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중앙회 등 18개 단체 관계자들이 납품단가 원자재 연동제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18개 단체 관계자들이 납품단가 원자재 연동제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투데이에너지 홍시현 기자]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상당수의 제조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제품 가격을 한 차례 인상을 단행했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제품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결국 다시 제품 가격 인상을 심각히 고민 중이다. 제품 가격 인상이 경영난을 어느 정도는 해소해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제품 가격 인상이 현장에서는 제대로 반영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중소기업 경영난 심화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기문)는 지난달 4월11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중소기업 납품단가 제값받기를 위한 기자회견’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와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촉발된 원자재 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등이 가격 상승분을 납품대금에 제대로 반영해 주지 않아 중소기업들의 애로가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기중앙회가 3월28~31일 중소기업 304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납품단가 제값받기를 위한 중소기업 긴급 실태조사’ 결과, 중소기업 제품은 공급원가 중 원자재비가 58.6%에 달해 제조원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20년대비 현재 원자재 가격은 51.2%나 상승했으며 같은 기간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경영여건이 매우 악화됐다는 응답도 75.2%에 달했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전부 반영 받는 중소기업은 4.6%에 불과했고 전부 미반영이라고 응답한 중소기업도 49.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들은 향후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납품대금에 반영되지 않을 경우 △생산량 감축(41.9%) △일자리 축소(32.9%) △공장 폐쇄(9.6%) 등으로 대처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원자재 가격 상승 지속
최근 차에 주유하기 위해 한 푼이라도 싼 주유소를 찾아가는 운전자를 흔히 볼 수 있다. 싸다고 소문이 난 주유소에는 기름을 넣기 위해 대기하는 차들이 줄을 잇는다. 이러한 이유는 원유 공급 차질로 인해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이 넘는 주유소가 2012년 이후 가장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사장 김동섭)는 유가정보시스템인 오피넷의 국내 석유제품 주간 가격 동향을 통해 4월3주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이 전주대비 9.3원 내린 1,967.8원, 경유는 3.0원 내린 1,899.6원을 기록했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의 배경과 국내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원자재는 미국, 중국 등 영토가 크고 자원 매장량이 풍부한 국가에서 주로 생산된다.

그 중에서도 미국은 원유(세계 공급의 14.9%), 천연가스(23.8%)의 최대 생산국이며 중국은 석탄(50.6%)과 알루미늄(57.0%)의 세계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구리는 칠레(27.8%)와 페루(10.4%) 등 중남미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며 니켈은 인도네시아(30.7%)와 필리핀(13.3%) 등 동남아시아 지역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원유, 석탄, 천연가스 등 원자재가 생산되고 있으나 그 비중이 전체 수요의 1%에도 미치지 못해 대부분의 원자재는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러-우 전쟁 이후 공급 차질에 대한 불안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원유가격은 배럴당 128달러까지 치솟으며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석탄(159.4%), 니켈(118.9%), 천연가스(78.7%) 등도 2021년 말대비 70% 이상의 상승폭을 기록했다.

이러한 원자재 가격 상승은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24일 발간한 ‘해외경제 포커스’에 따르면 국제 원자재 가격은 팬데믹 회복과정에서 나타난 수급불균형 및 우크라이나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코로나 위기 이전보다 높은 수준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국제 원자재 시장은 코로나19 충격 이후 빠른 경기회복으로 원자재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 하에서 탄소중립 강화로 원유증산이 제약되고 비철금속 수요가 증가하는 한편 전력난으로 비철금속 생산이 감소했다. 

주요국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전기차 보급 및 친환경에너지 투자를 확대하면서 관련 비철금속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경기회복과 탄소중립정책 추진 과정에서 석탄, 천연가스에 대한 수급불균형으로 중국과 유럽에서 전력난을 겪으면서 비철금속 생산이 감소했다. 

이와 함께 에너지가격 상승이 생산비용 증가를 통해 非에너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전가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사태로 주요 원자재의 공급차질이 가중됐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국제 원자재 가격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에도 팬데믹 충격 이후 빠른 경기회복, 탄소중립 강화 등에 따른 수급불균형 지속 등으로 높은 수준을 보여 왔으며 이러한 구조적 수급불균형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워 원자재 수급불균형으로 높은 원자재 가격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이어 또 다시 인상
에너지 기기 관련 제조기업에서는 지난해 원자재 가격 상승 여파에 한 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대표적으로 가격 인상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 왔던 가정용 보일러 제조기업에서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약 8년 만에 지난해 말에 가격을 10% 가량 인상했다. 인상 배경은 보일러 주요 원자재인 흑파이프, 스텐파이프, 철판, 코일철판 등 지난해 3분기 기준 전년동기대비 최고 86% 폭등했다. 

에너지 기기 제조기업 관계자는 “원자재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라며 “현재에도 연초대비 원자재 가격이 15% 이상 올랐다”고 가격 인상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와 같이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지속됨에 따라 보일러 이외에도 상당수의 에너지 관련 제조기업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인상하는 것으로 결정, 반영 시기 결정만을 남겨 놓고 있다. 이르면 상반기 중 제품 가격이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부 기업에서는 인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가격 인상에 주저하고 있다.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과 인상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상충하고 있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이 지속된다면 인상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제조기업보다 더 큰 문제는 설비기업 또는 발주처에 직접 공급하는 기업이다. 설비기업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시공 과정에서 필요한 제품 가격 등이 올라 날이 갈수록 적자다”라며 “발주처에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고는 있지만 반영이 안 돼 공사비 부담을 그대로 안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미 일부 공사현장에서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공사 중단 사태까지 이어지고 있다. 

■납품단가 원자재 연동제 필요
에너지 기기 제조기업의 관계자는 “3~5%의 원자재 가격 상승은 기업에서 비용을 줄여서 감내한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감내할 수준을 넘어섰다”라며 “정부에서는 소상공인에 대해서는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우리와 같은 중소 제조기업에는 어떠한 지원도 없어 한계기업으로 더욱 몰리고 있다”며 정부의 조속한 대책을 촉구했다.

이처럼 제조기업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에서는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5조600억원 규모의 ‘2022년 중소기업 정책자금 융자계획’이 기존 중소기업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5조600억원 중 중소기업에는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경영안정자금은 2,000억원에 불과하다.  

최근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제값받기’, 납품가격 원자재 연동제다. 납품단가 원자재 연동제는 원자재 등의 가격이 급등할 경우 가격 상승분을 납품대금에 반영하는 제도를 말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납품단가 조정을 유도한다는 틀 아래 납품단가 반영해 계약 체결한 기업에 인센티브 제공 원자재 가격 변동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모범계약서 등 제도 개선 등을 내놓았다. 

하지만 인수위의 자율적 납품단가 조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협상에서 대기업이 협상력 우위에 있어 중소기업의 의견 반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자율적이 아닌 강제성이 있어야 한다. 

결국 위기의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재 상황에서는 납품단가 원자재 연동제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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