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재 한국수력원자력 발전본부장
최근 ‘이천광역자원회수시설’이 경기 이천시를 비롯해 광주·하남·여주·양평 등 경기도 동부권 5개 시군이 공동사용하기로 하고 40%의 공정률을 보이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혐오시설 중에 하나인 환경소각시설을 5개 시군이 광역으로 설치한 예로는 전국에서는 유일무이하다.

그 이면에는 3년에 걸쳐 반대측 주민의 요구를 수용해 협의기구를 구성, 선진소각시설 견학 등을 통해 신뢰구축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더라면 이들 5개 시군들이 쓰레기처리시설을 짓는 데에만 각각 2,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감수해야만 했다.

과거 국책사업은 정부가 먼저 결론을 내려놓고 지자체와 주민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경우가 많았다. 진행과정에서 이해관계자 그룹의 반발이 커지면 민심 달래기에 급급했고 물리적 충돌로 이어질 경우 강경하게 맞서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해결방식의 반복은 정부와 이해집단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오히려 해결을 지연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사회 갈등은 갈수록 그 양상이 복잡하고 장기화되고 있다. 세계화의 문이 활짝 열리고 변화와 개방의 흐름이 가속화되면서 사회 각층의 주체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자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는 어느 한 두 집단의 양보와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결과 정부가 추진하는 다양한 부문에서 이해당사자들의 충돌이 빈번해지고 있고 원자력 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그 가운데 하나다.

원자력발전에 의한 전력수요는 세계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바야흐로 화석연료의 가격상승과 최근 뜨거운 감자로 인식되고 있는 교토의정서의 발효는 원자력발전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에 따른 설비개선과 신규 원전건설이 이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특히 아시아 지역 개발도상국들의 설비증설이 두드러지며 향후 20년간 연평균 6.3% 증가가 예상된다.

정부도 지난해 11월 국가에너지위원회를 발족, 국내 에너지소비량의 35%를 자주 개발로 충당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에너지비전 2030’을 발표한 바 있다. 특히 원자력 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 필요성을 제기하고 산하 갈등관리 전문위원회에서 이를 본격 논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국제정세 변화에 대한 대응이라고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원전기술은 어떠한가. 지난 2월15일 ‘Nucleonics Week’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원전은 지난해 이용률 부문에서 원전운영 31개 국가 중 스위스와 핀란드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20기 운영원전들은 수년간 이용률에서 세계 상위의 운영실적을 나타내고 있는데 원자력 선진국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이러한 성과와 노력들이 평가절하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원자력에 대한 환경단체의 반감은 높기만 하고 원전주변지역 주민들이나 최근에 방폐장 부지로 확정된 경주 주민들과의 갈등은 한국 원전의 성적표를 무색하게 한다.

최근 발표된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에 의하면 2005년 한해 동안 전국에서 발생한 집회와 시위로 인한 모든 직·간접적 비용 등 사회적 비용을 모두 더할 경우 자그마치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의 1.5% 이상의 규모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같은 비용은 민주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불가피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우리 사회가 과도한 갈등과 분쟁으로 상당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점에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2005년 부안 방폐장 문제를 통해서도 확인한 바 있다.

갈등은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자연 생성되는 것으로 없애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닌 잘 ‘조정’해야 할 사회현상이다. 그러나 수많은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 대해 양보와 타협이 없다면 해답이 구해 질리는 만무하다. 정부는 갈등을 해결하는 장치를 적시에 구축하고 각 이해 당사자는 이에 적극 참여해 합리적 타협점을 찾아가는 성숙한 문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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