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성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책임연구원
▲김윤성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책임연구원

[투데이에너지] 올해 오랫동안 타던 차를 바꾸면서 전기차를 선택했다. 보조금을 받아도 여전히 동급 내연기관차와 비교하면 가격도 높고, 연료비가 낮긴 해도 높은 자동차 가격을 만회할 정도는 아니지만 에너지전환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차 운행은 이때부터가 산 넘어 산이었다. 무엇보다도 충전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집에 충전기를 달아야했다. ev.or.kr에 안내된 완속충전기 판매업체에 연락을 했고 업체에서는 입금을 하기도 전에 집에 와서 충전기를 설치해줬다. 여기까지는 쾌속진행이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길고 긴 한국전력의 시간이다. 한전에 계량기 설치신청을 했지만 한전에서 시설부담금 납부 안내를 받는데 4일, 바로 송금하고나서 입금확인됐다는 회신을 다시 4일 후, 안전검사 안내받는 데 7일, 계량기가 설치돼 충전기 작동이 완료되는 데 다시 4주가 걸렸다. 한전으로 넘어간 공을 다시 받는데 총 7주가 걸린 셈이다. 

안쓰러울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지연의 연속이라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만약에 오픈마켓에서 정수기나 에어컨을 주문했다면 바로 다음날 설치확인 전화가 오고 제품을 이용할 때 까지 보통 1주일이 넘지 않을 것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조금 알아보니 각 단계를 맡는 회사들이 다 다르고 하청의 재하청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충전기 설치에 관련된 전체 과정을 소상히 파악하면서 소비자에게 불편이 가지 않도록 하는 일을 총체적으로 책임질 담당부서가 모호해서일 것이다. 

비단 전기차 인프라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지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우리가 에너지 신산업이라고 부르는 분산자원시장의 플레이어들, VPP관련 사업들, AMI나 에너지 데이터 이용 사업들은 모두 소비자가 직접 서비스를 이용하려 할 때 한번에 신청하고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는 것처럼 에너지전환에서 재생에너지 중심 전력화는 핵심 중의 핵심이고 전기차 베터리 전력을 전력망으로 재송전한다는 V2G와 잉여전력을 다양한 형태로 이용한다는 P2X는 효율적인 에너지전환을 구현하는 기술들이다. 그리고 이런 구현기술들은 모두 소비자가 직접 참여해야 작동을 시작한다. 현재 우리 에너지 시장이 소비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준비가 다 되었는지 묻고 싶다.

올해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18년대비 35% 이상 감축하기로 약속하는 탄소중립법을 제정했다. 목표가 법제화된 만큼 이제 정부에게 에너지전환은 미래 전망이 아니고 당장 풀어야 하는 문제이자 발등의 불이 됐다. 올해는 에너지전환의 여러 시나리오들을 놓고 숫자를 뽑고 모델링결과들을 제시하고 비교하는 모델러들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에너지전환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실행계획들이 제시돼야 하고 정책들은 작동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보급과 관련된 개발절차들은 명확하게 제시돼야 하고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이 에너지시장에 나와야 한다. 

얼마전 산업부는 탈탄소 공급믹스 전환과 분산에너지 시스템 혁신, 전력계통망 혁신, 전력시장제도 개선 등을 포함한 에너지 탄소중립 혁신전략을 발표했다. 과거와 비교하면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과제들이 보다 부각되는 전략이라고 보인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와 이를 뒷받침할 전력계통은 에너지 전환의 인프라이고 전력시장은 이를 작동시킬 장치이기 때문에 혁신이 시급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에너지 생산-소비 시스템의 말단인 소비자 단계에서 어떻게 혁신이 이뤄지는지는 모호해보여서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B2B전략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시장이 잘 움직일지는 그려지지가 않는다. 예를 들면 특히 분산에너지 시스템은 소비자와 접점이 많은데 어떤 기술과 상품을 통해서 소비자가 분산 에너지 시스템에 참여하게  될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총괄부서가 한전이나 에너지신산업 사업자들과 어떻게 협력하고 책임을 명확히 해서 에너지 시스템의 말단을 움직이게 하려는지도 잘 모르겠다. 

탄소중립법이 제정된만큼 내년부터 에너지전환은 실전이다. 그리고 소비자나 신산업 사업자들이 불편하지 않게 유기적으로 에너지시장에 참여할 수 있어야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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