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옥상에 설치된 GHP 실외기.
건물 옥상에 설치된 GHP 실외기.

[투데이에너지 홍시현 기자] 환경부는 가스히트펌프(GHP) 배출기준 강화 및 관리 방안을 포한한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지난해 9월24일부터 40일간 입법예고 했다. 하지만 보통 40일 간의 의견수렴기간이 끝나면 법을 고시하는 것과 달리 아직까지 고시가 언제 이뤄질 수 있을지 조차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개정안을 추진한 환경부와 이를 반대(?)하는 산업통상자원부 간의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편집자 주

■매년 부족하지만 지속적 지원
지난 2011년 9월 예상치 못한 냉방부하 급증으로 전국적인 대규모 순환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대규모 정전사태는 국가적인 전력대란 위기까지 불러왔으며 이후 피크전력 분산에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에너지 불균형이 심했던 우리나라의 경우 전기냉방 88%, 가스 및 집단 에너지냉방 12%로 전기 사용 의존도가 높았다. 이에 대안을 착안해 동·하절기 전력피크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최적의 시스템으로 GHP가 급부상하면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정책이 ‘가스냉방 설치지원’사업이다.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예산을 마련해 GHP RT당 장려금을 지원해 GHP 보급 확대를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GHP 보급 수요 확대에 예산이 따라가지 못해 장려금이 지급되지 못하고 쌓이는 등 문제도 발생하기도 했다. 

동시에 예산도 점차 줄어들면서 지원대상 및 장려금 기준도 자주 달라졌다. 

가스냉방 장려금은 지난 2011년 50억원을 시작으로 2014년 140억원을 정점으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2018년에는 70억4,900만원에서 2019년에는 66억9,500만원으로, 2020년과 2021년 63억6,100만원으로 편성됐다. 이 예산은 GHP 뿐만 아니라 직화흡수식 냉·온수기도 포함돼 있다. 

가스냉방 장려금이 집행되기 시작한 이후 미지급금이 누적(2016년 기준 150억원)으로 업계의 불만이 쌓여 정부에서는 2018년 미지급금 신청을 받아 지급했다. 2017년의 경우에는 예산이 9월에 소진됨에 따라 2018년부터는 대당 지원금을 줄였으며 설치 현장에 대해 1억원 한도로 지원기준을 변경했다.

업계의 관계자는 가스냉방 보급이 지지부진한 이유에 대해 “가스냉방 장려금 예산이 매년 줄어들고 설치 현장에 대한 지원도 1억원으로 한정해 가스냉방시장을 위축시켰기 때문”이라며 업계에서는 예산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오고 있다. 

결국 산업부에서는 지난해 5월 현행 예산 내에서 가스냉방 설치지원단가가 평균 20% 인상되고 신청자당 지원한도가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 조정돼 6월부터 시행한다는 ‘가스냉방 보급 확대방안’을 내놓았다.

■‘예산’에서 ‘환경’으로 논란 전환
그동안 GHP 예산에 대한 문제점이 논란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환경’이라는 더 큰 논란에 휩싸이며 GHP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2020년 국정감사가 있기 바로 전에 GHP 대기오염물질 배출 보도가 나오면서 GHP의 친환경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환경노동위원회 안호영 의원은 “가스엔진구동 냉난방기 GHP에서 대기오염물질이 저감장치도 없이 그대로 배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GHP 대기오염물질 배출농도 측정결과’에 따르면 시중에 유통되는 GHP 전체에서 적게는 기준치(‘대기환경보전법’ 상 대기오염물질의 배출허용기준 임의적용)의 2배, 많게는 기준치의 40배까지 배출되는 있었다. 

결국 국감에서의 지적에 대해 산업부와 환경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업부는 5월에 발표한 ‘가스냉방 보급 확대방안’에도 환경적 내용을 담아내지는 않았다. 대신에 GHP와 관련 있는 KS인증, 고효율에너지기자재인증 기준을 변경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지난해 5월 GHP 배출가스(NOx 등) 관리를 위한 기준 값을 담은 ‘가스 열펌프-일반 요구사항(KS B 8051)’을 개정 고시했다.

이번 KS 기준은 국내 시험환경과 국내의 규제기준을 고려해 NOx 1등급 20ppm, 2등급 40ppm, 3등급 100ppm으로 기준을 정했으며 CO는 2,800ppm 이하로 제시했다. CH₄는 국내 THC(Total hydrocarbon), HC(hydrocarbon)에 대한 법률적인 내용이 확정되지 않아 온실가스 저감에 대비해 시험항목에 반영했으며 SO₂는 기기의 특성이 아닌 유입되는 연료의 특성으로 판단돼 개정에서 제외됐다. 

KS 기준에 이어 지난 8월 입법예고된 GHP 고효율에너지기자재인증 개정안에서도 배출가스 농도를 NOx 20ppm 이하, CO 800ppm 이하로 제정했다. 핵심인 NOx는 KS 기준과 동일하며 안전과 관련된 CO 기준은 크게 줄었지만 업계에서는 별 무리가 없다는 반응이다. 

 

환경부는 산업부의 GHP 대기오염물질 배출 기준 변경과는 달리 움직였다. 

환경부는 우선 전국 기 설치된 GHP에 대해 전수조사하고 이 결과를 토대로 제품 배출특성 및 보급현황조사 등을 토대로 신제품에 대한 인증기준을 마련하고 기 판매된 제품 저감방안(저감장치부착 및 교체 지원)을 추진했다. 

하지만 환경부의 저감장치 부착 시범사업은 ‘밀어주기’ 논란으로 시작부터 시끄러웠다. 전직 환경부 임원들이 있는 모 협회에 시범사업을 위임하면서 GHP 제조사를 제외하고 협회 회원사로 사업자를 선정했다. 

단순 저감장치 부착을 넘어 엔진튜닝이 필수적으로 엔진과 물리적으로 연결된 냉매압축기의 제어방식이 변경되는 것으로 그로 인한 다양한 위험발생 및 제품 파손으로 고객의 피해로 야기될 수 있어 GHP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가 필수적이므로 자동차와 건설기계 정비(검사) 자격으로는 해당사업에서 전문성이 부족해 냉동공조 관련자격(공조냉동기계기술사 등)이 포함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배제한 채 진행됐다. 

고압가스안전관리 대상인 GHP에 저감장치 부착하는 것은 단지 수리가 아니라 개조에 해당돼 이는 신규 생산으로 설계, 생산, 설치 단계 모두 가스안전공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협회에서는 이 부분을 간과한 채 진행해 이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 시작부터 어긋나면서 지난해 GHP 100대에 부착하겠다는 계획은 현실상 불가능했다. 

환경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9월 GHP 대기오염물질 배출허용기준을 신설하고 적용시기를 담은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고시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환경부는 GHP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의 관리를 위해 NOx·일산화탄소·탄화수소 등의 배출허용기준을 ’2022년 6월30일 이전 시설은 NOx 100ppm, CO 400ppm, HC 400ppm으로 2022년 7월1일 이후 시설은 50ppm, 300ppm, 300ppm으로 신설했다. 신규시설은 2022년 7월부터, 기존시설은 2025년 1월1일부터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환경부의 개정안에 대해 산업부와 업계 그리고 정치권에서는 서로 다른 이유로 반대했다. 산업부와 업계에서는 환경부의 개정안은 GHP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GHP 가격 상승, 시장 붕괴 등을 야기한다는 이유다. 

■환경부의 밀어붙이기 
결국 환경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 에 빠졌다. 

산업부의 의견을 환경부가 받아들일 경우 환경부는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배출가스기준을 후퇴시켰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반대로 환경부의 의견을 산업부가 받아들일 경우 기준 적합 제품 미출시 및 GHP 가격 상승 등 최악에 상황에는 GHP 보급이 멈출 수도 있다. 

업계의 관계자는 “아직 환경부의 배출가스기준을 충족하는 GHP 제품이 없을뿐더러 충족시킨 제품을 출시한다고 하더라도 빨라야 2023년에나 가능하다”라며 “또한 산업부의 기준을 맞춘 제품도 가격을 올려야 하는 데보다 강화된 환경부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GHP 가격이 더욱 큰 폭으로 오를 수밖에 없어 현재의 지원수준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한국가스공사에서는 GHP 가격 상승을 고려해 올해 GHP 지원예산을 지난해보다 17억원이 증가한 약 81억원을 신청했다. 가스공사의 관계자는 “가스냉방 전체 지원금만 신청한 상태로 추후 지원단가 조정 등은 필요하다”라며 “일부 GHP 제조사에서는 산업부의 배출가스기준을 맞춘 제품을 출시할 수 있다는 반면 그렇지 못한 제조사도 있어 차별적 지원이 될 요지가 있어 현재 상황을 신중히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산업부는 환경부의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에 대해 과도한 규제로 GHP 성능 저하, 정부의 전력부하 및 온실가스 정책과 부합, GHP 시장 붕괴 등의 우려를 전달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밀어붙인다는 계획이다. 환경부의 관계자는 “산업부를 종합적으로 설득할 것”이라며 “이 기준은 지킬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GHP 제조사와 가스안전공사 등과 어느 정도 협의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GHP 제조사와 업계의 관계자는 “환경부에서 어느 정도 협의됐다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라고 난색을 나타냈다. 

결국 산업부, 업계 그리고 환경부의 의견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올해 GHP 시장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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