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설악산 단풍이 절정이라 등산로마다 몰려든 인파때문에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고 하더니 도심(都心)거리에도 어느새 낙엽이 흩날려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가을하면 삼척동자도 알만큼 독서의 계절, 결실의 계절이라고 말들 하지만 더러는 가을이야말로 사색의 계절이며 여행의 계절이 아니겠느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누가 어떤 의미를 부쳐 부르던지간에 가을은 잠시 먼 하늘을 바라보게 하며, 가을은 또 차분하게 가라앉은 마음으로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게도 하고, 못내 그리운 사람 떠올리게해 사무치게 해놓고마는 그런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저래서일까 문득 누구에겐가 편지를 쓰고 싶게 하는 그런 때도 바로 이 때가 아닌가 싶어 차라리 이 가을을 편지쓰는 계절로 삼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그리운 사람, 못잊을 사람, 고맙고, 다정하고, 따뜻했던 사람에게 만리장서가 아니면 가랑잎 닮은 엽서 한장이라도 띄워 소식 알게하는 그런 계절로 삼는것도 의미있으련만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어제는 오늘의 그리움이다. / 가을날 소리없는 별 아래 / 편지를 뜯으며 / 한 소경을 기다린다. / 하늘에 금이가는 거미줄이여


이는 시인 고은(高銀)의“편지”라는 시 한귀절이고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이런 편지 한 귀절도 있다.


섣달, 눈이 내리니 사랑스러워 손에 쥐고 싶습니다. 밝은 창가 고요한 책상에 앉아 향을 피우고 책을 보십니까?

창가의 소나무에 채 녹지않은 눈이 가지에 쌓였는데 그대를 생각하다가 그저 좋아서 웃습니다….


그리운 이를 생각하는 단원의 따사로운 정이 넘쳐 흐르고 하얀 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빙긋이 미소짓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는 사연이다.

편지란 비보(悲報)나 그밖에 몇몇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대체로 그립고 기다려지는 것이 상례이며 정겹고 반갑기 마련이다.

편지는 또 꿈이 있고 낭만이 있으며 가슴설레게도 한다. 어쩌다 그것이 연인들끼리의 절절하고 애틋한 사연을 담은 것이라면 더더구나 간절히 기다려지고 소중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요즘 이렇게 정겹고 따사로운 사연이 실려있는 편지를 너무 잃어버리고 사는 것 같고 편지를 써 본지도, 받아본지도 오래이라 갈수록 삭막하고 각박하기 비길데가 없다.

불과 몇해전 까지만 해도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물론 집안 어른들께 정성을 다한 문안편지를 올리곤 했었다.

그러나 이또한 이제는 잊은지 오래인듯, 먹고 살기 바빠 못쓰고, 교통수단, 통신수단 기막히게 좋아진 세상이라 쪼르르 달려가거나 휴대폰 한 통화면 그만이라 정감어린 편지는 그 알량한 문명의 이기에 기가 죽어버리고만 느낌이다.

편지를 쓰자, 이 가을이 다 가기전에 편지를 써 사그러져가는 정서에 불을 지피고 무너져가는 인간성에 가교를 놓자.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도 좋고, 스승의 날에도 찾아뵙지 못한 은사님께도 좋다.

동창, 동기, 그 누구에게나 편지를 쓰자, 미사여구 찾아 밤새 끙끙대며 연애편지 쓰던 때를 추억하며 써 보자.

문득 문득 생각나는 충전원, 안전관리자, 공급원에게도 격려와 안부를 전하자.

가스를 팔기보다 안전을 판다는 소신을 갖고 충청도 중소 도시에서 소처럼 묵묵히 판매점을 하고 있는 E사장께도 쓰고, 용기(容器)를 애첩(愛妾)다루듯 굴리거나 집어 던지는 법없이 애지중지 소중하게 여기는 K사장께도 꼭 써야겠다.


편지야 너 오느냐 네 임자는 못 오드냐 / 장안도상(長安道上) 넓은 길에 오고가기 너 뿐일까 / 일후(日後)란 너 오지 말고 네 임자만 보내라


지은이가 분명치 않은 시가요(詩歌謠)가 이제는 편지조차 보낼 수 없는 곳으로 영영 떠나버린 친구를 그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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