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홍시현 기자]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공통주택 내 실외기실 세부기준을 담은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칙’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러한 규정이 각종 에어컨 실외기와 관련된 안전사고를 방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7월 경기도 용인시 신축 A아파트의 경우 실외기실 세로 길이가 같은 종류의 다른 가구보다 250mm 작게 설치돼 실외기실 문을 열면 실외기와 부딪혀 문을 달지 못했다. 시공사에서는 양개형(문 두 개를 양쪽에 달아 열고 닫는 방식)으로 문을 설치했다. 하지만 좁은 실외기실 면적으로 열기를 내뿜는 실외기 토출구를 실외기실 창과 완전히 맞출 수 없어 실외기에서 나오는 열기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해 실외기실 온도가 올라가는 현상이 벌어졌다.

지난 8월에는 전라남도 광주시 15층 B아파트에서 에어컨 실외기 화재로 추정되는 불이 나 아파트 이웃 주민들이 대피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3년간(2016~2018년) 냉방시설 화재 691건 중 69.2%가 여름철인 6월과 8월 사이에 발생했고 36%가 실외기에서 불이 시작됐다. 화재의 원인으로 과열, 과부하 및 전기적 요인이 160건(65%)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우리나라는 과거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성 기후였으나 최근에는 아열대 기후로 변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하절기 중 폭염 발생일수 및 열대야 지수가 증가해 에어컨 수요 및 가동시간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결국 실외기실의 적정 규격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실외기로 인한 화재의 위험도 함께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외기실 설치공간 구체적 기준 부재

실외기실 설치공간에 대한 명확한 기준 부재로 세탁실 및 다용도실 혼용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실외기 설치공간도 협소하고 심한 경우에는 설치가 불가능한 경우도 발생해 오고 있다.

국토부는 이에 따라 실외기 화재 위험을 줄이기 위해 지난 5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 입법예고를 통해 냉방설비 배기장치 설치공간 기준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일부 수정안을 진행 중이다. 개정안에는 냉방설비 배기장치 설치공간(에어컨 실외기실)을 별도로 구획하고 배기장치 규격에 가로 0.5m, 세로 0.7m 추가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배기장치 설치공간에 접근이 용이하도록 출입문을 설치하고 출입문을 연 상태에서 배기장치 설치작업이 가능해야 한다. 또한 50m² 초과 세대 내 거실·침실이 2개 이상인 경우 최소한 2개실에 실외기 연결배관 설치를 의무화했다.

■애매한 문구, 개정 효과 없어

그러나 관련 업계에서는 개정안에 해석 여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애매한 문구 및 내용들로 인해 당장의 실효성에 의문부호를 남기고 있다.

업계에서 우선 문제로 삼는 부분은 입법예고 규제조문 중 제8조의 2, 2항 ‘가능하면’이라는 문구가 있어 이를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기장치(실외기) 규격에 가로 0.5m, 세로 0.7m 추가공간은 에어컨 설치 및 이후 운영단계 시 원활한 사용과 유지보수(A/S)를 위한 최소 필요공간이다. 하지만 ‘가능하면’이라는 문구 삽입 시 설계자 및 시공자 간 기준이 모호해 입주민과 사업주체 간의 갈등이 유발될 수 있으며 향후 시장에서도 이를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가능하면’이라는 애매한 문구로 개정 전과 별반 다르지 않는 상황(민원 제기)들이 나올 수밖에 없어 당초 개정 목적을 실현하기에는 어렵다.  

 


■안전 관련 규정 재검토 필요

업계에서는 안전 조항 관련 규정도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입법예고 공고 후 일부 수정안 추가내용으로 제8조의 2, 2항 나에 ‘난간’ 규정이 있지만 실제 난간에 관한 안전 강도에 대한 세부규정은 없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있는 난간 규정에는 난간의 높이, 간격 등 주로 각 부위의 치수에 관한 것으로 강도에 대한 정량적 수치에 대한 기준이 없이 난간이 안전한 구조로 설치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만 하고 있다. 이 외에도 건축법 시행령에서도 난간의 높이(1.2m 이상)만 제시될 뿐 마찬가지로 강도에 관한 규정이 없다.

특히 입법예고 일부 수정안 추가내용 중 외부 돌출형 바닥 슬라브 구조의 실외기실 마련이 검토되는 상황에서 난간에 대한 명확한 안전 관련 규정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업계의 관계자는 “에어컨의 정상작동을 위해서는 실외기실 내 원활한 기류순환을 위한 건축 개구면적 및 루버 개구율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이러한 기준 부재로 건설사 별 자체 시공으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건축 개구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원활한 기류순환을 위해 실외기실의 건축 개구면적은 최소 1.5㎡, 루버 개구율은 80% 이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에어컨 전원부 화재예방을 위해 에어컨 실외기실 내 실외기 전용 전원선 설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실효성 있는 기준 및 안전도 제고해야

글로벌 기후변화로 국내 에어컨 사용범위가 확대되고 사용기간이 증가하는 등 에어컨은 과거에 비해 많은 수요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국내 건축법 등에서는 실외기실 관련 규정 등이 미비로 안전에 허점을 가지고 있다.

업계의 관계자는 “개정안에는 안전 예방에 대한 구체성이 없고 관련 세부규정이 부족하다”라며 “현장의 목소리 등 보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실효성 있는 국민생활환경 기준 마련 및 안전도 제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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