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유섭 사무국장
한국물산업협의회

[투데이에너지]2018년 가을 부산에 있는 모 기업에서 좋은 소식을 전해왔다. 미국 조지아주 정수장에서 테스트 했던 수질계측기들이 모두 좋은 성능을 내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고 발주처에서 만족해 구매를 결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작년 한 해에만 순수 한국산 수질계측기를 50대 이상 납품했다. 미국시장에 진출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제일 큰 다국적 계측기 업체의 제품을 교체하는 현장에서 이룬 성과여서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 업체는 2015년에 처음으로 미국수도협회 전시회를 통해 미국땅을 밟았고 2017년에 조지아주에 있는 정수장 담당자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사흘간의 상담 끝에 현장을 방문했고 현장에 맞게 계측기 디자인을 변경해 성능테스트를 하게 됐다. EPA(미국 환경청)에서 정하는 측정방법에 준하는 수준 이상의 성능을 내야 하는 테스트였고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나타냈다. 테스트에 소요되는 비용은 환경부에서 지원을 받았으며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만에 그 결실을 맺게 됐다.

우리나라의 작은 중소기업 기술이 업계 최대 글로벌기업의 제품을 제치고 채택될 수 있었던 성공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운도 좋았고 기회도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기회도 운도 찾고 준비하고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기존 기술들이 갖고 있던 문제들을 IT기술을 접목해 개선했고 현장 근무자들이 사용하고 유지관리가 편리하도록 현장 맞춤형으로 바로 디자인을 바꿔 제안할 수 있었던 순발력, 즉 경험과 기술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해외시장에서 특히 선진국은 우리보다 훨씬 더 높은 기술력을 요구한다. 상하수도와 같은 공공영역은 어떤 기술이든 규격(standard, code)이 맞는지, 기술 규정(guideline)에 적합한지 또는 이러한 것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검사·인증 등을 받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현지 실적이 있는지 등이 요구된다. 우리나라는 물론 어느 나라에서도 공통적으로 듣게 되는 질문들이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것들을 우리는 포괄해서 기술장벽(TBT: technical barriers to trade) 이라고 한다.

기술장벽이란 비관세 장벽이라고도 하는 국가간 상품무역에 직접적으로 경제적 효과를 미치는 관세 이외의 모든 정책수단을 말한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위생검역, 선적전 검사, 기술장벽 등을 기술적 수입조치라고 하며 기술장벽에는 환경보호, 기술규정, 표준, 라벨링, 품질요구 등이 모두 포함된다.

WTO(세계무역기구)에서도 TBT 협정을 통해 무역상의 기술적 장벽이 없도록 하고 있지만 환경·안전·품질·위생 등에 대해서는 예외로 하고 있다. 일본, 미국 등 선진국의 관련 단체나 기관에서는 이와 같이 보이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작용되는 기술장벽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한편 물분야 기술사업화 과정을 보면 기술개발부터 현장적용까지 보통 5∼7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많은 기술들은 개발단계에서 사장되고(죽음의 계곡), 상용화 단계에서 또한 실패하게 된다(다윈의 바다).

그러나 국내에서 실제 상용화에 성공한 기술도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또 다른 장애물, 기술장벽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을 중소기업이 스스로 헤쳐 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환경부는 물산업클러스터를 통해 전과정에 걸쳐서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미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져 있고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소위 저 안쪽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육안으로 볼 수 있는데 막상 다가가려하면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중국의 경우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두꺼운 벽이 있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결국 손들고 나오거나 합자회사를 만들어 기술을 넘길 수 밖에 없다고. 기술장벽 말고도 다른 벽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 물시장의 1/4 정도 된다. 초급 기술부터 초고도 기술까지 모든 기술들의 각축장이다. 기술력도 있어야 하고 가격도 좋아야 한다. 우리나라보다 더 철저하게 성능과 실적을 요구한다. 심지어는 유리벽으로 표현되는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고 한다.

그래도 미국은 가장 큰 시장이고 기술의 가치가 인정이 되고 기술력만 있다면 해볼만하다고 한다. 아니 꼭 도전해야만 하는 시장이다. 미국시장에 제품을 판다면 그 자체가 좋은 실적(reference)이 돼 세계 어느 국가에 가서도 인정을 받게 된다. 어느 전문가의 말처럼 미국에 팔면 세계가 산다.

저작권자 © 투데이에너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