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승진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전문위원
정부가 지난 6월 발생한 사상 최악의 학교급식 식중독 사고 재발 방지 방안의 하나로 축육·수산제품 방사선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소비자단체가 크게 반발하여 그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고 한다. 이미 2004년에도 방사선 조사 식품 허용범위 확대를 추진했다가 소비자단체의 반발에 부딪쳐 무산된 바 있다.

방사선 식품조사는 식품을 신선한 상태로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 방사선 및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하여 미생물이나 기생충을 없애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열 발생이 없어 ‘식품의 냉살균(?H) 처리’라고도 한다. 영양가 손실이 적고 조사 후 잔류물질도 거의 남지 않는다. 또한 포장이 끝난 제품도 처리할 수 있으며, 연속적인 다량 처리도 가능하여 기존 각종 식품처리방법과 함께 응용할 수 있는 첨단 식품처리 기술이다.

식품조사에 이용되는 방사선은 주로 감마선, 전자선, X선 등이다. 선량은 일반적으로 10kGy(킬로그레이;방사선 조사선량 단위)를 기준으로 구분하는데, 저선량(0.2~1kGy)은 채소의 발아 방지, 과일이나 곡물의 살충, 육류의 기생충 사멸에 이용하고, 중선량(1~10kGy)은 축육, 어육, 향신료, 건조채소의 살균에, 그리고 고선량(10kGy 이상)은 상업적인 목적의 완전살균에 주로 이용하고 있다. WHO(세계보건기구)와 FAQ(국제 식량 농업기구), IAEA(국제원자력기구) 뿐만 아니라, CODEX(국제식품규격위원회), ICGFI(국제식품조사자문그룹)에서도 식품의 안전한 저장 및 살균, 살충에 방사선을 이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방사선 식품조사 기술은 1960년대 러시아와 미국의 경쟁적 구도에서부터 발전되어 왔다. 우주기술의 라이벌이던 두 나라에서 우주에 갖고 갈 식품을 만들기 위해 이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우주에선 음식 속에 남은 미생물이 치명적인 세균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방사선으로 100% 멸균하는 기술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원자력연구소에서 한국 최초 우주인을 위해 ‘우주김치’를 개발했다. 또한 수입 농산물이나 국가비상식량, 군용식량 등에도 이 기술을 활용한다. 동남아에서 쓰나미 재해가 일어났을 때 구호용으로 유용하게 사용됐었던 식품도 방사선 조사식품이었다.

방사선 식품조사는 세계적으로 60년 이상의 개발 역사가 있어 안전성이 충분히 확인되었다. 동물실험, 방사선분해생성물에 대한 분석, 영양학적·미생물학적 평가에 대하여 검토한 결과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기술로 이미 밝혀졌다. 특히 수많은 연구결과 방사선 특유의 분해생성물은 존재하지 않음이 증명되었다. WHO, FAQ, IAEA 등 공신력있는 국제기구에선 방사선 조사를 기존 허용기준보다 10배 이상 높여도 건강에 아무런 위험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집단 식중독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노로바이러스(Norovirus)는 방사선 식품조사를 통해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방사선 식품조사 기술을 이용하면 노로바이러스는 물론 O-157, 살모넬라, 콜레라 등 다른 식중독 균도 쉽게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한국원자력연구소를 중심으로 지난 식중독 사태의 원인으로 의심받고 있는 돼지고기 등 식육류에 대한 방사선 조사연구를 완료, 연구결과에 대한 특허를 취득한 상태다. 하지만 아직 많은 국민들이 식육이나 가공품에 대한 방사선 조사에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 방사선 식품조사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52개국에서 250여 식품 품목에 식중독균 제거와 곰팡이, 해충 등 병충해 방제 목적으로 방사선 식품조사가 사용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식품안전기준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는 무려 55개 식품에 방사선 조사를 허가하고 있으며, 2003년부터는 국공립학교 점심 급식 프로그램에 방사선 조사가 된 소고기의 공급을 승인한 바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제규준에 맞춰 엄격하게 방사선 식품조사 범위를 넓힌다면 학생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급식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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