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경천 코텍엔지니어링 전무
에너지의 97%를 수입하고 여기에 GNP(1조달러)의 10%(1,000억달러)를 쏟아 붓는 나라가 지구상에 대한민국 말고 또 있을까? 우리나라도 필요 에너지의 50% 정도 자체 생산이 가능하다면 세계적인 부국이 되지 않았을까?

녹색성장의 물결이 지구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녹색성장이라는 거센 파도는 우리를 단기간에 선진국으로 끌어 올릴 수도 있고 세계경제의 변방으로 몰아낼 수도 있다.

그런데 녹색성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너무 안이한 것은 아닌가?

유럽인들은 신재생에너지의 연구, 개발, 이용을 선택이 아닌 의무로 인식하고 있다. 어차피 시간이 가면 화석연료는 고갈될 것이고 온실가스의 감축을 미래의 문제가 아닌 오늘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화석연료가 바닥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신재생에너지로 교체가 가능한 부분부터 빨리빨리 바꿔나가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우리나라도 정책의 방향과 추진 강도는 선진국도 부러워할 정도로 탄력을 받고 있으며 나름대로 정리가 되어 가고 있는 실정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효율성과 현실성에 있다는 판단이다.

일례로 그린홈 100만호 사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올해 에너지관리공단은 그린홈 100만호사업 참여기업으로 지열전문기업 37개사를 선정했고 업체당 20개 미만의 물량을 할당했다. 예정대로라면 600여세대에 지열시스템이 도입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주택 구성은 아파트가 2/3를 차지하고 있으며 매년 40만 가구의 신축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다.

아파트는 통상 500세대 내외의 규모로 건설되고 있다. 따라서 올해 그린홈 100만호사업 중 지열부문에서는 아파트 1개 단지에 지열이 보급되는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신축 아파트의 가구수대비 0.1%가 조금 넘는 정도다.

▲ 지열로 냉난방이 가능토록 건축된 스위스의 공동주택.
■ 선진국 시장현황

세계 지열시장은 2000년대 중반부터 EU가 1위로 부상했고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 중국이 2위를 차지하면서 미국이 3위로 밀려나는 상황을 맞고 있다.

EU는 스웨덴을 필두로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핀란드, 프랑스 등의 국가에서 지열이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단독주택을 넘어 아파트단지의 난방은 물론 소규모 지역난방까지 지열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스위스의 Friotherm사는 이미 3,000RT급 히트펌프 개발에 성공, 상업 가동 중에 있으며 독일의 Viessmann, Danfos, Bosch와 같은 회사들은 M&A를 통해 중소 지열전문기업들을 수직 계열화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 비약적인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전세계 지열관련 회사들이 모두 집결한 가운데 정부의 강력한 보급정책에 힘입어 전대미문의 놀라운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수천 RT급 프로젝트는 당연시 여겨지고 있으며 상하이 엑스포 전시장의 모든 냉난방이 지열시스템으로 가동되고 있다. 단기간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여러가지 부작용이 우려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나 조만간 세계적인 지열강국으로 우뚝 설 것임은 분명하다.

미국은 국제유가의 하향 안정기간에 지열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면서 부동의 1위 자리를 EU에 내준데 이어 중국에까지 밀려난 것을 매우 아쉽게 생각하면서 2008년 강력한 정부지원책 발표를 통해 반전에 나서고 있다.

미국에서는 1년에 3,000개 정도의 학교가 신축 또는 개보수공사를 하는데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경우 지열냉난방시스템을 설치하고 있다. 이는 어린 학생시절부터 신재생에너지 환경에서 교육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정책적 판단에 기인한다.

■ 정부 정책 고찰

정부는 2004년 ‘신재생에너지 개발, 이용, 보급 촉진법’을 제정한 이후 공공의무화사업, 보급보조사업, 그린홈 100만호사업, 시설원예 지열보급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지열 선진국에서조차 부러워하는 정책들이다.

그러나 일부 제도적 미비점으로 인해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먼저 지열의 범위에 있어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지구의 표면을 이루는 토사, 암반, 하천수, 해수, 지하수, 지표수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다. 현재 하천수나 지표수는 지열로 분류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대형 하천을 따라 도시들이 밀집해 있다. 따라서 지열의 발전에 하천수나 해수가 차지할 비중이 어떤 나라보다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천수나 지표수의 이용이 불가능해 지열산업발전에 커다란 장애요인 되고 있다. 정부는 지열의 범위를 명확하고 현실적이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지열전문기업제도도 문제가 많다.

2009년 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지열시장 규모는 2,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1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기업 20여개가 담당할 수 있는 규모다.

그런데 지열전문기업의 수는 1,450개에 이른다. 진입장벽이 지나치게 낮은 것이 그 이유다. 전문기업의 난립은 출혈경쟁, 저가수주, 불법하도급, 업체도산의 악순환을 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지열사업의 씨를 뿌린 1세대 지열업체들은 대부분 도산했거나 지열사업을 포기했다.

모든 시장이 초기에는 보호와 육성을 필요로 한다. 적절한 규제를 통해 우수업체를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무한경쟁 구도 하에서는 우수기업의 성장이 불가능하다. 지열산업이 적정 수준으로 성장할 때까지 우수기업을 집중 육성해 선진국 수준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그린홈 100만호사업은 단독주택을 대상으로 세대당 5RT를 기준으로 한다. 그린홈 사업에도 여러 문제점이 산재해 있다. 문제점을 요약하면 △설계 및 시공 기준 부재 △공사 규모가 작아 대형공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가인 공사비 △공사 규모가 작아 우수기업보다는 실적 확보가 급한 영세기업 선호 △지열전문기업의 전국적 네트워크가 부족한 상황에서 브로커 개입 △설계, 시공, 감리 전문가의 검증 없이 업자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 △공사의 품질 및 성능평가 기준 부재 △노력대비 결과 미미 등이다.

■ 지열산업 발전방안은

지열냉난방시설공사는 열원설비공사의 일종으로 건설업의 영역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건설강국으로 연간 40만호 정도의 아파트를 건설하고 있다. 모든 아파트에는 난방설비는 필수로, 냉방설비는 선택적으로 설치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아파트공사는 시행사, 설계사, 건설사, 감리사 조직을 갖추고 있으며 품질관리가 철저히 이뤄지고 있다.

대부분의 아파트는 도로, 인도, 녹지 등 지열 시공에 필요한 부지를 보유하고 있어 지열을 보급할 수 있는 근간이 마련돼 있다.

아파트 1세대당 현재의 기준으로는 3RT 정도의 부하가 걸린다. 신축 아파트의 100%를 지열로 시공하면 연간 120만RT 정도의 시장이 창출되며 이를 공사비로 환산하면 5조원대의 신규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아파트는 공사규모, 인력구성, 사후관리 등 모든 측면에서 단독주택보다 지열적용이 월등히 유리하며 공사비도 대폭 낮출 수 있다.

많은 아파트에 지역난방이 공급되고 있으나 지역난방시설을 위한 입지선정, 민원문제, 도시미관문제 등 갈수록 공사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다. 지역난방은 발전소 건설비용과 더불어 공급관로 공사에도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아파트 난방을 지열로 대체할 경우 국가적으로 공급관로 건설비용의 절감이 예상되며 소형 열공급회사를 양산할 것으로 기대된다. 에너지를 절감하고 환경을 보전하며 인력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예상된다.

정부는 지열산업육성 10개년 계획을 수립해 매년 5% 또는 10%씩 단계적으로 아파트 신축에 지열 적용 비율을 높여 나감으로써 지열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 수입에너지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함과 동시에 지열의 산업화를 조기에 이룰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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