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단체가 바라본 고리 1호기
환경단체가 바라본 고리 1호기
  • 승인 2008.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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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연장은 ‘위험사회’의 초상
▲ 안병옥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지난 2007년 6월18일은 우리나라 핵발전의 역사를 열었던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30년 설계수명이 다하는 날이었다. 핵 발전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던 주민들과 환경단체 회원들은 ‘즐거운 장례식’이라는 반핵 퍼포먼스를 열어 이날을 축하했다. 무언가의 종말을 ‘즐겁다’고 선언하는 것이 점잖지 않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핵이 지니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즐거울 일이다. 왜냐하면 고리 1호기의 설계수명 만료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 핵발전 시대의 1장이 마감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리 1호기의 뒤를 이어 설계수명을 다한 핵발전소들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 즐거움은 사실 우려 속의 즐거움이었다. 왜냐하면 2005년에 이미 과학기술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고리 1호기의 수명연장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에 돌입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고리 1호기의 수명연장은 본래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설계수명 만료 핵발전소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에 관한 그 어떤 논의도 정부와 핵산업계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고리 1호기의 가동시한 만료가 목전에 임박하자 2005년 9월에야 수명연장과 관련한 법령을 부랴부랴 마련해 원자력법에 추가(원자력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했던 것이다.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라도 사업자가 희망하면 폐로하지 않고 과학기술부 승인을 얻어 계속운전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개정이었다.

코미디와 다를 바 없는 이 법은 설계수명이 지난 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위해서는 그 발전소의 안전성에 관한 ‘주기적 안전성 평가보고서’를 최소한 설계수명 만료 2~5년 사이에 제출해야만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고리 1호기의 경우에는 1년 전에만 제출하면 적법한 것으로 인정하겠다는 예외 규정이 만들어졌다. 고리 1호기 수명연장을 위한 특별 맞춤법이었던 셈이다. 이에 따라 2006년 6월 한수원은 과학기술부에 고리 1호기 수명연장을 위한 평가서를 제출했다.

더구나 가당치 않은 일은 한수원이 이 평가서 제출 일주일 전에야 주민들에게 주민설명회를 하겠다고 알렸다는 점이다. 주민들을 핵산업의 들러리로 취급하는 건 30년 전 박정희 정권이 주민에 대한 아무런 동의 절차 없이 고리 1호기 건설을 결정하고 시행한 그 때와 다를 바 없다.

부산대 사회조사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고리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62%가 고리 1호기의 수명연장을 반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한수원은 주민들에게 수명연장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2007년 12월6일 과학기술부는 ‘고리 1호기 수명연장이 안전하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그리고 12월7일 원자력위원회의 수명연장 승인이 떨어졌다. 미리 짜인 각본이 있었던 것처럼 일사천리의 진행이었다. 민주주의의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반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적 절차의 문제 외에 더 중대한 문제가 고리 1호기의 수명연장에는 존재한다. 바로 안전성 문제다.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을 위해서는 계속 운전에 관한 안전성 평가가 필요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권고는 △11개 분야, 54개 항목에 관한 ‘주기적 안전성 평가보고서’ △4개 분야 57개 항목에 관한 ‘주요기기 수명 평가보고서’ △1개 분야 6개 항목에 관한 ‘방사선 환경영향 평가보고서’의 심사서류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핵발전소 수명연장 판단의 기초자료가 되는 이들 보고서의 과학성과 객관성 유지 여부가 수명연장을 판단하는 관건이 된다.

문제는 이들 보고서의 과학성과 객관성을 누가 판단하는가이다.

1971년부터 운전되어 온 고리 1호기는 지난 30여년간 무려 124건의 고장과 사고를 냈다. 다른 핵 발전소에 비해 긴 운전역사가 있다지만 비율로 봐도 압도적인 고장율과 사고율을 보인다. 그럼에도 고리 1호기의 수명연장은 너무도 쉽게 결정됐다. 보고서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수원과 과학기술부는 ‘전문가들의 판단에 시비 말라’고 한다. 하지만 그 전문가들이 위험한 핵발전소 인근에서 30년을 살았고 앞으로도 살 수밖에 없는 주민들의 안전에 무슨 책임을 질 수 있기에 보고서 내용을 주민들게 알리지 않는 것인가. 핵이 위험한 것은 일단 대형사고가 나면 인근 주민뿐 아니라 광역단위의 직접적 피해, 국가 단위 이상의 간접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핵의 위험성을 알리고 탈핵운동을 펼치는 환경단체들에게도 당연히 보고서의 내용이 공개됐어야 한다. 역시 부산대 사회조사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주민들 69%가 정부의 정보공개 거부가 잘못이라고 보고 있다.

이른바 핵산업계 종사자들인 전문가들이 기술적 판단만으로 그것도 제대로 된 조사가 아니라 해외 사례를 여기저기서 모아 기운 짜깁기 데이터만으로 고리 1호기가 ‘안전’하며 ‘연장 운전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은 위험한 일이다.

고리 1호기의 수명연장은 단지 한 원자로의 가동기간이 길어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만큼 한국사회가 위험한 핵의 고리에 빨려들었다는 뜻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한국사회가 발전시킨 민주주의의 양식과 절차가 깨끗하게 무시됐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고리 1호기 수명 연장은 우리 사회가 폐쇄적 전문가 집단과 이익집단의 주도권에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것이다.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견제가 일상화되지 않는 사회는 위험사회이다. 사고는 늘 예기치 않게 일어나지만 따지고 보면 그 원인이 안전에 대한 과신과 허술한 감시체계에 있다는 사실이 최근 서해 유조선 사고로 드러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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