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기주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해 12월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폐막된 제13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Post-2012 기후변화 협상의 기본방향 및 일정을 담은 발리 로드맵이 채택됐다. 이 로드맵에 따라 오는 2012년 이후에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도국까지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는 방안이 향후 2년간 본격적으로 논의되게 됐다. 그런데 이번 발리회의에서 엿볼 수 있었던 특징 중의 하나는 그동안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 중심의 논의에서 벗어나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adaptation) 문제가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 됐다는 점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물론 기후변화 자체의 정도에 의해 결정되므로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 우선적인 과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기후변화로부터 받는 피해의 정도는 기후변화에 대해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따라서도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적응문제 또한 대단히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 없다.

이번 발리회의에서도 개도국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지원 방안의 하나로 개도국의 적응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적응기금 운영체계를 마련하기로 결정됐다. 적응문제는 우리나라로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근년에 우리나라의 기후가 다소 달라지고 있음은 모든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현상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과 긍정적인 영향을 다 같이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후변화의 부정적인 영향은 보다 빈번한 혹서, 폭설, 가뭄 등으로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최근 확정된 우리나라 제4차 기후변화종합대책에서도 부문별 적응대책 수립·시행, 지자체·산업체 대응 역량 강화 및 국민 캠페인 전개 등 적응분야가 감축 분야, 연구개발 분야와 더불어 3대 핵심 분야로 설정됐다.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 향상을 위해 한반도 기후변화 예측·감시체계 구축과 기후·대기환경 통합 예측모델의 개발을 통해 기후변화 예측능력을 높이고 기후변화 적응 마스터플랜 수립 등을 통해 종합적인 적응대책을 수립하며 정부와 지자체간의 정책협의 등을 통해 범사회적 역량을 강화한다는 것 등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적응문제는 주로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민간부문에서는 농수산업 등 기후변화의 영향을 직접 받는 부문을 제외하고는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해 소수 기업을 제외하고는 크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그렇지만 기후변화는 제조업에 대해서도 매우 다양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감축을 위한 규제 결과, 화석 에너지 가격이 상승할 것이기 때문에 제조업은 모두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철강, 비금속광물 등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산업의 경우에는 대단히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에너지 효율 향상이 향후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등장할 것임을 의미한다. 식품 산업의 경우에도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한 바이오 연료 생산 증대와 이에 따른 농산물 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생산비 상승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산업도 연비 향상이 대단히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보험과 같은 서비스산업도 기후변화로 인해 예상치 못한 손실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 쉽지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대기업들만이라도 장기경영 전략 수립 시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문제를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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