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재 원자력 환경기술원장
산업이 발전하고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에너지의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나 현재 세계 에너지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는 수십 년 내에 고갈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수급에 대한 불안과 위기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특히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이른바 브릭스(Brics) 국가의 경제성장이 가속화되고 에너지 수요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전 세계는 에너지 확보를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11월에 러시아 의회가 교토의정서를 비준함에 따라 전세계 국가들은 기후변화협약 이행 문제로 비상이 걸렸다.

교토의정서는 1990년 기준으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55%를 차지하는 55개국 이상이 비준하면 발효하게 돼 있는데 러시아의 비준으로 이 요건이 충족되면서 오는 2월16일부터 효력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선진국을 중심으로 하는 1차 의무부담국은 오는 2008년부터 2012년 사이에 이산화탄소 등 6가지 종류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평균 5.2% 감축해야 한다.

◆ 세계는 에너지 전쟁 중

우리나라는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97%에 이르고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석유를 많이 소비하는 국가이며 국가 전체 수입액의 20% 이상을 에너지 수입에 쏟아 붓는 그야말로 너무도 취약한 에너지 수급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럽다면 기후변화협약과 관련해서 우리나라는 일단 온실가스감축 1차 의무부담국에서는 제외되어 당장 급한 상황은 모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머지않아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부담국이 될 것이 확실시 되고 이 경우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많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급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으며 경제적인 파급효과 또한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지난 1970년대에 전세계를 강타했던 두차례의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직접 경험했다. 생산원가 상승으로 수출 경쟁력은 떨어지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솟아올랐으며 제한송전으로 어두운 밤을 보내야 하는 등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에너지 문제의 중요성을 실감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야 했고 결국 기술자립만 이룩하면 값싼 에너지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는 원자력발전을 선택했다. 그 결과 현재 19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면서 우리나라 전력의 40% 이상을 담당하는 중추 에너지원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양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운영기술 측면에서도 우리나라는 세계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원자력발전의 도입 운영으로 에너지 사정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완벽하고 다양한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 돼야 하며 태양열이나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일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재생에너지는 지형적, 지리적 제약이 많을 뿐만 아니라 경제성면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2004년 일본 자원에너지청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100만kW급 원자력발전소 1기에 해당하는 전력을 얻기 위해서는 풍력의 경우 1,000kW급 풍차 4,000기와 도쿄 돔 5,550개에 해당하는 248평방킬로미터의 부지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발전원가도 원자력에 비해 2∼3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태양광의 경우도 같은 양의 전기를 얻기 위해서는 300kW급 태양광 모듈 2만1,875개와 도쿄 돔 1,500개에 해당하는 67평방킬로미터의 부지, 그리고 발전원가도 원자력에 비해 10배 이상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재생에너지가 갖고 있는 이러한 문제점 해결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비교적 친환경에너지인 원자력발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의 대안으로 생각했던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의 역할이 경제성 및 기술적 한계로 당초 예상보다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나아가 계속되는 고유가의 행진과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환경문제 등으로 최근에는 다시 원자력발전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가고 있다.

◆ 현실적인 대안은 원자력발전 뿐

원자력을 계속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을 더욱 강화해 나가는 한편 원자력의 이용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시설을 하루 빨리 확보하는 일이 필요하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되는 방사성폐기물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그 하나는 휴지나 폐기된 작업복과 같이 방사선을 아주 조금씩 약하게 방출하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이고 다른 하나는 원자력발전소에서 타고 나온 연료로서 방사선을 아주 세게 방출시키는 사용후연료다.

우리나라는 처음 원자력발전을 시작할때 이러한 방사성폐기물을 우선 발전소 내에 임시 저장했다가 나중에 폐기물이 많이 쌓이면 영구처분 등 대책을 마련하기로 계획했다. 그리하여 원자력발전소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치와 함께 콘크리트 건물로 폐기물의 임시저장 창고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사용후연료의 저장을 위해 수영장과 같은 저장용 수조를 만들었다. 저장수조는 사용후연료에서 발생되는 강한 방사선을 막아주는 동시에 열을 식혀주는 역할도 한다. 이러한 저장수조는 원자력발전소마다 7년 내지 10년 정도의 발생분량을 보관할 수 있는 규모로 건설됐다.

198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원자력발전소도 늘어나고 발전소 내의 폐기물 임시저장고도 점점 차오르자 정부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은 영구처분하고 사용후연료는 중간저장 관리하되 이를 위한 두 시설을 동일부지에 건설한다는 국가정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그러면서 부지를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9년에 미국에서 쓰리마일 원전사고가 발생한데 이어 1986년에는 소련에서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원자력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때마침 우리 사회에 불기 시작한 민주화의 열풍으로 혐오시설 건설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저항이 거세어지면서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건설을 위한 부지확보는 처음부터 커다란 어려움에 봉착했다.

국민이해활동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원자력계와 정부는 반핵 및 환경단체의 조직적인 반대활동에 대해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기 위한 홍보활동을 적극적, 지속적으로 펼쳤지만 안면도와 굴업도, 그리고 부안으로 이어지는 연이은 부지확보 노력이 결실을 보지 못하고 18년의 세월을 지나 오늘에 이르게 됐다.

◆ 18년에 걸친 방폐장 부지확보 노력 무산

지난 2004년은 원자력과 관련된 정책 두가지가 새로이 마련된 의미있는 한 해였다. 하나는 원자력발전 비중을 낮추는 대신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제2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04∼2017년)을 확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장과 사용후연료 중간저장시설을 동일부지에 건설한다는 기존의 정책을 변경하여 중저준위폐기물의 영구처분장을 사용후연료 중간저장시설과 분리하여 우선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이 두가지 정책 모두 그동안 환경단체가 주장해 온 내용을 사실상 모두 수용한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그동안 줄곧 원자력의 비중을 줄이고 그 대신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사실 재생에너지의 개발 확대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다만 환경단체의 주장과는 달리 재생에너지는 특성상 원자력과 서로 대체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지난해 2.5%에서 2017년까지 7.3%로 늘려 나가기로 한 것도 원자력을 대체한다기보다는 전원구성의 다양화 차원에서 상호 보완해 나가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가 지난 12월17일에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원자력위원회를 개최해 중저준위폐기물 영구처분장과 사용후연료 중간저장시설을 분리, 추진한다는 새로운 정책안을 확정한 것도 역시 그동안의 환경단체의 주장을 반영한 결과이다.

환경단체는 그간 줄곧 중저준위폐기물보다는 사용후연료의 안전성을 강조하면서 사회적 합의와 절차의 투명성을 강조해왔다. 이에 정부는 이를 모두 수용해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적고 처분이 용이한 중저준위폐기물 영구처분장을 먼저 건설하기로 하고 올 초에 주민투표를 포함하는 새로운 절차를 마련하여 발표함과 아울러 사용후연료는 시간을 갖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추진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 이제는 환경단체도 협력해야

이로써 환경단체의 요구는 모두 수용된 셈이다. 따라서 이제는 환경단체가 바뀌어야 할 차례다. 무엇보다 지난 18년간 소모적인 논쟁으로 얼룩져온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확보 문제를 해결하는데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 더 이상의 반대는 이제 명분도 없을뿐더러 국가와 국민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해 국가 사활이 걸린 에너지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장은 외국에서는 이미 40년 전부터 운영이 시작되어 지금은 70여개 이상 아무 문제없이 운영될 정도로 안전성이 입증된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장의 경우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처럼 환경단체들의 격렬한 반대활동도 없었고 사회적 합의를 위한 국가차원의 대대적인 활동도 없었다. 주민의 의사를 존중해 주민투표를 하고 관련 법률을 마련해 대대적으로 지역지원을 해 주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제 또다시 반대를 한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환경단체가 반대를 위한 반대활동을 해왔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핑계, 저런 구실을 붙이면서 정부 정책의 발목을 잡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소모적인 논쟁으로 18년의 세월을 소비하는 동안 남들은 벌써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넘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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