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의 관심을 끌며 시험 방송중에 있는 인터넷 방송 ENN-TV에 올릴 상품정보를 찍으러 가는 촬영팀을 따라 나섰다가 벌써 이렇게 찌는가 싶을만큼 어찌나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지 혼줄이 났다.

그래도 뜨거운 조명 불빛 밑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닦아대며 신나게 주고받던 얘기는 냉면이며 삼계탕이며 한여름 더위를 식혀주고 몸보신 해 줄 음식얘기들이었지만 뭐니뭐니해도 그중에서 으뜸은 역시 보신탕이었다.

이제 겨우 하지(夏至)가 지났을 뿐, 복(伏)날이 아직 멀었지만 내친김에 보신탕얘기로나마 때이른 더위, 장마를 잠시 잊어볼까 싶다.

먼저, 즐기는 사람이거나 싫어하는 사람이거나 이 음식을 왜 복날 많이 찾아 즐기는 것인지 한번쯤 의문을 품어 보았음직해 자료를 찾아 뒤적이다 민속학 관련 서적에 인용된 어느 한의학자의 의견을 만나볼 수 있었다.

사계절중에 여름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그 자체가 불(火)인데 그런중에도 한여름 더위가 최고로 기승을 부리는 삼복(三伏)은 경일(庚日)이라고 해서 화기가 그 어느때 보다도 왕성할 뿐 아니라 쇠(金)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복날은 불이 쇠를 녹이는 형국인 화극금(火克金)이 되므로 우리 몸에 쇠를 보충하기 위해 쇠의 기운을 지니고 있는 개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중 보신탕에는 영양학적인 고려도 있었음은 익히 짐작했던 일이지만 이와같은 동양의학적인 깊은 뜻 또한 있었고 한가지 더 보태 한창 더울 때 뜨거운 음식을 들게 해 이른바 이열치열(以熱治熱)하게 한 것도 조상님들의 사려깊은 처사였음을 더 알게 한다.

복중에 보신탕을 즐긴데에는 계절적으로도 또 특별한 사연과 까닭이 있다.

뙤약볕이 사정없이 쏟아지는 한여름, 허구헌날 들판에 엎으러져 진종일 논매고 밭매고 풀뽑고 꼴베다 보면 뱃가죽이 등짝에 달라붙을 정도로 허기지고 기운지쳐 항우장사같은 머슴도 육고기로의 영양보충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바로 삼복지경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잘아다시피 채식이 기본이었던 우리네 옛날 식생활 습관이고 보니 동물성 단백질 구경하기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을 것이며, 있는 것이라고는 겨우 소, 닭, 돼지가 고작이었을 터인데 농경사회에서 소를 잡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나랏법으로 도축금지령에다 병들어 죽은 소마저 허가없이 잡다가는 치도곤이가 십상이었을 때이니 누가 감히 영양보충하자고 농사에 없어서는 안될, 가족같이 귀중한 소를 때려 잡았겠는가.

돼지도 닭도 귀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나마 겨울되면 꿩이나 토끼, 멧돼지라도 있지만 숲이 우거진 한여름이면 그마저 어렵고 보니 여름날 할일없이 동구밖을 어슬렁대는 누렁이가 온전했을리 만무였다는 것 쯤은 불문가지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견공(犬公)이라고 마음놓고 취할 수 있을 만큼 넉넉했던 것도 아니다.

어느 집에서 강아지를 낳으면 몇집이 나누어 잘 키워 이번에는 뉘집 개, 다음에는 뉘집 개 이런식으로 차례를 정해놓고 요리를 했다.

기르기는 한집에서 기르지만 먹기는 온동네가 다함께 먹었다.

정자나무 밑에 큰 가마솥 걸어놓고 장국을 끓여 집단 취식, 나눔의 잔치를 열어 한여름 헛헛증을 달래고 영양보충을 꾀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민속학자는 보신탕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협동음식이 아니었겠느냐고도 한다.

이 음식을 통해 온 마을 남녀노소가 농사에 지친 심신을 달래며 공동체의식을 다져 왔던 것이다.

각설하고, 공급원도, 충전원도 검사원도 점검원도 모두 이 협동의 음식으로 지쳐가는 몸도 돌보고 공동체의식도 다져, 성큼 다가선 장마에 대비하는 것도 안전을 위해 무익하지만은 않을 듯 한데….

동료들과 마당에 잡초를 뽑고 그 잔디밭에 둘러앉아 소주 곁들여 나누던 보신탕 맛과 우의를 다지던 때가 엊그제 같고, 그때 그 석양이 더욱 눈에 선한 초여름이라 해본 잡담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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