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자권 한국석유공사 해외조사 팀장
지난해 12월10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된 제 133차 OPEC 총회에서 OPEC 산유국들은 일일 100만배럴의 생산을 감축하기로 합의하였다. OPEC의 이번 결정은 지난해 6월부터 지속된 증산 정책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해에 중국의 석유수요 폭증과 이라크, 사우디,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의 공급 불안을 배경으로 국제 유가는 크게 급등해 지난 2차 석유 위기 당시의 가격수준에 육박하였다. 이러한 지나친 유가급등은 소비국은 물론 산유국들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였고, OPEC으로서도 유가를 관리 가능한 범위로 환원시키는 것이 당면 과제였다.

이에 따라 OPEC은 지난해 하반기에 200만배럴 이상의 증산을 단행하였고, 11월 들어서는 저유황 경질 원유를 중심으로 큰 폭의 유가하락이 있었다. 특히 올해 2/4분기 비수기 수요 감퇴를 앞두고 OPEC이 현재의 증산을 계속한다면 유가폭락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겨울철 성수기를 앞두고 있고 아직은 재고도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어 예기치 않은 혹한 등이 닥칠 경우 유가는 다시 OPEC 산유국들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서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OPEC은 지난 총회에서 감산정책을 선택함으로써 더 이상의 유가 하락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였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OPEC의 실질적인 목표 유가가 상승하였다는 신호를 시장에 준 것으로 평가된다.

2000년 3월 OPEC은 유가밴드제를 채택해 OPEC 바스켓 기준으로 22~28달러를 목표유가로 설정한 바 있으나 이후 석유결제통화인 달러화의 상대적인 약세가 지속됨에 따라 OPEC의 실질적인 목표유가 수준은 크게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총회에서 구체적으로 새로운 목표 유가의 수준이 합의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산유국들은 목표 유가인상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상황이다. 일부 강경 산유국들은 35달러내지 38달러 수준까지의 상승을 주장하기도 하고 온건 산유국인 사우디도 공공연히 30달러 유가를 거론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오는 1월30일 임시 총회를 개최키로 한 것은 OPEC의 의도와 달리 유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경우(30달러를 하회)는 추가적인 감산을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표현으로 해석된다. 물론 향후 유가는 겨울철 날씨 및 중간 유분 재고 증대 여부 등이 민감한 변수가 될 수 있겠으나 OPEC의 감산 의지 천명은 강력한 유가의 하한선을 설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의 고유가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나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시장의 구조적인 요인이 상당히 작용하였다는 것이다.

첫째, 80년대 이후 저유가시대를 거치면서 석유공급능력에 대한 투자 부진의 여파로 현재 세계 공급 능력은 병목현상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이러한 병목 현상을 해소하는 데는 투자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는 시장을 통제하는 OPEC 산유국들의 결속력 및 유가 관리 의지가 강력하다는 것이다. 중국 등 브릭스 개도국들의 빠른 수요 성장, 비 OPEC 산유국들의 공급능력 증대 제약 등으로 OPEC 산유국들의 시장 영향력은 갈수록 증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달러약세와 인플레의 진행, 자국의 재정 수요를 감안하면 OPEC 산유국들도 더 이상 20달러대 유가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요인들을 고려하면 이제는 20달러대 이하의 저유가시대는 종료되었고 30달러대 초반의 유가 시대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올해 국제유가도 수요증대 속도, 산유국 정정불안, OPEC의 시장대응 정책 등이 변수가 될 수 있으나 이러한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시장의 석유 수급도 지난해와 유사한 상황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에 150만배럴(1.8%) 정도의 석유 수요 증대가 예상 되지만 이에 상응하는 규모의 비 OPEC 공급 증대가 예상되고 있어 OPEC의 원유수요는 지난해 수준에 머무를 전망이다.

OPEC의 잉여생산능력은 지난해 하반기보다는 조금 개선 되겠지만 공급 불안을 해소할 만큼 충분히 증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이라크 등 중동 불안문제도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유가상승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을 주도하는 OPEC 산유국들의 유가 방어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에서 유가 급락(30달러 이하로) 상황이 오면 이들 국가들이 적극적인 감산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올해 국제유가도 지난해와 유사한 수준(두바이 기준 33~35달러)으로 전망된다.

한편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고유가 및 경제 성장 둔화, 겨울철 온화한 날씨 지속으로 수요 증대폭이 대폭 둔화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또 중동 지역의 불안도 지난해보다 크게 완화되거나 조기 해소되면서 이라크 수출이 크게 증가하는 반면 이에 대한 OPEC의 신속한 감산이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를 가정하면 유가가 25~30달러 수준으로 하락할 가능성도 예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들 수 있다. 지난해 겨울 예상치 않은 혹한 내습 및 중국 등 개도국의 높은 수요 증대율이 지속 되고 이라크 상황의 악화나 이란의 핵문제 악화로 인한 새로운 공급 불안이 제기되는 상황을 가정하면 유가는 기준 시나리오를 크게 넘어서 40달러대로 급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유가가 급격히 하락할 경우는 OPEC의 유가 방어를 위한 감산 가능성이 높으며 지나친 고유가 지속은 소비국들의 대응을 유발할 수 있으며 산유국들도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30달러 이하의 저유가나 40달러 이상의 고유가가 장기간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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