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실장
2006년 벽두에 발생한 우크라이나 가스공급 중단사태로 불거진 유럽의 가스공급안보에 대한 우려의 군불이 가스 수출국 카르텔 결성 가능성에 대한 보도로 그 기세를 더하는 듯하다. 석유공급 불안과 OPEC이라는 등식에 익숙한 우리네 정서상 그 내용을 떠나 용어 그 자체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가스 카르텔 결성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2001년 가스수출국 포럼이 처음 개최되었을 때 이미 제기된 것으로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년 8월에 러시아-알제리간의 가스부문 협력에 대한 양해각서가 체결되면서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알제리와 러시아에 대한 천연가스 수입의존도가 높은 유럽국가들로부터 우려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지난해 말에 NATO의 경제위원회에서 가스 카르텔 결성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보고서가 발간되면서 가스 카르텔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잦아졌다.

그러나 도하에서 개최된 가스수출국포럼이 가스 카르텔에 대한 언급이 없이 끝나자 대부분의 언론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가스 카르텔의 실현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점과 가스수출국 포럼이 수급과 가격에 있어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덧붙이며 숨을 고르는 분위기인 것 같다.

유럽의 가스산업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포럼의 회원국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들이 실제 무슨 논의를 하는지, 어떠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가스 카르텔에 대한 보도에 대해 푸념을 늘어 놓는다. 그는 또 “무성한 추측만 있을 뿐 알맹이가 없는 비공식적인 조직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고 있다. 그는 특히 목소리가 큰 베네수엘라나 이란은 가스를 수출하는 나라가 아님을 강조하며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기술경제 및 시장 유동성 측면에서의 석유와 가스간 차이, 개별 수출국들이 처한 시장환경의 차이, 호주 등 주요 수출국들의 미참여, OPEC 회원국이 아닌 러시아가 가스 카르텔을 주도할지에 대한 의문 등을 들면서 가스 카르텔 실현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다.

이는 적절한 지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수출국들이 세계의 수급상황에 대해 인식을 공유하고, 가격결정 등에 대해 상호간 의견을 같이 하고자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수입국의 입장에서 마냥 쳐다보고만 있을 수도 없다.

그래서인지 일부 언론에서는 특정지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자원개발에 대한 정부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비축시설도 갖추어야 하고 파이프라인가스의 도입을 서둘러야 하며 또한 충분한 물량 확보에 우선적으로 치중해야 한다는 주장들을 기사화하고 있다. 석유위기에 대한 대처방안을 이야기할 때 늘상 나오는 이야기들이지만 검토가 필요한 사안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어려운 시장환경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필요할 때다. 즉 ‘특정지역의 의존도를 줄이고, 비축시설을 갖추고 파이프라인 가스를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인 것인지’, ‘시장지향적 제도의 정착없이 단순히 정부지원의 확대만으로 얼마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 ‘애매한 계약관행에 따른 무임승차식 가스 소비를 계속 방치하면서 무작정 물량 확보에만 치중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등과 같은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직시하면서 서로가 노력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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