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소가 마련된 초등학교 교정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하얀 목련꽃 옆에서 어수선하게 스쳐지나가고 있는 봄을 잠시 되짚어 보며 박효관(朴孝寬)의 봄노래, 화원락부(花源樂府)의 한 대목을 떠올린다.


세월이 유수로다 어느덧에 또 봄일세 / 구포(舊圃)에 신채(新菜)나고 고목에 명화(名花)로다 / 아히야 새술 많이 두어라 새봄 놀이 하리라


조금만 눈길 돌려보면 사방천지가 온통 봄기색이 완연한 때이건만 선거철과 겹쳐 온갖 욕설과 비방, 폭로, 부정과 불법,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스피커 소리에 아쉽게도 그 좋은 봄을 거의 다 망쳐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 실망은 이르다. 채 가지 않은 봄이 도처에 남아 있고 세상을 그토록 시끄럽고 혼탁하게 하던 선거도 이젠 끝났으니 우울하고 답답했던 몸과 마음을 따뜻한 봄바람으로 시원스럽게 씻어내고 새로운 기분으로 상쾌하게 단장해야겠다.


보리 잎 포릇포릇 종달새 종알종알 / 나물 캐던 큰아기도 바구니 던져두고 / 따뜻한 언덕 머리에 콧노래만 잦었다 // 별이 솔솔 스며들어 옷이 도리어 주체스럽다 / 바람은 한결 가볍고 구름은 동실동실


가람 이병기 선생이 읊었듯이 지금 보리잎이 포릇포릇 할런지 어떨런지 궁금하지만 어쨌든 세상이야 선거판 욕설로 시끄럽거나 말거나 이봄도 소생의 계절답게 길고도 추운 겨우내 준비했던 꽃들을 피워놓고 어느 봄이나 다름없이 유혹이 여간 아니다.

이런 날이면 을시년스럽기 짝이 없는 실내에만 갇혀 있기는 어른이나 애나 마찬가지로 어려워 하루가 아니면 다만 반나절이라도 하던 일 잠시 멈추고 상춘(賞春)대열에 끼어 봄도 마냥 부질없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태백도 봄을 감상하기 위해 복숭아꽃 만발한 계곡을 찾아가 별천지라 노래했다지만 우리 조상들도 봄 정취 즐기며 시로 노래하는데는 그 누구보다도 출중해 봄을 읊은 수많은 걸작이 값진 유산으로 남아있다.

각설하고, 그와같은 봄을 상징하는 비유는 수도 없이 많다.

없이 살던 옛날 어느 한시절엔 봄을 춘궁기라 해서 배고픔의 계절이라 했었는가하면 봄을 싱싱한 젊음의 계절이라 부르기도 하고 사랑의 계절, 만남과 결합, 결혼의 계절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에서도 봄은 하늘과 땅이 서로 오가고 음과 양이 교접하는 계절로 여겼다한다.

결혼하는 젊은이들이 봄에 많은 까닭도 아마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짐작하지만 그런 중에도 봄이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며 아울러 춘하추동 사계절중 제일 먼저 꼽는 계절이므로 흔히들 시초, 시작의 의미를 두는 사람들도 있다.

어른들이 집안 곳곳에 써 붙혀 놓고 때를 놓치지 않는 교훈을 삼게 하셨던 ‘一年之計在於春’이란 글귀가 새로운 것도 바로 이때쯤이다.

어느덧 4월이고 보니 한해 살림을 작정하고 얘기할 시기로는 좀 늦은듯하지만 금년 봄은 유독 이일 저일 어수선했던 일들이 많아 봄을 까먹고 지낸 사람들이 적지 않을 듯 싶어 선거분위기고 뭐고 이젠 다 털어버리고 다시 마음의 고삐를 다잡고 가다듬자는 얘기다.

잠시 미뤘던 일, 미쳐 못했던 일, 잊고 있던 일 등등을 챙겨 꼼꼼히 점검하는 시간을 갖어보자는 얘기다.


보리이삭 패어나니 꾀꼬리 소리난다 / 농사도 한창이요 잠농도 방장이라 / 남녀노소 골몰하여 집에 있을 틈이 없어 / 적막한 대사립을 녹음에 닫았도다


농가월령가 사월령에서처럼 한가롭게 들어앉아 있을 틈이 없는 봄, 그런 4월도 어느새 반절에 다다르고 보니 어영부영 그냥 지나가는 봄이 더욱 아쉽고 초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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