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홍시현 기자] 바일란트 한국지사 철수는 국내 보일러시장의 단면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다.

바일란트의 국내 지사인 바일란트코리아의 국내 영업권을 알토엔대우로 넘기는 계약이 이달 중으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양사에서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졌으며 세부적인 사항만 남겨놓고 있다.

지난 2015년 한국의 프리미엄 보일러시장을 잡겠다고 선언하며 한국시장에 진출한 바일란트는 결국 4년만에 선언을 접었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표면적으로는 기대이하의 영업실적이다. 하지만 밑바탕에는 한국시장에 대한 철저한 분석 실패가 깔려 있다. 바일란트는 한국시장 진출 당시 120만대 규모의 한국 보일러시장에서 1%의 프리미엄 보일러시장을 잡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BMW, Benz, Bosch 등 세계적인 브랜드를 가진 기계산업 선진국 독일기업에, 세계적인 보일러기업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한국시장에서 1%, 즉 1만2,000대를 못 팔겠냐는 것이다.    

2015년 기자간담회 당시 칼슨 보크란더 바일란트 회장(우)이 한국 프리미엄 보일러시장 진출을 설명하고 있다.
2015년 기자간담회 당시 칼슨 보크란더 바일란트 회장(우)이 한국 프리미엄 보일러시장 진출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시장 ‘성공’, 한국에서 ‘독’
바일란트의 이러한 자신감은 중국시장에서의 성공에서 기인했다. 

올해 초 바일란트는 중국시장에서 누적판매량 100만대를 돌파했다. 바일란트는 중앙난방 공급이 주를 이루던 중국시장에 유럽형 개별난방 방식을 전파한 선두 브랜드이며 중국시장 진출 이후 다양한 보일러 모델을 공급해왔다. 또한 2015년 바일란트는 중국법인 본사를 북경에서 상해로 이전,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남부쪽 난방시장 트렌드에 맞춘 사업 개발을 통해 남부 난방시장을 대폭 확장시켜 가며 두 자리 수 성장을 올렸다. 지난해 한 해 동안만에도 20% 이상의 매출신장을 기록했다. 

바일란트의 중국시장 성공은 같은 아시아, 인접국가인 한국으로 이어질 수 것으로 기대했다.

바일란트의 핵심 키워드는 ‘프리미엄’이다. 성능과 A/S 등 기존 제품과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가격도 기존 보일러대비 3~4배 비싸 가격도 차별화가 된다. 그러다보니 수요는 제한적 일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의 성공은 중국 내 사회적·경제적 환경이 뒷받침됐다. 중국 정부의 환경규제로 가스 배관망 설치 등이 확대되며 글로벌 보일러시장의 블루오션으로 성장했다. 여기에 자본주의 경제 체제 도입에 따른 경제 급성장으로 백만장자가 한국인구보다 많을 정도로 부유층이 크게 증가해 바일란트가 내세우는 프리미엄 정책이 통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오래 전부터 보일러시장은 정체된 시장으로 굳어졌다. 수요도 일반 보일러 또는 콘덴싱으로 구분될 정도로 프리미엄에 대한 인식은 극히 낮다. 자가일지라도 효율보다는 가격을 더 고려하는 구매 패턴이 강하다. 보일러의 설치 특성상 프리미엄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인 보여주기가 쉽지 않다. 프리미엄 수요층은 성능의 차별성도 중시하지만 타인과의 차별성, 즉 과시성을 더 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프리미엄 보일러를 포함한 모든 보일러는 한국 내에서는 아직 관심 밖의 제품으로 분류된다.       

■과도한 보여주기식 마케팅
바일란트는 약 4년간 한국에 약 8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 진출하면서 자리 잡은 장소는 강남 언주역 바로 옆 건물이다. 주 고객이 가장 많고 찾을 수 있는 장소를 택했다. 건물 2층 전시장, 12층 사무실 등 2개 층을 사용했다. 강남에서도  초역세권으로 엄청난 임대료를 감당해야 했다. 2층 전시장은 거의 방문 인원이 없다보니 아르바이트나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지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고가의 제품 이미지에 맞게 광고도 흔히 볼 수 없는 프리미엄 잡지에 광고를 게재했다. 이 광고비 역시 만만치 않았다. 관계자는 “경쟁 보일러사에 보다 잡지 한 페이지라도 앞쪽에 넣기 위해 광고비를 더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마케팅으로 꼽는 것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후원이다. 바일란트는 파트너 스폰서를 통해 프리미엄 보일러 12대를 인천지역 저소득 가정 아동을 위한 학교 및 아동복지 시설에 제공했다. 당시 관계자에 따르면 비용은 보일러 기부하는 가격 정도 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업계의 관계자는 “최소 억원 단위 이상이 들었을 것”이라며 “대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바일란트 부스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계의 관계자 역시 “실질적인 구매가 아니더라도 잠정적인 구매도 이뤄지기가 힘든 데에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일관적인 마케팅이 필요한 시점에서도 마케팅 담당자의 잦은 퇴사 및 교체로 바일란트 진출 초기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바일란트 국내 판권 인수한 ‘알토엔대우’
바일란트 한국지사가 철수하면서 가장 관심을 받은 기업이 ‘알토엔대우’다.

바일란트의 국내 판권을 인수할 기업은 ‘알토엔대우’ 밖에 없다. 만약 알토엔대우에서 거절했을 경우 바일란트는 한국시장에서 글로벌 명성이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경동나비엔, 귀뚜라미, 대성쎌틱, 롯데기공 등 국내 보일러사들은 이미 프리미엄 제품이 있기에 유일하게 알토엔대우만이 프리미엄 제품이 없어 바일란트에서 알토엔대우와 접촉을 시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토엔대우 입장에서는 이번 계약은 손해날 것이 없다. 기존 영업인력 활용을 통해 매출을 확대할 수 있을뿐더러 프리미엄 제품을 추가해 라인업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바일란트 입장에서도 한국시장에서의 완전 철수 막아 재진출이라는 끈은 남겨 놓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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