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용으로 부탄가스나 양초, 라면 등을 준비했던 집이 한 둘이 아니고 2000년 첫새벽에 수도꼭지를 틀어보고 안도한 가정 또한 적지 않았을 정도로 지난 몇해동안 전세계가 시끌벅쩍 요란을 떨고 잔뜩 겁을 먹었던 이른바 Y2K위기가 온갖 불길하고 방정맞던 예상들과는 달리 별 사고없이 지나가는듯 싶어 다행이로구나 했더니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Y2K대비를 위해 비용을 너무 많이 들인 것 아니냐, 과잉대응이 아니었느냐 하는등 지구촌 곳곳에서 또다른 시비가 일고 있는 것 같다.

네티즌 중에는 심지어 전세계 정보통신산업을 쥐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과 미국 컴퓨터 업계의 과장과 상업주의에 놀아나 결국 그들의 배만 불려준 사기극이었다고 흥분하는 그야말로 과장된 반응도 있는듯 해 역시 유비무환(有備無患)이로구나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로선 다소 입맛이 개운치 않았을 것이다.

물론 예상되는 Y2K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전세계가 들인 비용을 따져보면 전인류 한사람당 40달러가량 쓴 셈이라 할 만큼 그 규모가 천문학적이었던 것은 틀림이 없다.

보도마다 차이는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줄잡아 적게는 2천5백억 달러에서 많게는 1조달러가 투입되었을 것이라는 추산이 있는가 하면 제일 많은 비용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경우 최소 1천억 달러에서 6천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자그만치 1백12조원에서 6백72조원이나 되는 막대한 비용을 썼을 것이라는 추정이고 보면 사고예방을 위해 쓴 돈치고는 문자그대로 천문학적인 액수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역시 당초에는 과잉대응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을 정도로 공공부문에만 1조1천억이 들어갔으며 여기다 민간부문에 들어간 것까지를 합치면 2조원을 훨씬 넘을 것이라니까 이 또한 적은 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Y2K에 대한 대비가 다소 소홀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태리나 러시아, 중국 같은 나라에서 조차 별일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자 애당초 피해예상이 지나치게 과장된 것 아니었느냐는 비난과 함께 돈도 돈이지만 공연히 난리법석을 떨며 헛고생했다는 불만도 터져나오고 이번일로 제일 돈을 많이 벌었다는 미국의 컴퓨터 장비 제조업체와 소프트웨어업체들 그리고 두자리 수의 연도만 인식하는 컴퓨터를 만들어 판매한 IBM은 Y2K문제에 책임이 적지 않을터인데도 오히려 Y2K로 엄청난 수익을 챙겼다고 몹시 배아파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별일없이 위기를 넘겼다고 해서 돈들인 것을 아까워하거나 누가 돈 좀 벌었다고 마냥 배아파할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그만큼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만한 준비도 없는데 Y2K가 끔찍한 사고를 안겨주었다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보자. 그래도 돈이 아깝고 이번에 경험한 범세계적인 재난대비 훈련(?)이 진정 헛된 것이었을까.

유조선과 LNG, LPG 수송선이 잘못되고 원자력 발전소에 고장이 생기고 교통과 통신이 마비되고 전기와 가스가 두절되었을 경우 그 불편과 경제적 손실은 엄청났을 것이며 그와같은 사고가 여기저기서 연쇄적으로 발생했다면 아마도 그것은 세계대전을 훨씬 능가하는 피해와 혼란을 야기했을 것이다.

문제의 발생이나 위험요소를 사전에 예측하고, 빈틈없고 어김없이 점검해서 재난이 없도록 조치하는 일이야 말로 안전 그것 한가지 말고 또 무엇을 기대하고 해야 한단 말인가.

새해 첫날 기자들로부터 ‘괜히 난리를 친 것 아니냐’는 등 집중공격을 받은 미국 Y2K 대책위원회 존 코스키넨 위원장의 일갈이 멋진 여운을 남겼다.

― 대비를 잘 한 것도 문제냐?

그렇다, 돈이 좀 많이 들어가서 걱정이지 대비 잘 한 것이 문제일수는 없다. 따라서 유비무환이야말로 만고의 진리이며 교훈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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