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이번 여름은 여느 해와는 다소 다른 시간을 보낸 것 같다. 54일이나 지속된 최장의 장마를 겪어야 했고 한강이 넘쳐서 인근의 공원이 물에 잠기는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 

열대야는 수그러들었지만 예기치 않은 국지성 집중호우는 우리를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아픈 지구를 살리기 위해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할 것이다. 

각국의 정부에서는 기후변화 대응 조직을 만들고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장기적 또는 단기적 실행 로드맵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수년 전부터 국가의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설정하고 다양한 실행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에너지정책도 공급위주관리에서 수요관리 중심으로 변환을 시도하고 있으며 에너지전환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요에 대응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공급한다면 필요이상의 에너지를 생산하지 않아도 되고 생산하고 사용되지 않은 에너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잘 맞추고 최대 피크를 낮출 수 있다면 이상적인 에너지 수요-공급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을 수립하고 전력·가스·열 등의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기관들과 세부 정책을 수립했다. 

에너지수요를 절감하기 위해서는 해당 시설에서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건물 부분의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개별 건물 또는 용도별로 어느정도 에너지를 사용하는게 이상적인지 알아야 할 것이며 적절한 에너지 소비량을 알 수 있으면 현재 사용되고 있는 에너지량과 비교해 부족한 부분을 찾고 에너지 절감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 될 것이다.

현재 에너지 사용량은 한국전력이나 도시가스사에서 건물마다 설치한 계량기를 확인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건물마다 어느정도의 에너지소비가 적정한 지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외기조건 등을 고려해 건물마다의 부하(load)를 계산하고 건물에 설치된 냉난방시스템 등 성능을 반영해 일상적인 에너지 소비량을 계산하면 된다. 물론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와 건물 운영시간들을 고려해야 한다. 이렇듯 건물에서의 에너지수요는 외기조건, 운영조건, 설비시스템, 외피 성능 등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건물마다 변화하는 에너지수요를 반영해 실시간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최적화된 수요관리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실시간으로 에너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부분별 수요를 잘 이해해야 한다.

건물에서는 용도별로 에너지 사용 특성이 매우 달라진다. 아파트나 주택에서는 주로 저녁시간에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며 사무실 건물이나 공장, 상가에서는 주로 낮시간에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다. 따라서  시간별, 계절별, 건물 용도별로 수요패턴과 사용 특성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870만동의 건물과 다양한 용도가 있는데 모든 건축물로부터의 수요패턴과 에너지 사용 특성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계측 시스템과 데이터 베이스가 구축돼야 할 것이다. 에너지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인공지능 기반의 분석 모델과 시스템을 구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알파고로 익히 알고 있는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을 만든 딥마인드(DeepMind)는 구글의 자회사가 됐다. 이 회사는 구글의 데이터 센터를 대상으로 에너지소비 데이터 및 건물 특성을 파악하고 분석해 상당한 에너지절감을 이뤘다. 알파고에서 사용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해 건물에너지 수요관리에 활용한 것이다. 유사한 방법을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요관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력에서는 전력 빅데이터 센터를 설립해 전력에너지의 공급과 수요를 적절히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서 운영하는 국가 건물에너지 통합관리시스템도 전국의 건축물을 대상으로 전력 및 가스, 열에너지의 월간 사용량을 수집하고 있다. 이러한 빅데이터를 이용해 에너지소비 특성을 파악하고 에너지공급과 매칭시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에너지 빅데이터를 수집, 처리, 분석하기 위한 전문인력 양성이 크게 부족하다. 

에너지수요를 예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컴퓨터를 이용한 예측을 하기 위해서는 수학적인 모델이 필요하고 해당분야의 전문 지식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에너지수요 예측 모델도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요 대상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춰야하며 에너지와  관련 인자들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한 인공지능 및 기계학습을 이용해 예측 모델을 구축하고 시뮬레이션을 수행해 결과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므로 우수한 인재가 에너지 빅데이터분야에 종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학교에서의 에너지 빅데이터 인재 양성은 하나의 학과에서 수행하기 어려우며 특성화된 융복합 트랙으로 운영돼야 한다. 정부에서는 에너지 빅데이터 인재 양성과 사회 진출을 위해 지속적인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수요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에너지절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재양성과 더불어 또 하나의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에너지절감을 위한 다양한 에너지 관리시스템(EMS), 수요반응(DR), 스마트·마이크로 그리드, 다양한 효율향상 기술 등에 대한 성과 검증과 성공사례가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 

건물이나 산업, 교통 등 어떤 분야에서든 에너지절감을 위해 적용한 기술에 대한 성과검증을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 정부에서는 제로에너지 건축물을 보급하고 관련 시장을 확대하려 하지만 준공된 건물의 에너지성능은 확인하지 않는다. 설계단계에서 제로에너지 건축물로 인증을 받았지만 실제로 제로에너지 건물로서 합당한 성능이 나오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에너지절감 기술에 대한 성과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에너지절감 기술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ESCO사업에서도 성과검증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에너지절감 성과에 대한 보증이 적절히 이뤄진다면 노후화된 많은 시설을 개선할 수 있으며 국가의 에너지절감 목표 달성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사업이다. 제러미 리프킨의 글로벌 그린뉴딜에서 핵심사업으로 제시한 모델이 바로 ESCO를 활용한 그린리모델링사업이다. 

글로벌 그린뉴딜이든 한국판 그린뉴딜이든 성공의 핵심은 에너지절감에 대한 성과를 어떻게 보증하고 검증할 것인지에 있다. 국내에서 ESCO 사업은 오랜 기간 추진됐지만 사업의 성과를 검증하지 못해 크게 확대되지 못했다. 

그동안 정부에서 주도해 추진한 많은 에너지 절감 기술과 해당 기술의 보급사업이 있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해 성과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술도 시장에 정착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수요관리를 포함한 에너지 정책도 결과에 대한 성과검증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지지부진하게 끝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성과검증이 잘 진행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너지 관련 기술자라면 성과검증 프로토콜이 어려워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성과검증 결과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수행하지 않거나 임의의 방법으로 결과를 도출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에너지절감 기술에 투자하는 사업자는 에너지절감 효과가 검증되지 않으면 투자를 망설이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성과검증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뉴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과검증이 확실히 이뤄져야 하며 그 결과를 이해관계자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성과검증에 대한 체계수립을 통해 정부와 민간에서 에너지절감 목표 달성을 위해 진행하는 사업의 투명도를 높일 수 있으며 에너지절감 기술에 대한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제로에너지 건축물 보급과 BEMS 활성화 같이 에너지 성능확보를 목표로 하는 사업에 성과검증을 수행하고 성공적인 사례를 보여준다면 정부가 무리하게 사업추진을 하지 않아도 에너지 정책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공부만하고 시험을 보지 않는다면 학업성과를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 좀더 향상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부의 에너지절감 목표가 아무리 우수하고 그럴싸하게 보여도 그 성과를 검증하지 않는다면 로드맵으로서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판 뉴딜의 성공과 에너지절감 목표 달성을 위해 더이상 미루지 말고 기초적인 성과검증 체계부터 구축하고 실행에 옮길 때다. 에너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에너지 수요관리 및 성과검증이 이뤄진다면 디지털 뉴딜과 그린뉴딜이 합쳐진 최고의 성과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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