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급등할 때마다 우리나라엔 초비상이 걸린다. 석유소비량은 하루 2백10만 배럴을 넘어 세계 6위에다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세계 4위의 수입국으로 대외 석유의존도는 세계 최고인 데 반해, 유가급등 및 석유위기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대처능력은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고 90년 걸프전 때를 비롯해 유가가 급등할 때마다 초비상을 걸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다. 유가가 진정되기만을 고대할 뿐이다. 타격을 당해 초래되는 국가적 손실은 돌이킬 수 없다.

이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된 이유는 유가가 급등하면 타격을 당하며 초비상 대응하다가도 유가가 다소 진정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유가는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등 무책임하게 낙관적으로 예측하며, 소비량에 비례해 석유안보태세를 강화해야 하는 필수적 책무를 소홀히 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이같은 후진적 대응을 되풀이 할 수는 없다. 위기가 닥치면 미봉책이나 쓰며 당할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는 선진국 진입은 물론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세계 6위의 석유소비국이며 4위의 석유수입국으로 머잖아 선진국 진입을 실현시키려는 나라답게 유가가 급등하거나 강도 높은 석유위기가 닥치더라도 충격을 흡수하며 건재할 수 있도록 석유안보태세를 속히 강화해야 한다.


산자부 대책의 문제점

이런데도 석유위기時 국난을 막을 확실한 대비책이 없다. 산업자원부의 석유안보태세 강화대책은 치명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대로는 필요한 수준으로 강화할 수 없게 된다.

산자부의 강화대책의 핵심은 석유 소비절약과 대체에너지 개발·보급으로 석유의존도를 감축하고 정부석유비축을 2006년까지 60일분으로 제고한다는 것이다.

소비절약 캠페인을 펼치고 산업구조를 개편해서 석유소비를 줄여 석유의존도를 낮추어야 한다는 데 대해선 전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석유소비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체에너지 역시 석유를 대체하는 데는 아직 한계가 있다. 소비절약과 대체에너지 보급을 통해 석유소비를 10% 줄이기도 쉽지 않다. 석유는 우리의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다. 20%를 줄인다 해도 나머지 80%는 필수량이다. 유가가 급등하거나 강도 높은 석유위기가 닥치더라도 충격을 흡수해서 국난을 막으면서 필수량의 석유를 확보해나갈 수 있는 수준으로 석유안보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그렇게 강화할 수 있는 대책의 핵심은 석유비축과 자급률(자주개발공급률)을 제고하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석유비축을 90일분 이상 자급률을 최소 15% 대부분 30%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다.

1996년에 통상산업부가 발표한 강화대책의 주요내용을 보면, (1) 정부석유비축을 2005년까지 60일분으로 제고하고, (2) 자급률을 2010년 10% 목표를 향해 제고해나가며 (3) 유가완충자금을 1999년까지 1조2천억원 규모로 확충한다는 것이다. 4년이 지난 지금 실행된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특히 자급률은 치명적으로 취약한 수준인 1.5%선에서 맴돌고 있는 등 석유안보태세는 강화되지 못하고 취약한 상태 그대로이다.

비축은 석유위기시 비상유를 공급하기 위한 초단기적 대처수단이다. 비축에는 시설, 비축유, 증발손실, 관리 등에 많은 자금이 들고 고도의 위험도 따르므로 선진국들도 높아야 1백일분 정도로 국한하고 있다.

자급률은 비축유로는 대처할 수 없는 공급난 및 유가급등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대처수단이다.

자급률에 속하는 석유는 비축에 비해 수십분의 일 수준의 비용으로 확보될 수 있으므로 수백일분 높게는 수년분의 석유를 확보할 수 있으며, 석유위기時 공급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석유급등만큼 이익을 얻게 돼 위기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자급률이 높은 만큼 평상시에도 석유를 경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돼 무역수지를 향상시키고 국가경제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되며, 더불어 산유국 및 국제석유회사들과의 교섭력도 강화돼 석유문제들을 보다 용이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유가가 폭등하더라도 미국은 국가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 이유가 바로 미국의 석유회사들이 세계 도처에서 석유개발을 펼치고 있어 거의 100%에 이르는 자급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위 사실을 인식하고 지난 20여년간 비축과 자급률 목표를 책정하고 수조원을 투입해왔다. 그 결과 정부비축은 29일분까지 제고됐고 민간비축과 합치면 64일분에 달해 비축 부분에선 상당한 석유위기 대처능력이 확보됐다. 하지만 아직도 치명적으로 취약한 부분은 92년 이래 1.5%선에서 맴돌고 있는 자급률이다. 이렇게 낮은 자급률을 지닌 나라는 고도산업국들 가운데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 30% 이상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산자부의 강화대책에는 자급률을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책정된 2010년 10% 목표를 향해 제고시킬 대책이 없다.

이처럼 낮은 자급률로는 산자부의 계획대로 수조원의 소요예산을 마련해서 정부비축을 2006년까지 60일분으로 제고하더라도 대처능력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비축과 자급률의 균형을 이루어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 비축은 비상유 공급을 위한 초단기적 대처수단이다. 비축유로는 대처할 수 없는 공급난 및 유가급등의 충격은 자급률을 높여 흡수해야 한다.


방치하면 국난 초래

정부도 위 사실을 인식하고 10여년전 자급률 목표를 2001년 까지 20%로 책정했다. 하지만 예산 등 어려움으로 축소를 거듭해와 현재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2010년까지 10%로 축소해 놓았다. 이는 최소 수준의 목표이다. 석유안보태세를 필요한 수준으로 강화하기 위해 기필코 달성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정부는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 왔다.

정부지원금을 점진적으로 확충해왔는데도 자급률은 제고되지 못하고 1992년 이래 1.5%선에서 맴돌고 있고, 이에 더하여 최소 수준으로 축소된 2010년 10%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지원금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는 석유공사를 비롯한 업계의 요구대로 확충할 수 없어 달성계획조차 세울 수 없는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왔다. 그렇다고 덮거나 피하며 방치하다가는 엄청난 국난을 초래할 수 있다. 정면 대응하며 해결해야 한다.

대처 능력을 높이면 석유위기가 닥치더라도 충격을 흡수하며 건재할 수 있다.


융자제도 잘못으로 야기

이상의 심각한 어려움은 막대한 소요예산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야기된 것이라는 것이 산자부와 석유공사의 입장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상의 심각한 어려움은 석유개발융자제도(산자부 고시 제2000-26호)가 잘못돼 야기된 것이며, 따라서 간단한 제도개선으로 해결될 수 있다.

현행 융자제도의 치명적인 허점은 개발원유확보율(개발원유 확보량/투자비)을 묻지 않은 채 투자비만을 기준으로 정부자금을 지원하는 데 있다. 그에 따라 개발원유확보율은 등한시되고 사업자의 편익만을 우선하는 고비용방식(개발원유확보율이 낮은 방식)으로 유도돼 자급률은 제대로 제고되지 못한 채 정부지원금이 헛되이 쓰여져온 것이다.

그 결과, 자급률은 92년 이래 1.5%선에서 맴돌게 돼 석유안보태세는 취약한 지경에 처하게 됐고 우리 석유개발산업도 국제경쟁력있는 운영기술력을 갖출 의지도 없이 非운영권자 수준에 안주하게 되었으며,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책정된 2010년 10% 자급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실행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게 되었다.


현행 융자제도… 어려움 악화

이상과 같이 초래된 국가적 손실에 더하여, 사업자들도 지난 10여년간 참여했던 대부분의 탐사사업들을 실패로 종료한 뼈아픈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의 사업방식으로는 손실 외에 얻을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됐다. 그에 더해 IMF위기로 투자여력도 심히 약화돼 신규사업에 대한 참여를 거의 중단, 금년 상반기 중 단 1건의 신규사업에 참여하는 등 극도의 침체국면에 빠져 있다.

산자부는 석유개발사업을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융자비율에 있어 석유공사에게는 투자비 전액까지 그리고 석유정제업자에게는 민간기업 보다 20% 우대지원 하도록 지난 3월15일자로 해당고시를 개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민간기업들은 불만을 표해 오다가 최근 석유협회를 통해 민간기업에게도 10% 상향조정해 줄 것을 산자부에 건의한 바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같은 융자비율 우대 및 상향조정은 어려움을 악화시킬 뿐이다.

정부지원금을 대폭 확충할 수 없는 여건하에서 현행 융자제도를 계속해 고비용방식으로 유도하면서 당위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들을 들어 융자비율을 우대 및 상향조정해 주면 보다 더 고비용방식으로 유도돼 정부지원금은 보다 더 헛되이 쓰여지게 돼 자급률은 1992년 이래 1.5%선에서 맴돌고 있는 추세를 벗어나기 더욱 어렵게 된다.


개발원유확보율 극대화

IMF위기 이래 금융 등 많은 부문들을 치유하는 데 막대한 정부자금이 수혈되고 있다. 많은 부문들이 지원금 확충을 갈망하고 있다. 원하는 대로 확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지난 10여년 석유공사를 비롯한 업계가 거듭 건의해온 대로 석유비축 및 개발사업에 대해 정부지원금을 대폭 확충하기란 더욱 어려워졌고 민간부문의 투자여력도 심히 약화돼 있다.

이와 같은 정부의 재정여건을 직시할 때 더욱 명백해진 것은, 지금까지 전개돼온 고비용방식을 중단하고 저비용방식으로 전환하는 길뿐이라는 사실이다. 즉 개발원유확보율은 등한시되며 지원금이 헛되이 쓰여져온 지금까지의 고비용방식(개발원유확보율이 낮은 방식)을 중단하고, 지원금의 효용도를 극대화해서 자급률을 수배 더 효과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저비용방식(개발원유확보율이 높은 방식)으로 전환하는 길뿐이라는 사실이다. 저비용방식으로 전환하면 개발원유확보율을 5배 이상 제고할 수 있게 된다.

사업자가 마음만 먹으면 큰 어려움 없이 저비용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 사업자란 기본적으로 주어진 여건하에서 자신의 편익 극대화를 최우선하게 되는데, 현행 융자제도가 고비용방식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사업자도 자신의 편익을 희생하며 저비용방식으로 전환하려하지 않는 것이다. 저비용방식에서는 고비용방식에 비해 사업자의 편익이 다소 취약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저비용방식으로의 전환을 가능케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석유개발융자제도를 개발원유확보율 극대화방향으로 개선하는 길이다.


이시우

패트로 코리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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