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홍시현 기자] 1974년 설립된 ‘가스기기의 명가’ 린나이가 올해 1월22일로 창립 45주년을 맞이했다. 린나이는 그동안 ‘생활문화의 향상’을 목표로 현재까지 가스보일러 선도업체로서 다양한 도전은 물론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기술개발 및 경영활동을 통해 국내 보일러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를 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반세기 가스기술 노하우로 가스보일러뿐 아니라 가스레인지, 캐스케이드, 업소용 조리기구 등 다양한 가스기기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 급격히 성장하는 전기레인지, 빨래건조기 시장에서 린나이만의 감성에 소비자의 니즈를 결합시킨 제품으로 소비자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린나이가 현재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선 품질이나 서비스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회사를 구성하고 있는 직원이다. 고석구 린나이 수석부장을 만나 린나이의 역사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 린나이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가

우선 린나이와 함께 한 추억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회사와 투데이에너지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올해로 린나이에서 40년째 근무하고 있다. 전북에 있는 이리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품질관리로 입사해 총무부서에서 20년 이상 근무하고 현재는 직할부문/품질보증부/품질지원팀 수석부장을 맡고 있다. 내년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처음 린나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국내에 고도성장기라고 볼 수 있는 1970년대 말로 지금처럼 일자리가 없어 취업을 못하는 일은 없었다. 당시 공고 육성화 정책과 산업의 발전으로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면 회사를 선택해서 갈 수 있었다. 학창시절 나름대로 학교생활에 최선을 다했던 나에게는 린나이는 무수히 많은 선택지 중 하나였다.

또한 1980년대 초 도시가스 보급망이 확대되면서 가스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동시에 가스 관련 기기 산업의 성장 기반도 서서히 다져가며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판단됐다.

처음 친구의 소개로 린나이 사원 모집을 전달 받고 면접을 보고 회사와 대화를 하면서 회사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입사를 결심하게 됐다. 이러한 가능성은 곧 현실로 다가 왔다. 1980년대 대대적인 투자로 처음 입사했을 때 180명이었던 직원 수가 지금은 1,000여명 수준으로 기대 이상으로 커졌다.

린나이에 이렇게 오래 근무할 줄은 몰랐다. 린나이 특유의 가족적인 분위기와 직원과의 상생 관계는 40년을 다니는데 큰 도움이 됐다. 지금도 지난 선택에 전혀 후회가 없다. 지금은 엄청나게 큰 기업이 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항상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기업 분위기는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다. 함께 입사한 동기는 30여명 정도인 걸로 기억한다. 얼마 전에 옛 생각을 하며 동기들이 몇 명이나 남아있는지 한번 세어 봤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는 동기는 24명이나 된다. 이렇게 많이 남아 있을 거라곤 생각 안 했는데 아직까지 이렇게 많은 동기가 남아 있다는 게 신기했다. 다들 60세 정년을 얼마 안 남겨둔 상황이라 조만간 동기모임을 하면서 옛날 이야기를 안주삼아 소주 한잔을 해야겠다.

우리 동기만 이렇게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뒤로도 1980~83년 기수들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린나이의 기업 분위기와 린나이에 대한 애사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 근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은

품질관리로 처음 입사해 QC업무와 연구관리실에도 있었지만 1995년부터 20년이 넘게 총무에서 근무했다.

총무 업무를 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더 보람있는 일을 많이 한 것 같다. 총무에 있으면서 대외업무와 노사관계 발전을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 같다.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안정적인 노사관계가 유지돼야 기업과 직원들이 함께 상생할 수 있다.

노사관계 발전의 키포인트는 ‘교감’과 ‘소통’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교감과 소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문득 티타임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처음 그 제안을 했을 땐 다들 귀찮아하고 낯설어 했지만 지금은 하나의 문화가 돼 매주 수요일 오전 티타임을 하고 있다. 티타임을 하면서 노동조합에서 원하는 회사의 방향이나 필요한 복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누면서 노사관계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됐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복지부분에서나 기업문화에서 린나이가 어디에 내놔도 부족함이 없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구축됐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자리는 2016년에 구매한 부지다. 린나이의 제2의 도약이 시작되는 자리다. 이 부지 구매 진행 과정에 참여했다. 이 부지를 구매하기 위해 여러 기업들이 나섰지만 결국 린나이가 새로운 주인이 됐다. 경쟁 기업들보다 결코 많은 금액을 제시하지도 않았고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린나이가 새로운 주인이 된 이유는 인근에 린나이 공장들이 있어서 주위에서 본 린나이에 대한 우호적인 이미지는 기존 부지를 가지고 있던 기업의 경영진 설득에 크게 작용했다. 그만큼 기업의 이미지는 중요하고 형성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일은 야간대학을 진학해 향학열을 불태웠던 것이 아닌가 싶다. 고등학교 졸업 후 린나이에 입사해 근무하다 군대에 갔다. 제대 후 재근무를 하고 1986년 야간대학에 진학, 졸업을 하게 됐다. 졸업을 하기 까지 회사의 지원이 큰 도움이 돼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 후에는 연구소에서 잠시 근무하다 1995년부터 총무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동료들과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는 기업환경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생각에 보람도 있고 이렇게 40년 동안 장기근속할 수 있게 도움 주신 경영진들에게 감사하다.

정년퇴직이 가까워질수록 사실 아쉬움은 더 커지는 것 같다. 회사와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행복한 기억들이 너무 많다. 가능하다면 지금부터 10년을 더 다니고 싶은 회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쉽다.

이제 회사와의 추억은 추억대로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마음 한켠에 넣어두고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정년퇴직 후 두 번째 인생을 생각하고 더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데 더 힘쓸 생각이다.

■ 린나이가 어떻게 성장하기를 바라며 후배들에 하고 싶은 말은

지금은 전기레인지나 빨래건조기처럼 생활가전과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나에게 린나이는 가스기기의 명가로 기억된다. 가스기기 명가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남길 바란다.

그리고 인천의 향토기업으로서 반세기 역사를 달려온 만큼 앞으로의 반세기 동안 지속되고 세계적으로 발전해서 글로벌 100년 기업이 됐으면 좋겠다.

후배들에게는 ‘절대 포기하지마(NEVER GIVE UP)’라고 말하고 싶다. 린나이 팝스오케스트라가 강원도 모 부대를 방문했는데 그 부대의 구호가 ‘절절포’였다. 사단장이 전역 장병에게 마후라로 제작해 목에 걸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절절포’가 무엇이냐면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다. 참으로 인상적이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회사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라 생각된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어려움을 즐기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당장의 어려움은 이겨내기 힘들어 보이고 스트레스 받겠지만 기다리고 노력하고 이겨내다 보면 그 어려움은 추억으로 남는다. 40년 회사생활을 하면서 완벽했다고는 못하지만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사실 우리 때와 문화도 다르고 상황도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린나이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직원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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