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이야기중의 하나가 국가연구개발사업 참여자들의 부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감사원을 통해 또는 국회를 통해 지적되고 이때마다 연구관리 규정은 강화되고 연구원들은 위축된다.

그러나 규정을 강화한다고 해서 비리가 없어지는 것일까? 역사를 거슬러 보더라도 법이 강화돼서 사회가 맑아졌다는 증거는 없다.

사안에 따라 가중처벌법까지 만들어 범죄를 막아보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범죄는 줄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연구개발과 관련된 도덕적 해이를 규정으로 막을 수 있을지 의심이 간다.

오히려 규정이 강화되면 연구원들이 행정처리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되고 결국 연구에 몰두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연구의 핵심은 창의성인데 얽어매는 규정들이 창의성을 저해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반범죄의 예방책에서도 얘기된 바와 같이 규범을 강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규범준수의식을 높이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필자가 유학 할 당시에 IBM에서 발주한 연구개발과제를 수행한 일이 있었다. 그 때 놀라웠던 기억은 과제책임자인 교수님이 IBM에 제출했던 연구개발계획서가 1쪽짜리 이었다는 것이었다. 과제의 목적과 연구결과물이 기술돼 있는 정도였다. 이런 상황을 지금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면 너무 아쉬움이 많다. 필자가 한국전력연구원에 근무하던 시절 과제수행비용을 표준화 해보려고 애써본 일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어리석은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과제비는 표준화 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과제비는 결국 그 결과물로 판단돼야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창조적 결과물을 만들어 내도록 여건을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고 이것이 연구관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연구개발은 ‘Fast Follower’였다. 남이 해놓은 것을 따라잡는 것이 연구의 핵심이었기에 결과물을 알고 달려가는 비교적 쉬운 그래서 성공확률이 높은 연구였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는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는 연구가 점증하고 있다. 길을 만들면서 연구해야하는 ‘First Mover’로 전환해야 한다. 창의성만이 연구개발을 견인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실패의 위험을 끌어안아야만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실패의 위험을 끌어안으려면 제도가 이를 뒷받침 해줘야한다. 연구의 수준이 높아지는 만큼 연구관리도 그 수준을 높여 가야한다는 말이다. 

다행인 것은 요즈음 성실실패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연구관리 관련 규정에 반영해 평가위원회에서 판단하는 수준이지만 근본적으로 연구관리와 관련된 관리감독자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의 연구관리규정은 신뢰를 바탕으로 출발했다고 보기 어렵다. 가끔씩 일부 연구자들의 부정이 발견되지만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양심적으로 최선을 다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연구관리는 이런 대다수의 양심적인 연구자들이 어떻게 하면 최고의 창의력을 발현할 수 있을까 하는데 집중돼야한다. 창의력이 최고로 발현된 연구결과물은 몇 만명, 몇 십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

99%의 혁신적인 결과물은 1%의 과학자에서 만들어진다라고 말한 사람도 있지만 80대 20법칙으로만 보더라도 80%의 혁신적 결과물은 20%에 연구자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연구자들이 저지르는 부정을 방지하려고 쏟아 붇는 노력보다는 신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한다. 연구자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연구관리를 단순화하고 결과물 중심의 평가체계를 시험해보자. 그렇게 되면 소수 연구자의 도덕적 해이도 자연히 더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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