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 한국수력원자력 방사선보건원 책임연구원.
이종근 한국수력원자력 방사선보건원 책임연구원.

[투데이에너지] 원전에서 배출되는 방사성물질로 인해 갑상선암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원전 인근 주민들의 소송이 지연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원전 방사선의 건강영향에 관한 논란이 계속돼 왔는데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연구결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역학의 기초 지식을 가급적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위험요인·질병발생 통계적 연관성을 파악하는 단계

개인의 건강상태는 ‘질병이 있다’ 혹은 ‘질병이 없다’로 표현할 수 있지만 집단의 건강상태는 ‘전체 1,000명 중에서 112명이 질병이 있다’ 혹은 ‘전체의 11.2%가 질병이 있다’와 같이 표현하게 되는데 이를 ‘유병률’이라고 한다.

유병률은 일반적으로 특정 시점의 건강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에 조사할 때마다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일정한 기간동안의 건강상태를 표현하는 ‘발생률’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매년 말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하는 국가암발생통계다.

예를 들어 지난 2016년 암발생률은 7월1일 기준 인구(연앙인구)를 분모로 1월1일부터 12월31일 사이에 암으로 진단받은 환자수를 분자로 해 인구 10만명 당 몇 명이 암으로 진단 받았는지로 환산해 나타내며 당연히 2016년 이전에 진단 받은 환자 수는 발생률 계산에서 제외된다.

그런데 도시와 농촌처럼 연령대별 분포가 서로 다른 집단의 발생률을 비교할 때에는 두 집단 모두 표준인구(일반적으로 2000년 주민등록 연앙인구)의 연령대별 분포에서의 발생률로 표준화해야 하며 이러한 ‘연령표준화 발생률’이 아니면 두 집단의 발생률이 서로 높고 낮음을 비교할 수 없다.

두 집단의 발생률을 비교하는 지표인 ‘상대위험도’는 관찰집단의 발생률을 분자로, 대조집단의 발생률을 분모로 한다. 상대위험도는 사실 ‘신뢰구간’이라는 범위를 대표하는 값이기 때문에 역학연구에서는 신뢰구간이 1보다 크면 관찰집단의 발생률이 더 높은 것으로 1보다 작으면 대조집단의 발생률이 더 높은 것으로 1을 포함하고 있으면 두 집단의 발생률에 차이가 없는 것으로 해석한다.

선거 개표방송에서 두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경우 누가 당선될지 예측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최근 통계적 유의성의 해석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신뢰구간의 경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여러 가지 편향·혼란변수 배제하는 단계

인과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위험요인과 질병발생의 통계적 연관성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지만 다음 단계로 ‘편향’이나 ‘혼란변수’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편향은 연구결과를 참값에서 벗어나게 하는 체계적 오류를 말하는데 연구자가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을 갖는 확증편향도 그의 일종이다.

혼란변수는 요인과 질병의 연관성을 왜곡시키는 변수를 말하는데 음주와 폐암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사실은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 사이에 음주가 끼어든 것으로 밝혀졌다는 예는 널리 알려져 있다.

방사선 노출은 현재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갑상선암의 위험인자이지만 그 증거는 방사선 치료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 재해로 인한 방사선 노출에 국한된다.

방사선 외에도 갑상선암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유전적 요인에 의해서도 갑상선암이 증가하며 기존에 갑상선질환을 가지고 있던 경우도 갑상선암의 위험요인이다.

이 외에도 인공중절, 늦은 첫 출산 나이, 경구피임약 복용, 요오드 결핍, 고칼로리 식이, 비만, 유방암이나 양성 유방질환들도 위험요인으로 보고되고 있다. 한편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우리나라 여성 갑상선암의 90%, 남성 갑상선암의 70%가 과도한 검진 때문인 것으로 추정했다.

△확인된 연관성이 인과관계인지 판단하는 단계

관찰집단과 비교집단의 질병 발생률을 비교해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 요인을 배제하고 위험요인과 질병발생간 통계적 연관성을 평가한 후에는 이러한 연관성이 정말 인과관계인지 판단해야 한다.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시장점유율과 미국 내 살인율이 같은 추세를 보였다고 해서 그 두 요인간 인과관계가 있을 리는 없다.

인과관계의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시간적 선후관계’로 위험요인과 질병발생의 시간적 순서와 간격이 적절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암은 방사선 노출 후 최소 4~5년 후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방사선에 노출된 이후 3년 만에 암이 발생했다면 인과관계는 인정하기 어렵다.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관찰되는 ‘일관성’, 위험요인이 커질수록 질병발생도 증가하는 ‘양-반응관계’도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방사선 건강영향에 관한 국내 연구결과

지난 1991년에 착수해 10여개 연구기관이 약 20년간 공동으로 수행한 교과부 원전역학조사(2011년) 결과 대조지역에 비해 원전 주변지역에서 높게 나타난 암은 오로지 여성 갑상선암뿐이었다.

이 연구의 최종 결론은 원전 방사선이 원인이 돼 그 결과로 주변지역 주민에게 암이 발생했다는 인과관계를 시사하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고 2.5배 높게 나타난 여성 갑상선암의 경우는 방사선 이외의 요인일 것으로 추정했다.

만약 원전 방사선 때문에 암이 더 많이 발생했다면 △원전 주변지역 환경이나 주민의 방사선량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아야 하지만 차이가 없었으며 △암의 상대위험도가 주변지역에 가까울수록 높아야 하지만 일정한 경향이 없었으며 △갑상선암 외에 다른 ‘방사선 관련 암’도 높게 나타나야 하지만 유의한 차이가 없었으며 △거주기간이 길수록 암발생이 증가해야 하지만 역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대조지역(함안, 양평, 충주)의 특성이 원전 주변지역이나 전국 평균과 비교할 때 너무도 달랐다.

한국원자력학회와 대한방사선방어학회는 원전 주변지역의 여성 갑상선암이 높게 나타난 이유가 타 지역 주민들에 비해 갑상선암 검진의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원전 주변지역 주민들은 한수원이나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건강검진 혜택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장군민의 갑상선암 진단유병률은 1.3%로 갑상선 초음파검사에 의해 발견된 우리나라 성인의 갑상선암 진단유병률 2.5%의 절반 수준인 것을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다.

또한 해외의 정상 운영되고 있는 원자력시설 주변지역 주민에 대한 여러 역학조사에서도 갑상선암의 증가가 보고된 바 없다는 점도 함께 강조했다.

△방사선 건강영향에 관한 해외 연구결과

정상 운영되고 있는 원전 주변지역에서 갑상선암의 증가가 보고된 연구결과는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해외 원전역학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프랑스(1993년), 슬로바키아(1998년), 스페인(2001년), 슬로베니아(2008년), 우크라이나(2012년), 벨기에(2014·2017년), 대만(2016년)의 경우 원전 주변지역의 갑상선암 발생은 대조지역과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캐나다(2013년)와 프랑스(2018년)의 경우 오히려 원전 주변지역의 여성 갑상선암 발생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더 낮았다.

심지어 일본 원폭생존자나 체르노빌 원전 주변지역 주민 연구에서도 20세 이상 성인에서 방사선에 의해 갑상선암 발생이 증가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앞서 1980년대에 미국 국립암연구소(NCI)가 62개 원자력시설 주변주민에 대한 암사망률 조사에 착수한 바 있는데 1990년에 출간된 NCI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지역과 대조지역을 비교할 때 암발생률이나 암사망률에 차이가 없었다.

연구자들은 “만약 원자력시설이 주변주민에게 위험을 끼친다면 그 위험은 이와 같은 조사에서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고 결론내렸다. 이후 2010년부터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주관으로 국립과학학술원(NAS)이 NCI 보고서 업데이트에 착수했으나 비용이 많이 들고 결과도출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돼 결국 2015년 9월에 연구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올해부터 실시되는 원전 주변 주민 건강영향평가

원전 방사선의 건강영향에 관한 우려와 논란 때문에 원자력안전법을 개정해서 올해부터 원전 주변 주민에 대한 역학조사를 다시 시작한다고 한다.

이번 건강영향평가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수행해 향후 국내외 학계 뿐 아니라 시민단체나 일반국민까지도 인정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하고 현재의 원전 주변지역 갑상선암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투데이에너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