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연이어 발표된 미래산업 정책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 산업 질서의 재편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고 있다.

탄소중립, 그린뉴딜, ESG와 같은 용어를 미디어에서 단 하루라도 접하지 않은 날이 없는 요즘이다. 우리 정부도 이에 발맞춰 분주하다.

최근 3개월 발표된 굵직한 정책들 모두 미래산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포부와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6월28일 발표된 기획재정부의 ‘2021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보면 반도체, 배터리, 백신 3대 분야를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고 R&D와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와 더불어 2조원+α 규모의 신규 투자 특별자 금을 지원한다.

곧이어 7월8일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LG에너지 솔루션 오창공장에서 ‘K-배터리 발전 전략’이 발표됐다.

이차전지 시장에서 초격차 1등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포부와 함께 배터리 총력전에 대비하기 위한 민관 합동 종합전략을 발표하고 전방위적 지원을 약속했다.

그리고 8월5일 ‘희소금속 산업 발전대책 2.0’까지 발표됐다.

여기서는 新에너지·저탄소화 산업의 핵심인 이차전 지의 핵심소재, 즉 리튬, 니켈, 망간, 코발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리 산업계가 안심할 수 있도록 강건한 수급 안전망을 구축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숨 가쁘게 내놓고 있는 정책들을 보며 어느 한구석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요리로 치면 최고의 만찬을 준비한다며 우수한 셰프진을 갖추고 정교한 레시피를 기획하는데 양질의 식재료 조달이라는 가장 원초적 단계가 부실한 격이다. 그 부족함은 바로 모든 제조 산업의 출발이 되는 ‘원료 확보‘이다.

■세계는 여전히 자원 쟁탈 중

전술한 미래 新산업들은 공통적으로 니켈, 리튬, 망간과 같은 광물자원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와 미래산업의 패권 경쟁에서 마주할 상대들은 원료 광물을 확보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반도체, 배터리, 원료 광물 등의 핵심 품목 공급망을 신속하게 검토 했다. 특히 전기차 및 ESS 시장에서 배터리 수요의 급증이 예상되는데 공급망 리스크의 중심에 중국이 있다는 사실을 엄중하게 인식했다. 동맹국을 중심으로 공급원 다변화를 도모하면서 주요 광물에 대한 국내 탐사, 개발과 연구를 적극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위협 상대 중국은 어떨까. 일단 원료 확보에서부터 압도적이다. 자원 무기화 전략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미래산업의 원료를 거침없이 쓸어 담고 있다.

배터리 주요 원료인 리튬, 코발트를 확보하기 위해 남미, 아프리카에 대규모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올해초 왕이 외교부장은 코발트가 풍부한 콩고를 방문해 차관 일부를 탕감하는 통 큰 자원외교도 선보였다.

이러한 공격적 확보를 통해 다자간 협력채널도 구축 하고 세계 자원시장의 지배력도 더욱 공고하게 다지는 중이다.

우리와 비슷한 일본은 일찌감치 준비에 나서 2009 년 ‘희소금속 확보 4대 전략‘을 수립하고 스미토모, 미쓰비시, 이토추와 같은 종합상사와 JOGMEC(석유가스 금속광물자원기구)을 필두로 내세워 해외광산개발에 뛰어들었다.

■지켜만 보는 한국의 자원개발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우리도 한때는 자원 개발·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던 시기가 있었다. 일본이 중국한테 희토류 수출제한 보복을 당하고 희소금속 확보에 뛰어드는 것을 보면서 2010년 지식경제부(現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희토류 확보 점검반‘을 구성한 바 있다.

해외자원개발, 수급점검 등의 분과를 구성하고 광물 자원공사와 포스코 등의 기업이 다수 참여해 장기 확보 전략을 수립했다. 그리고 민관이 함께 베트남, 남아공, 호주 등에 진출해 자원을 확보하자며 의기투합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명박 정부 당시 추진한 해외자원개발사업들은 적폐라는 낙인과 함께 청산 대상이 돼버렸고 아직까지도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청산 사업 중 하나로 지금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 광물자원공사의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 광산이다. 등락을 반복하고는 있어도 니켈값은 전반적으로 오르는 추세이며 미래 수요도 매우 긍정적이다.

그래서 세계 니켈 공급량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이 앞다퉈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인데 지금 니켈 광산 지분을 헐값에 급히 처분한다는 것은 심각하게 고려해 볼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암바토비 광산은 국내 니켈 수요의 5%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데 매각하게 되면 니켈의 해외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향후 전망이 긍정적인 광산 지분이 혹시라도 최대 주주인 스미토모에게 넘어가게 되면 우리는 일본의 미소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수 있겠는가? 부실자산이기 때문에 단행하는 청산가 치가 과연 현재와 미래의 존속가치보다 높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메이저 플레이어들은 자국 정부와 원료 확보 전쟁에 출전했다. 우리 K-배터리의 주역들도 세계 시장을 노리고 원료 확보에 고군분투하는데 우리 정부는 언제까지 지켜만 볼 것인지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냉정하게 계산해봐야 할 문제다.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해야 할 때

정치논리에 의한 낡은 프레임을 이제는 스스로 깨야 한다. 정부가 주저하고 언론이 실패만 이슈로 삼을 경우 우리 자원개발은 쌀 때 팔고 비쌀 때 급하게 사는 과거가 되풀이 될 것이다.

정부가 연이어 발표한 정책만 봐도 미래 성장산업이 무엇인지 명확하다. 그리고 그 산업들의 원료가 무엇 인지 또한 명확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자원을 개발, 확보해야 한다.

우선 정부의 금융지원을 실정에 맞게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해외자원개발사업에 활발하게 진출했던 2010년의 성공불융자는 3,093억원이 었다. 그러나 2021년 현재는 349억원으로 성공불융자의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 그마저도 과거에는 사업비의 80%까지 지원했으나 지금은 최대 30%만 지원 하고 감면도 최대 100%에서 70%로 대폭 축소됐다.

세제 지원도 다를 바 없다. 해외자원개발투자 세액 공제, 해외자원개발 배당소득 법인세 면제, 해외자원 개발 설비투자 세액공제는 2013년에서 2019년 사이 차례차례 일몰됐다. 이러니 진행사업 수와 신규투자도 대폭 감소할 수밖에 없다. 고위험을 감수하며 장기간 투자해야 하는 자원개발의 특성상 정부의 금융지원조차 없다면 어느 민간기업이 선뜻 나서겠는가.

그래서 공기업의 자원개발사업 기능이 일부 재개돼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때 우리나라 자원개발을 선도하던 석유공사와 광물자원공사는 신규투자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고 부채를 갚기 위한 구조조정과 자산 매각에 급급한 형편이다. 심지어 광물자원공사는 광해공단과 통폐합될 예정으로 54년의 기록을 끝내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공기업의 성과지향적 특성이 무분별한 투자 위험을 초래한다는 분석에 앞으로 자원개발은 민간에게만 맡기자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공기업이 일찌감치 자원시장에 뛰어들어 축적한 사업경험, 노하우, 네트워크 및 데이터는 아직 경험이 짧고 수익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민간기업이 갖지 못한 자산이다. 이러한 무형자산의 가치를 간과하고 자원개발은 전부 민간기업에 넘기라는 식은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 장기간 묵묵히 인내해야 하는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접근한 몰이해의 결과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자원안보를 강화해야 한다. 자원개발사업의 부실 원인 중 하나는 자원개발률 중심의 양적 목표 달성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주요국의 자원무기화 현상이 노골화되는 상황에서 자원을 미래 산업의 핵심원료로 인식하고 개발에서 도입, 비축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국가 자원안보 현황을 분석하고 평가·대응할 수 있는 종합시스템의 구축이 시급하다.

이를 통해 개발, 도입, 비축 현황을 정확히 모니터링 하고 공급 차질 등 리스크를 신속하게 감지해 정부와 우리 산업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정교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과거 자원개발사업의 논란은 그 실패를 인정하는 자기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뼈아픈 쇄신과 재정비를 거친 후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탄소중립을 준비하는 각 국의 노력이 새로운 패권 경쟁을 촉발하고 경쟁의 원료로 자원은 무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산업의 승자가 되기 위한 준비에서 우리 정부와 기업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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