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김병욱 기자] 원자력발전소가 비상상황에 처했을 때를 대비해 설치한 변압기가 총체적 관리 부실로 인해 실제 가동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고민정 의원이 지난 11일 경북 울진 소재 한국수력원자력 한울 2호기 원자력 발전소를 현장 점검한 결과 비상용 변압기의 명판이 없고 실증시험과 검토보고서 등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원자력발전소는 전력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발전소 외부 전원 가동 △비상 디젤발전기 가동 △대체 교류 디젤전원 비상발전기 가동 순서로 3~4중의 전력계통 안전장치를 갖고 있으나 이는 모두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하다.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대형 해일이 발생하는 등의 이유로 모든 안전장치가 무용지물이 될 것에 대비해 한수원에 원전별 비상용 이동형발전차와 승압변압기 설치를 요구한 바 있다. 이에 기존에 설치된 원전 건물 외부 변압기와는 별도로 전기시설 건물 고지대에 승압변압기를 설치한 것이다.

그러나 승압변압기 설치 현장을 방문한 결과 검사 미비와 검토보고서 조작 등 총체적 관리 부실이 드러났다.

제품정보 확인을 위해 반드시 제자리에 설치해야 할 명판이 제거돼 있었는데 한수원은 변압기를 설치·조립하는 과정에서 명판을 통풍구 공기 여과기 케이스 안에 떼어놓았다가 미처 설치하지 못한 것이고 지금은 제대로 부착했다고 해명했다.

변압기 최초 설치 이후 실시하는 실증검사와 18개월마다 실시하는 주기검사가 5번이나 있었음에도 5년 반이나 지난 지금까지 부착 사실조차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승압변압기 내부 확인을 위해 외함 시건장치 해제를 요청하는 과정에서도 당연히 잠겨있어야 할 시건장치가 풀려있었을 정도로 관리가 엉망인 것으로 나타났다.

변압기 설치 후 성능 검사 또한 부실하게 이뤄져 비상상황에서 실제 가동이 가능한지도 불분명했다. 한울 1호기와 2호기 승압변압기 설치 후 각 2회씩 실증시험을 통해 제대로 가동되는지 검사한 자료를 제출했지만 수기로 작성한 점검표만 존재하며 측정값에 대한 사진이나 동영상 등의 증빙자료가 없어 객관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입회하에 시험을 진행했다고 하지만 정작 점검표에는 KINS가 확인했다는 흔적이 전혀 없다고 고민정 의원은 지적했다. 18개월 간격으로 실시하는 계획예방정비 기간의 주기검사도 전원을 켜지 않은 채 육안점검과 계측기 검사만 했기 때문에 변압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변압기의 실제 가동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협의해 절차를 수립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근거 또한 전혀 마련되지 못한 실정이다.

또한 승압변압기 설치를 위한 기초자료인 적합성 검토보고서 작성과정에서도 시간순서와 절차를 무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5월 24일 검토보고서를 최초 발행했는데 승압변압기 납품계약 체결 시점은 그보다 3개월 앞선 2월에 이뤄졌다.

고민정 의원은 납품업체는 입찰 전 최초 검토보고서를 기준으로 견적을 산출하기 때문에 이 순서가 뒤바뀐 것은 절차상 심각한 하자이고 사전에 납품업체를 정해놓고 요식행위로 입찰을 진행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강조했다.

검토보고서 최종 수정 시점은 같은 해 11월25일로 나오는데 한수원이 수정된 내용을 결정해줘야 납품업체가 현장 설치공사를 시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조립은 그보다 앞선 11월20일에 완료된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성이 중요한 발전소에서는 통상 2개의 권선을 사용하는 복권변압기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비상용 승압변압기는 발전소 건물의 하중과 면적 축소를 위해 1개 권선의 단권변압기로 설치한 상황이다.

한수원이 관리하는 변압기 6만7,000개 중 단권변압기는 0.00009%인 6개에 불과해 승압변압기 설치 과정이 실제 활용 여부와 무관하게 무리하게 추진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고 의원은 지적했다.

고 의원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원전 비상시설이 부실하게 관리되는 현장을 확인했다”라며 “전체 원자력발전소를 대상으로 승압변압기에 대한 전수조사는 물론 감사원 감사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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