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기주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정부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추가경정예산을 마련해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에 대한 손실보조금으로 1조40억원을 배정하기로 결정했다. 이 두 에너지 회사의 경우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 급등에 따른 생산원가 상승으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전기요금의 경우 정부 보조금 없이는 올해 하반기까지 18% 가량의 인상 요인이 발생하는 것으로 정부는 추정하고 있다.

전기 및 가스 요금 인상은 그렇지 않아도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서민중산층의 경제적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요금 인상대신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이같은 정부의 대책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 대통령 당선 후 처음으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물가안정과 국내기업들의 원가 경쟁력 확보를 이유로 전력요금,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 억제를 지시한 것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무려 97%나 되고 있어 이러한 국제 자원 가격 상승은 빠른 물가상승으로 이어져 인플레를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내 소비자 물가는 상승률이 지난 9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3%대 이하의 비교적 안정적인 추세를 나타냈으나 지난해 10월부터는 유가상승 효과가 점차 본격화되면서 높아지기 시작하여 올해 여름에는 전년비 6% 가까운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생산자 물가의 경우에는 소비자 물가보다 더 빠른 상승세를 보여 최근에는 10% 이상의 상승률 나타내고 있다.

인플레가 본격화될 경우 실물자산 소유자의 부는 증대되는 반면 소득이 일정한 계층의 실질소득과 화폐자산의 가치는 감소함으로써 소득과 부의 재분배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저축이 감소하고 과소비가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자원 가격 상승에 의한 이른바 비용-상승(cost-push) 형태의 인플레가 우리 경제에 초래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우리경제의 높은 수출의존도와 자원의 해외의존도는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시 우리의 수출경쟁력이 경쟁대상국들보다 더 악화되는 원인이 돼 우리 경제에 대단히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우리나라의 에너지가격 정책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지속적인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산업부문에 낮은 가격으로 에너지를 공급함과 아울러 서민층의 난방비 가계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정부 주도하여 에너지부문을 통제함과 아울러 에너지 세제를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향으로 운영해 왔다. 석유제품별로 부과되는 각종 세금을 제품가격으로 나눈 제세부담금 비율을 보면 휘발유가 60% 정도인데 비해 산업용으로 주로 사용되는 B-C유는 13%, 도시가스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난 1997년부터 2007년까지의 10년 동안 국제유가는 304%% 상승했으며 석유류의 국내 도입단가는 원유 241%, LNG 162%, 유연탄(연료탄)이 46% 각각 상승했다. 같은 기간 중 국내 에너지 소비자 가격은 무연휘발유가 82%, B-C유와 도시가스(산업용)가 각각 147% 및 132% 상승했으며 전력요금은 19% 상승에 그침으로써 에너지 생산에 원료로 투입되는 원유와 LNG 및 유연탄의 도입 가격의 상승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특히 전력요금은 사실상 거의 동결되다시피 한 셈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원별 발전량 비중을 보면 2007년 기준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원전 비중이 36%, 생산 단가 상승률이 석유와 가스에 비해 낮은 석탄화력 비중이 38%인데 비해 석유류와 가스 발전 비중은 각각 5% 및 19%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력요금은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도 10년 동안 19%라는 전력요금 상승률은 사실상 거의 동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에너지 가격 안정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경제안정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조정된 에너지 가격안정, 시장 가격을 반영하지 못하는 왜곡된 가격 구조는 여러 가지 많은 부작용과 문제점을 초래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한전과 가스공사에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은 결국 국민의 세금에서 충당되는 것이므로 문제를 해결하는 본원적 방법이 되지를 못한다. 국민 정서는 자신이 납부한 세금으로 적자를 충당해주는 데 대해 상당한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

보다 더 큰 문제는 전력 및 가스 요금 억제가 에너지 소비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이는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저탄소 사회와 녹색성장의 구현이라는 국가적 목표 달성에도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 소비를 줄여 저탄소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소비 효율을 높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전력·가스요금 억제는 E 소비효율 떨어뜨려

모든 경제정책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소비 효율을 높이기 위한 최선의 정책수단은 에너지 가격 및 소비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가 아니라 시장경제 수단에 의존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규제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는 국제유가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자 지난 4월 서둘러 마련한 ‘에너지절감 대책’의 건물 냉난방 온도제한 계획을 들 수 있다.

동 대책에서 정부는 오는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모든 건물의 여름철 냉방온도 하한과 겨울철 난방온도 상한을 각각 26℃와 20℃로 제한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냉난방 온도 제한은 그동안 공공기관에만 적용돼 왔으나 연내에 에너지이용합리화법을 고쳐 병원과 양로원 등 특수 시설을 뺀 모든 건물로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즉각 커다란 사회적 반발을 초래하였고 실제로 강제로 추진할 방법이 없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왜곡된 에너지 가격 체계를 바로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IEA도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에너지 생산 비용과 환경오염 등 에너지 소비에 따른 외부불경제를 올바로 반영하지 않는 에너지 가격 체계로는 결코 에너지 소비를 효과적으로 줄이기가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의 왜곡은 가격이 억제된 에너지 소비 증대를 촉진한다는 점은 그동안의 에너지 소비구조 변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997~2007년 기간 중 에너지원별 최종 소비 구조를 보면 석유류는 13%P 가량 감소한 반면 도시가스와 전력 비중은 각각 5%P 및 4.4%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들의 경우에는 우리와 달리 에너지원간에 소비비중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곧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 구조가 선진국에 비해 가스와 전력 소비가 대단히 큰 폭으로 증가했음을 시사한다.

가스와 전기는 사용이 편리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소득 수준 상승과 함께 다른 에너지를 대체하는 경향이 있고 석유 및 석탄에 비해 청정한 에너지라는 특성으로 인해 환경규제가 강화는 그 소비를 촉진한다.

그러나 전기의 소비 증가는가 전력 요금이 억제돼 왔다는 데도 크게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1997~2007년 중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29% 상승해 미국의 40%, 영국의 64%에 비해 상승률이 크게 낮았다. 더욱이 가정용 전기요금 같은 기간 중 미국이 26%, 영국이 43% 각각 상승한 데 비해 한국은 3%의 지극히 낮은 상승에 그쳤다.

전력 요금이 다른 에너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다 보니 당연히 전력 사용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가정에서도 아무리 절전을 외쳐 보아도 전기요금 부담이 커지지 않는 한 소비저감을 크게 기대하기가 어렵다.

가스의 경우에도 가격이 원가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는 한 가격이 많이 오른 B-C유, 경유 또는 LPG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LNG의 경우에는 수급불균형이 원유보다 훨씬 크다는 점 또한 커다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인하대 박희천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원유와 석유제품은 필요한 경우 비싼 가격으로 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20년간 장기계약으로 도입되고 있는 LNG의 경우 수급불균형 해결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LNG는 현재 세계적으로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한 상태다. 새로운 가스전을 발견하기도 어렵지만 LNG 현물시장 가격은 계절에 따라서는 장기계약 가격의 5배나 될 수 있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가스 소비 증가는 국가적으로도 매우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게 된다.

정부는 지난 8월 확정한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에서 국가 에너지 효율을 오는 2030년까지 46%의 대폭적인 개선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한 추진전략 중 하나는 원가주의 요금체제를 통한 가격 메커니즘의 효율적 작용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는 정부도 에너지 가격의 합리화가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필수조건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우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는 경제에 더 이상의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서 전력과 가스 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저탄소·고효율 사회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에너지 가격 체계의 합리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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