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탁 한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에너지 세제에 대한 인식 전환

최근 석유가격 상승으로 인해 에너지 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에너지 세제가 석유가격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데다가 수송용 중심의 제2차 에너지 세제조정에 이어 난방용 에너지세제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송용 세제조정 등을 통해 일부 개선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에너지 세제는 여전히 에너지정책 자체보다 정부의 세수확보, 국민의 생활물가, 산업체의 경쟁력이라는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세계 에너지 수급과 기후변화협약 문제를 감안해 볼 때, 앞으로의 에너지 세제 논의는 국가에너지정책이란 본래적인 차원에서 조망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에너지 세제에 대한 인식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에너지를 전량 해외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에너지 수요관리 및 에너지 믹스를 위한 국가에너지계획이 매우 중요한데, 에너지 세제는 이러한 국가에너지계획의 핵심수단이다. 에너지 세제가 더 이상 세수확보나 물가수준 나아가 산업경쟁력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국가에너지계획을 위한 독립적인 정책수단으로 설정되어야 하며 기존의 요인들은 이러한 기본 설정 위에서 감안되어야 한다.

둘째,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세제정책은 환경세 중심의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협약과 포스트-교토문제가 어떻게 귀결되든지 우리나라의 이산화탄소에 대한 감축문제는 피해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 에너지 세제 역시 환경성과 여타 사회적 환경비용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에너지 세제의 중장기 개선과제

이러한 세제에 대한 인식 전환을 토대로 우리나라 에너지 세제의 중장기 개선과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조세체계, 정책체계, 추진체계의 3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세체계의 문제로서 에너지 세입과 세출 구조의 문제이다. 세입의 측면에서 볼 때 대부분 OECD 국가들이 단순한 과세체계로 운용하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부가가치세와 특별소비세 이외에 교통세, 교육세, 지방주행세 등 여러 가지 목적제가 상이한 목적 하에 부과되고 있다. 목적세 중심의 복잡한 과세체계는 재정운영의 경직성은 물론 징수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저해한다. 아울러 목적세 중심의 과세체계는 에너지와 무관한 특정정책의 목적을 위해 해당 세율을 변동시킴으로써 장기적이고 일관된 에너지 세제의 방향설정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

에너지의 세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세출 구조의 문제이다. 특히 교통세의 경우 10조원대의 세수(국세의 10% 수준)가 거의 교통시설특별회계로 편입되어 도로건설, 철도, 항만건설 등에 사용되고 있다. 원활한 경제활동을 위해 사회간접자본과 물류시스템의 안정적인 구축은 필요하다. 하지만 부처의 이해관계나 지역적 이해관계가 아닌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공익적 관점에 입각한 도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보다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동북아 물류 중심을 내세우고 있는 투 포트 시스템(부산항-광양항) 역시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투자인지 엄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브라에스역설이 강조하듯이 교통물류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은 시설 확충이 아닌 교통수요 관리와 물류 시스템의 효율화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세수 지출의 경제적 효율성만이 아니라 형평성과 환경성에도 문제가 있다. 오염원인행위를 근거로 징수된 세수가 환경개선이나 에너지 분야에는 사용되지 않고, 또 다시 도로 건설과 같은 오염원인행위에 투자된다는 것은 형평성이나 환경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물론 최근 부처간 협의에 의해 교통세의 극히 일부를 에너지와 환경 쪽으로 사용하기로 하였지만, 세출 구조의 개선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처간 협의에 의한 목적세 유지라는 의혹을 낳고 있다.

둘째, 정책체계의 문제로서 세제정책과 요금 정책간의 괴리문제이다.

현재 에너지 세제는 정부에 의해 직·간접으로 결정되는 에너지 요금(특히 전기 및 가스요금)과의 관련성을 고려하지 않고 별개로 운용되고 있다. 등유세제 인상으로 인한 연탄 및 심야전기 수요가 연탄생산의 보조금문제, 전기부하의 왜곡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셋째, 추진체계의 문제로서 현재 에너지 세제와 요금 제도가 부처간 충분한 협의와 장기적 계획 없이 해당 부처의 이해관계에 의해 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획예산처는 예산효율화만 생각하고, 재경부는 세수문제만 생각하고, 산업자원부는 산업경쟁력만 생각하고, 환경부는 환경만 생각하는 시스템 하에서 에너지 세제정책은 일관성을 갖추기 어렵다. 에너지 세입과 세출문제 나아가 종합적인 에너지 세제 및 요금제도의 중장기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정부 부처간 협의장치가 절실하다.

에너지 세제의 당면과제

이러한 중장기 개선과제를 염두에 두면서 시급한 당면과제부터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다. 우선 가장 시급한 현안은 난방용 에너지의 세제조정이다. 등유세제가 경유세제 인상과 연동됨에 따라 농촌과 도시 서민들의 난방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난방용 등유는 수송용 경유에 비해 환경오염이나 사회적 혼잡비용이 덜 하다는 점에서 등유 세제를 경유 세제와 연동시키는 것은 불합리하다. 형평성차원에서는 더 큰 문제가 야기되고 있는데, 도시가스나 지역난방 등을 통해 사실상 교차보조와 간접 지원을 받고 있는 대도시 중산층에 비해 등유나 LPG를 사용하는 농촌이나 도시서민들이 더 많은 난방비와 세제를 부담하고 있다. 더구나 등유세제 인상으로 인한 연탄 수요 및 심야전기수요 증가는 연탄 보조금 문제와 발전설비의 왜곡으로 경제적 효율성마저 저해하고 있다.

등유 세제가 인하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세수부족에 대한 우려이고, 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등유의 경유 전용문제이다. 등유세제 인하로 발생하는 1조원도 되지 않는 세수 손실은 비효율적인 조세감면제도(20조원의 세수감면)의 5%만 없애도 해결 가능하며, 금융소득종합과세나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해도 가능하다. 세수 손실을 언급하기 전에 부동산의 폭등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이 사라져 버린 서민들에게 최소한 전셋집에서 나마 따뜻하게 지내게 해줄 필요가 있다.

나아가 전용방지에 대한 대안이 없다고 해서 하층 서민들의 난방비 부담을 묵인하는 것도 정당하지 않다.

유사한 상황의 외국 사례를 보더라도 수송용 경유 문제 때문에 서민들의 난방유 비용부담을 강요하는 나라는 없다. 노상단속을 강화하거나 혹은 난방용 등유구입 가구에 대한 세금환급제도(상한금액 적용) 등 다양한 제도를 적극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설령 이러한 제도적 장치 실행에 사회적 비용이 든다하더라도, 이는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할 성격이다.

따라서 난방용 세제 조정의 기본방향은 등유 세제를 인하하면서 열량단위와 환경부담을 고려하여 등유, LPG, 도시가스(LNG)간의 형평성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

다만 수송용 세제의 조정이 난방용세제 문제를 야기한 우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LNG가 발전용으로도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복합화력(LNG)이 유연탄이나 중유발전에 비해 환경성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면세 혹은 거의 면세수준의 유연탄 및 중유에 비해 특소세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방용 세제의 조정에 앞서 발전용의 도시가스에 대한 교차보조를 해소하여 도시가스 가격상승과 발전용 LNG 가격인하를 선행하고, 발전용 LNG의 특소세와 유사하게 유연탄이나 중유에 대해 과세를 강화하여 전력부문에서 발전원간 공정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산화탄소 발생과 환경오염에 가장 큰 문제를 야기하는 유연탄이 면세인 것은 환경성과 발전원간의 공정경쟁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또한 중유는 석유류에서 가장 환경에 유해하지만 세금은 거의 면세 수준이다. 중유가격의 저위, 낮은 산업용 전기요금(주택용의 교차보조와 원가이하의 심야전기)이 방만한 에너지 소비와 낮은 에너지효율의 원인이며, 나아가 소형열병합과 같은 에너지 효율적인 시스템을 산업용이 아닌 공동주택용으로 왜곡시킨 주된 요인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산업의 경쟁력이나 전기요금의 상승을 우려하여 유연탄에 대한 과세나 중유의 세율인상을 주저한다면 오히려 장기적인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우를 범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산업 경쟁력을 잠식하는 것은 방만한 에너지소비 구조 속에서 무방비 상태로 갑작스러운 에너지 가격의 폭등에 노출되는 것이다. 또 전기요금의 상승에 따른 최하층 서민들의 부담은 쿠폰이나 기타 직접적인 지원제도를 통해 대응하면 될 것이다. 에너지집약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기후변화협약 때문이 아니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에너지 효율을 높여야 하며, 세제 조정을 통한 점진적인 가격상승은 수요관리 프로그램의 활성화와 에너지 효율 개선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고르디아스의 매듭풀기

물론 이상에서 제기한 문제가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에너지간의 교차보조가 얽혀 있고,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민감한 사안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복잡하고 민감한 사안이란 이유로 주저하기에는 현재 에너지 시스템 전체의 왜곡과 부작용이 너무 심각하다. 문제가 복잡할수록 해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성한 논의와 눈치 보기가 아니라 복잡한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단칼에 베어 버린 알렉산더 대왕의 결단력이다. 최근 국가에너지위원회가 출범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에너지세제의 개선과제야 말로 국가에너지위원회가 관심을 집중해야 할 중요한 안건이다.

‘에너지비전 2030’의 화려한 구상도 에너지세제의 근본적인 전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국가에너지위원회는 냉철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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