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기후변화 극복을 위한 수단들을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회복과 연계하려 하고 있다. 지난 4월 22∼23일 화상으로 진행된 기후정상회의에서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1990년대비 최소 55%의 온실가스를 감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기후변화협약에 복귀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203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수준의 50∼52%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럽연합(EU)은 그린뉴딜을 통해 2050년까지 최초의 탄소중립 대륙으로 전환하고 자원 의존도가 높은 경제성장 구조에서 탈피해 순환경제 투자에 1조유로를 지원할 계획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Clean Energy Future를 위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 공기질 및 에너지효율 개선, 노약자 및 빈곤지역 지원 등을 미국 경제 활성화와 연계해 2조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미국은 2030년까지 모든 신축 민간 건물의 순(純)배출제로(Net-Zero Emission)를 법제화하고 2035년까지 모든 건물의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을 50% 감축 할 계획이다.

■사람 위한 시대와 기술의 산물인 건축과 도시.
인류와 함께 집은 생겨나고 자연환경과 함께 살아가 는 방법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사람을 위해 쓰인 기술이 환경과 기후변화 문제를 야기해왔다면 이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기술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는 2050년까지 Net Zero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량의 절반이 현재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에 달려있다고 분석하면서 현재의 시제품, 시범단계인 기술에 2060년대의 전체 기술 투자액의 절반이 쓰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IEA는 2008년 발표한 ‘25 energy efficiency policy recommendations’에서 건물에너지분야에서 시행해야 할 ‘건축물에너지절약설계기준’, ‘제로에너지빌딩’, ‘기존건물에너지효율향상’,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인증’, ‘건물구성요소의 성능향상’에 대 한 핵심 수단 강화를 권고한 바 있다.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 7위 국가인 우리나라는 에너지공급, 산업, 수송부문 등과 함께 건물부문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해 선진국 수준의 건물에너지효율향상 정책을 시행하고 강화해왔다. 건물부문은 우리나라 온실가스 총 배출량의 24%를 차지하고 있으며 도시가스, 석유, 석탄을 사용하는 직접 배출이 7%, 전기와 지역냉난방 열 등을 사용하는 간접배출이 17%를 차지하고 있다(2017년 기준).

직접 배출량은 1990년대비 25% 감소한 반면 간접 배출량은 1990년 보다 약 8.8배 이상 증가했는데 가전기기 및 사무기기 사용 확대, 취사 기기의 전기화, 난방 연료의 전력으로의 전환 등이 건물에서의 직접 배출을 줄이고 간접 배출로 전환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건물에너지 사용의 에너지원별 구성 변화(대한민국 2050 탄소중립 전략, 2020)

건물에너지 사용의 에너지원별 구성 변화(대한민국 2050 탄소중립 전략, 2020)

■제로에너지건축물은 신재생에너지건축물인가?
하지만 기술의 트렌드는 빠르게 바뀌고 있고 종전의 패러다임도 규제 프레임도 전환의 길목에 있다.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 및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 시에는 단위면적당 에너지요구량, 1차에너지소요량을 평가하게 되는데 등급을 결정하는 최종적인 1차에너지소요량만 중시하게 되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같은 등급으로 인증받은 비슷한 1차에너지소요량 수준 건축물일지라도 신재생에너지를 많이 설치해 구현한 경우와 에너지절약 건축설계를 통해 구현 하는 경우의 비용 차이는 크다.

건축물 실내를 쾌적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에너지요구량을 감안하지 않고 디자인한다면 이를 만족시키기 위한 냉난방공조 설비 용량이 따라서 커질 수밖에 없으며 이를 상쇄시켜 1차에너지소요량을 줄이기 위한 신재생에너지 설비 설치 용량 및 효율은 더 높아져야 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만약 건축 디자이너가 건축물이 위치한 지역의 기후와 방위별 태양 일사 특성을 감안해 건물 외피의 형태와 자재, 창면적비, 공간의 특성 조닝 등을 설계한다면 에너지요구량을 크게 줄일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설비에 드는 공사비를 줄일 수 있다.

우리 전통 건축에서는 자연경관을 건축물과 조화시키며 사람과 공간 내·외부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연계해 왔고 우리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 및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에서 평가하는 건축물 에너지요구량을 줄이는 설계는 이와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지역과 대지별로 다른 자연(태양과 땅과 바람, 물) 본래의 에너지가 선물하는 혜택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면 건축 설계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산업화 시기와 마찬가지로 설비에 투입되는 과다한 화석 연료의 문제를 심화시키고 신재생에너지설비가 제로에너지건축의 전부인 것처럼 오해하게 된다.

제로에너지 건축물을 구성하는 기술에 신재생에너지가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긴 하지만 건축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건축가가 건축적 해법을 고려하지 않고 설비설계쪽으로 미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회원수 9만5,000명의 미국 건축가협회(AIA)는 2030년까지 모든 신축 건물 및 개발사업과 주요 이노베이션 시 탄소 중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건축가의 역할을 통해 온실가스를 줄이도록 하고 있다. 건축 설계자가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 친화형 탄소 감축기술들이 많아질수록 건축물 외피(envelope)는 기후와 사용자 편의성에 최적화될 것이다.

ICT 기술의 발전과 최적화 연계는 그에 투입되는 에너지에 비해 훨씬 많은 온실가스와 비용 절감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건축물 스마트 기술과 전 생애주기 평가.
사람을 위한 스마트빌딩은 더욱 편리하고 에너지 효율적인 운영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유럽연합의 건물에너지 관련 법적 체계의 근간이 돼 온 EPBD(Energy Performance of Building Directive)에서도 2018년 개정을 통해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 운영을 최적화하고 전력공급망과 상호작용하는 신기술과 전기시스템을 이용하는 건물의 능력을 평가하는 스마트 준비도 지수, SRI(Smart Readiness Index)를 추가했다.

스마트미터, 빌딩 자동화 및 제어시스템, 건강한 열 쾌적을 위한 자동 조절 장치, 건물 빌트인 가전제품, 신재생에너지와 전력수요관리, 에너지저장 등 실내 환경과 에너지효율, 유연성을 높이는 상호 운용성과 같은 기능을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종전의 난방, 냉방, 급탕, 조명, 환기에너지 평가 컨셉만으로는 Net Zero Energy, Carbon 성능을 평가할 수 없고 혁신 기술의 상용화 없이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

혁신기술의 제도적 수용성과 유연성을 높이고 시장과 교감하며 건축물 사용자의 Life Cycle 관점에서 모든 에너지 사용과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평가 제도로의 전환이 이뤄질 것이다. 건축물의 생애 주기 동안 발생하는 탄소량을 뜻하는 embodied carbon 개념이 향후 중요해 질 것이다.

UN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2020 Global status report’에서는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주거용 및 상업용 건물의 운영단계에서 배출되는 직접 및 간접 배출이 28%, 건설과 자재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10%인 것으로 분석됐다. 건설산업에서 건축물을 짓는데 필요한 철, 시멘트, 유리와 같은 건축자재의 원재료 공급, 생산, 운반뿐만 아니라 현장시공 과정의 건설기계 등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까지 포함하는 embodied carbon을 감축하기 위해서는 전 생애주기 평가(Life Cycle Assessment)가 필요하고 Value chain별 평가 체계와 관련 DB를 신규 개발, 표준화, 고도화하는 중요한 과제가 존재한다.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을 최소화하는 자원효율과 순환체계, 지속가능한 목재 사용과 같은 탄소저장 건축자재, Green Infrastructure 확산 등은 온실가스 관련 규제의 대상과 방식이 완전하게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통합적 관점의 전문가들과 정책 입안자들의 협업이 필요하다.

구조적 강도와 내화성능을 확보한 CLT(Cross Laminated Timber) 목재가 활용되면서 목구조 건축물의 건축규모 제한 규제가 폐지됐듯이 새로운 기술혁신은 건축문화를 바꾸고 규제를 변화시키며 우리의 생활과 경제체제를 전환시킬 것이다.   

■세대 공존 패러다임의 전환.
시장과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산업, 수송, 건물 부문의 화석연료 소비구조를 빠르게 탈탄소화하는 구조로 전환하도록 연계될 것이다.

개별 건축물 단위에서의 제로에너지 추진이 도시 단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에너지공급망과 시스템의 스마트화와 건축물의 스마트화가 상호 연계돼 그 속도를 높일 것이며 정책과 기술은 서로 보완하며 장애 요인 을 제거해 갈 것이다.

민간의 창의성을 끌어 올려 저탄소 경제로 이행할 수 있도록 적절한 인센티브를 통해 혁신 기술에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능력있는 젊은이들이 탄소중립 관련 과학자, 엔지니어, 기술 컨설턴트로와 같은 진로를 선택하고 혁신 스타트 업과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하는 꿈을 꾸게 해야 한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했던 과학과 공학의 힘을 신뢰하고 기술혁신의 포텐셜을 높여가야 한다.

저탄소 혁신기술개발은 인류가 탄소중립으로 가는 기후목표 달성비용을 낮출 것이다. 우리에게 다가올 기후변화의 피해가 지금 즉각적이지 않다고 해서 기술혁신을 주저하고 후대에게 미루는 순간 그 대가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이 돼 돌아올 것이다.

인류에게는 눈앞의 경제적 이익 앞에 눈감고 결정을 주저하고 후회 할 시간이 없다. 세계 각국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력으로 추진 중인 탄소중립 노력은 우리 세대가 미래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자 의무이다. 변화는 거스를 수 없고 눈앞에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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