안전기기 보급운동의 주체는 소비자와 가스공급자 였던 반면 우리의 보급운동은 가스안전공사를 주축으로 한 지원책에 불과한 정책적 한계점 때문이다. 결국 가스안전공사는 가스업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견인하기보다는 단지 보급실적확대에만 주력하면서 기초안전기기인 퓨즈콕 보급에만 열을 올리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일본의 경우 가스안전기기 보급이 바로 업계 생존의 절대적인 과제로 인식된 반면 우리의 경우는 가스사고 감소라는 정부과제만이 앞서 있는 상태다. 이는 안전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가 높아짐에 따라 안전기기의 보급이 공급자에 이익으로 직결되는 결과를 낳은 일본의 사례와 달리 우리의 경우 사업자의 이윤추구를 도외시한 강제 보급운동의 성격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또 일본은 업계의 생존을 위한 유통구조개선과 맞물려 안전기기보급운동이 진행됐다는 점도 우리와 다른 점이었다.

70년대 중반이후 일본의 판매업계는 소비자의 중량판매에 대한 불신과 이를 타개키 위한 대안으로 LPG체적거래제를 추진해야 했고 결국 경영합리화의 필요성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게 됐다. 또 사고방지를 위한 안전기기의 활발한 개발이 필요했을 뿐 아니라 공급자가 일일이 방문해야하는 수동적인 안전관리가 아닌 새롭고 효과적인 안전관리방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때문에 일본의 경우 보다 효율적이고 보다 안전한 가스의 공급이 가스안전기기보급운동의 기본 이념이 됐고 효과적인 안전관리 수행을 위해 마이컴미터와 같은 첨단기기의 보급과 함께 유통구조의 개선도 맞물려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국내의 보급운동은 협의회 구성 초기부터 충분한 사전준비와 업계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로 진행됐기에 가스안전기기의 보급실태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못한 상태였으며 결국 보급주체가 돼야할 업계는 방관자에 입장에서 정부시책에 억지로 끌려가는 형태가 되어 버린 것이 현재 보급운동의 한계점이었다.

결국 보급운동은 보급률 확대만 연연한 협의회의 의지대로 저가형 안전기기인 퓨즈콕 보급에만 매달리게 됐고 매년 적지 않은 자금이 퓨즈콕 보급사업에 투여돼 왔으나 저가보급, 실비지원, 무료보급 등으로 결국 업계는 노동력의 투입에 비해 오히려 수익원 중 하나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지자 그나마 판매업계의 참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개선대책

가스안전기기 보급운동은 궁극적으로 침체된 가스산업을 활성화시키는 운동으로 새롭게 자리해야 한다.

가스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타 에너지원과의 비교 경제성, 안전성, 편리성에 대한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가스안전기기의 보급은 사용가의 안전에 대한 기본욕구를 차치하더라도 반드시 이뤄져야할 목표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급자를 중심으로 현재의 보급운동을 새롭게 출발시켜야만 한다. 공급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건과 공감대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소비자를 계도하는 보급운동으로 새롭게 자리해야 할 것이다.

또 단지 퓨즈콕의 다량보급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차단기, 경보기를 비롯한 첨단안전기기의 보급도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가스사업자들은 새로운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기기업자는 보다 새로운 안전기기를 지속적으로 개발 생산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보다 거시적 안목과 지원이 절실하다. 우선 가격중심의 저가 보급이 아닌 안전기기의 기능과 성능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보급체계와 지원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또 각기 다른 도시가스와 LPG시설에 대한 여건에 맞는 안전기기보급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우선 업계에 대한 안전기기 보급의 실질적 메리트를 제공하고 신규설치되는 가스시설에 대한 기준을 강화함으로써 안전기기가 설치될 수 있는 여지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또 새로운 안전기기 개발을 위한 과감한 지원과 함께 개발된 안전기기가 안정적으로 생산, 판매가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사용자와 공급자가 손쉽게 안전기기를 설치할 수 있도록 자금지원이나 요금분할 납부 등의 지원책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결국 안전기기에 대한 정확한 수요, 현실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현실이 현재의 안전기기보급운동을 제자리걸음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현재 가스업계는 새로운 도전의 상황에 봉착하고 있다. 소비자의 높은 안전에 대한 욕구와 다양화되고 있는 에너지사용패턴, 그리고 보다 편리해진 각종 기기의 등장으로 경쟁에 점차 밀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홈네트워크 시대의 개막과 함께 가스 사용기기도 그 편리성이 강조되는 시대를 맞고 있으며 그 부가가치는 천문학적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안전기기 보급운동을 새롭게 열리는 시대에 맞도록 개편함으로써 현재의 위기상황을 타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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