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의에는 주최국인 영국을 비롯해서 국제 원자력 기구,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스웨덴, 핀란드, 스페인, 스위스, 호주, 일본, 한국 등 세계 주요 30개 국가에서 각 국의 방사성폐기물 관리 최고 책임자들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일간 열띤 토론을 벌였다. 초청 전문가 12명 중에 필자도 한몫 끼어 한국의 폐기물 관리 정책 및 처분장 확보 경험에 대해서 발표를 하였다.
토론의 상세 내용은 주로 방사성폐기물의 한차원 높은 관리 전망, 폐기물 처분의 안전과 부지 선정시의 이해 당사자 참여, 처분장 확보에 대한 전략 수립의 국제적인 현황, 그리고 몇몇 주요 국가들의 방사성폐기물 관리 현황이었고 주제 발표 후 집중 토론하는 형태로 회의가 진행 되었다. 토론의 초점별로 그 요지를 정리하여 보았다.
에너지와 공공의 이익
구주 공동체의 테일러 박사는 문명사회에 사는 우리 모두는 에너지를 필연적으로 사용하여야 하는 바 에너지 사용 정책은 정부, 산업체,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수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에너지 사용에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환경 영향은 주로 이산화탄소 배출에서 비롯된다. 이산화탄소 배출원은 크게 교통 분야와 전력 생산 분야의 두가지이다. 이 중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화석 연료는 앞으로 그 가격이 크게 오를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안정된 원자력은 불행하게도 몇몇 유럽 국가에서 점진적으로 감소시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향후 30 년간 유럽 전체의 이산화탄소의 방출양이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유럽 사람들의 상당수가 원자력 발전이 오히려 기후 변화의 주범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방사성폐기물은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도 없어 그대로 한쪽에 쌓아놓고 있는 줄 안다. 이런 현상은 일반인들이 원자력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받고 있거나 원자력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방사성폐기물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고 환경 영향에 대한 신뢰성 있는 평가 결과를 홍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경과 경제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원자력의 정확한 이해가 공공의 이익을 보장한다.
유럽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4%가 신재생 에너지의 전기 요금이 비싸면 쓰지 않겠다고 대답했고, 단지 24%만이 지금의 전기 요금보다 5%까지는 비싸더라도 이를 수용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현재 태양력, 풍력의 전기 요금은 원자력 전기요금의 몇배에 이르는 비싼 요금이라서 막상 수용가들은 이를 부담할 의사가 전혀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발표하였다.
▲ 원전연료 교체장면
방사성폐기물과 안전
캐나다 방사성폐기물 관리회사의 사장인 도데스웰 박사는 방사성폐기물 관리의 핵심은 바로 위험성 여부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은 방사성폐기물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더이상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국제원자력기구의 포르스트롬 박사의 발표에 따르면 IAEA 가입국가 140개국에 모두 443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운영 중이며, 원전 소유국은 26개국이고, 세계 25개국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단 하나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또는 사용후 연료 처분 시설을 건설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처분은 지난 1950~1960년대 초기에는 다소의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큰 방사선 사고는 없었고 초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지금은 환경에 거의 문제가 없는 처분 시설들을 건설하여 운영 중에 있으며 그 안전성은 이미 충분히 입증이 된 것으로 본다고 하였다. 몇몇 국가에서 아직도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확보하는 데 애를 먹고 있기는 하지만 폐기물 처분의 안전성이 핵심이 아닌 것으로 안다고 하였다.
고준위, 지하 심층 처분방안 최적 대안
처분방식이 문제 아닌 안전성이 문제 강조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반감기가 긴 많은 양의 방사능과 거기에서 발생되는 열처리 문제 때문에 장기간의 안전성 문제에 크게 신경을 써야하는 폐기물이다. 따라서 안전문제가 철저히 입증되어야 하고 이를 일반인들에게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 그래서 현재의 방사성 폐기물 관리의 현안은 주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는 현 시점에서 볼 때에 기본적으로 몇가지 선택의 폭이 있다. 그 첫 번째는 폐기물 또는 사용후 연료를 약 300년정도 장기 보관 후 처분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그 다음 방안은 지하 300~1,000m의 암반에 처분하고 바로 밀봉해버리는 방법이 있다. 세 번째 방안은 두 번째 방안과 같으나 처분장을 바로 밀봉하지 않고 수백년 동안 개방하여 관리한 후 나중에 밀봉하는 방법이다. 마지막 네 번째 방안은 프랑스나 미국에서 고려하고 있던 적절한 처리 후에 처분하는 방법이 있다.
일찍이 프랑스에서는 지난 1991년 법에 의거 세 가지 대안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여 2006년도에 그 결과를 의회에 제출하도록 한 바 있다. 프랑스 관계 기관에서는 그 연구를 2005년도에 끝 마쳤고 그 결과 첫 번째 대안인 핵물질 분리 및 변환(P&T)은 2040~2050년까지 산업화가 어렵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대안인 땅 속 깊이 처분하는 방안은 가능한 보편적인 방안이고 세 번째 방안인 장기 보관 후 처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기보관 방법은 계속 감시 및 관리를 요함으로 장기 안전성이 입증된다고 할 수 없어 결국은 지하 심층에 처분하는 방안을 최적 대안으로 평가했다.
▲ 원전 수거물 저장고
다른 국가의 현황
미국의 야카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은 2002년에 부시대통령의 처분장 개발 제안을 미의회가 승인함으로써 시작되었으나 그후 해당 주의 강력한 반대, 또 일부 기술자들의 모호한 문제 제기 등으로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Simpler, Safer, More Reliable’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처분장 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으며, 내년도 예산을 5억4,400만불이나 신청해 놓고 있다. 또 처분장 사업을 추진하면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양을 줄일 수 있는 기술 개발에도 힘을 쓰기로 하였다.핀란드는 1985년도에 스크리닝 방법을 통해서 사용후 연료 처분 후보 부지 군을 선정했고, 실제 부지 조사를 1992년까지 수행했으며 상세 부지조사는 2000년 말에 마치고 정부의 부지 승인을 받았다. 정부 승인 전인 2000년 1월에 이미 부지가 속한 지방의회의 승인을 20대7 로 받았으며, 최종 국회의 인준을 2001년5월에 받았다. 앞으로의 일정은 건설 허가 요청을 2010년쯤 할 예정이고 처분은 2020년에 개시할 예정이다.
한편 인접한 스웨덴도 사용후 연료 처분장 부지확보 사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스웨덴은 1970~1980년대에 이미 전 국토 조사를 하였고 1990년대에는 지역 별 조사, 그리고 2002년까지 8개 후보 부지에 대한 사전조사를 끝마쳤다. 그 결과 원전이 인접한 오스카샴과 중부의 오스따마르가 적지로 선정되어 상세 지질조사를 통해 한 곳을 결정한 후 2017년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세계 최초로 개설할 예정이다.
점진적인 부지 선정 절차
최근들어 중저준위든 고준위든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확보한다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구주 공동체의 테일러 박사는 부지확보 사업은 정부, 산업체, 그리고 국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투명한 절차에 의거 한 단계 한 단계씩 차근차근 추진해야 한다고 하였다.전반적으로 이해 당사자의 참여와 점진적인 사업의 추진 방법(step by step decision making)이 크게 강조되었다. 최근에 처분장 부지 확보에 성공한 한국의 발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한국에서 과거에 실패했던 경험담과 이번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많은 인상을 받은 듯하다. 특히 한국에서 공모 방식을 통해 부지를 확보한 사실에 대해 많은 참여자들이 고무를 받은 것 같다.
우리나라는 이제 경주 처분장 부지에 처분 시설의 방식까지 결정하여 처분 사업을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처분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안전성이 문제인 것이다. 다행히 경주 부지에 우리가 설치하려고 하는 시설의 안전성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사전 평가 결과가 나와 큰 위안이 된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은 이제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게 되었고, 남은 숙제는 사용후 원전 연료이다. 사용후 원전 연료는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여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신중하게 추진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