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보급률 목표는 2030년에 20%이다. 2020년 말에 7.4% 수준에 머물러 갈 길이 멀다.
제주도는 2020년 말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19%에 달해 이미 우리나라 목표의 95%를 달성한 상태다. 2030년까지 ‘탄소 없는 섬(CFI)’을 기치로 내건 제주로서는 이 정도의 달성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2030년까지 전력 생산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해 2030년에는 완전한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것이 ‘탄소 없는 섬, 제주’의 목표이다. 이렇게 보면 갈 길이 멀다고 말하는 제주도 당국자의 불만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 당국자의 말에는 더 깊은 고민이 깔려 있다. 재생에너지 보급 성공이 가져다준 문제가 오히려 확대를 가로막는 장애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은 친환경적 강점이 있지만 자연조건에 종속되는 한계가 있다. 해가 지거나 바람이 잦아들면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한다. 날씨가 좋으면 필요 이상의 전기를 생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 남아도는 전기가 전력계통망에 피해를 줄 수 있어서 전력 당국은 재생에너지 발전을 강제로 중단시킨다.
제주도의 경우 2020년에 77회(19.5GWh)의 발전제약이 발생해 30억원 상당의 손해를 봤다. 2022년에는 그 횟수가 늘어 피해 금액도 늘어날 전망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의 수익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선뜻 재생에너지사업에 투자하겠는가?
이론적으로는 재생에너지 발전제약을 해결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잉여전력을 저장하거나(EES, EV) 다른 에너지로 전환하거나(P2G, P2H, 전전화) 에너지 소비를 관리하거나(DR, VPP) 스마트한 기술로 발전량을 제어하거나(AGC, 출력예측) 아니면 고압직류전송망(HVDC)을 통해 아예 남는 전기를 육지로 보내버리는 등 다양한 방법과 기술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선결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가 많다.
재생에너지 발전제약은 우리나라가 곧 겪게 될 문제를 제주가 먼저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탄소중립 2050을 선언한 우리나라로서는 사전에 치밀하게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생에너지 잉여발전의 문제에 대처하는 제주도의 노력은 우리나라의 탄소중립 달성에 시사하는 바 크다. 요컨대 제주에서는 재생에너지 생산을 줄이거나 성장을 멈추는 소극적 방법에 의하지 않고 과감한 기술적 돌파에 의해 ‘녹색’과 ‘성장’을 동시에 달성하는 실험정신이 돋보인다.
제주는 ‘그린빅뱅’으로 축약되는 기술적 돌파를 통해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는 CFI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린빅뱅은 신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 전기차 등 녹색기술 간의 상호작용성을 강화해 환경을 살리면서 동시에 녹색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주도는 재생에너지의 잉여전력을 버리는 대신에 남는 전력으로 도시문제 해결과 스마트도시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잉여전력을 활용해 모빌리티를 전전화(全電化)한다. 이를 통해 제주의 고질적인 대중교통난을 해소하고 주유소를 신재생에너지와 친환경 모빌리티가 만나는 ‘스마트허브’로 전환해 탄소중립으로 피해를 보게 되는 업종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도 구사한다.
또한 에너지저장장치와 충·방전이 가능한 전기차(V2G)를 활용해 잉여전력을 싸게 구입해 피크 시에 되팔아 주민 소득을 증대시키는 방법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실험하고 있다.
제주에서는 재생에너지의 성공이 가져다준 난제를 오히려 도시문제를 해결하고 주민 삶과 도시 공간을 격상시키는 도전(challenge)으로 해결하는 시도가 ‘스마트도시 챌린지’사업으로 전개되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기존의 목표를 훨씬 뛰어넘는 온실가스 감축을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파리기후체제의 ‘후퇴금지원칙’에 의해 이 약속은 기필코 지켜져야 한다.
최근 필자가 속한 기관에서 수행한 ’제주 사례를 통한 태평양 도서국가들의 에너지시스템’에 관한 연구는 세계은행과 태평양 섬나라들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재생에너지 확산이 발전제약을 가져온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K-팝이나 K-드라마처럼 제주에서의 도전적 실험이 ‘K-탄소중립’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