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공업계에선 적정한 시공단가 형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공단가 회복 시급·출혈경쟁 지양해야 / 무자격 시공업자 근절 대책 마련 필요

“지난해까지는 그럭저럭 버텨 왔는데 올해 들어 공사물량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어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비용절감 차원에서 사무실 규모도 줄이고 인력도 감축했죠. 갈수록 힘들어져요”

서울에서 도시가스 시공업을 하고 있는 A업체 사장의 한숨 섞인 말이다.

또 다른 시공업체 사장은 “지난해만도 꽤 알려진 몇몇 시공업체들이 사업을 접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올해도 많은 업체들이 문을 닫을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무성하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이처럼 도시가스 시공업체의 경영난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올해 유난히 시공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할 거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시공업계가 존폐 위기에 놓였다. 시공업체 사장들의 경영능력 부족도 이유겠지만 아무리 능력 있고 투자력이 있는 사장이라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사업환경이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 왜 어려워졌나

무엇보다 도시가스 공사 물량이 해마다 급격히 줄었들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울의 예를 들어보자.

서울시의 신규 배관 공사계획에 따르면 시는 지난해 약 180km를 설치키로 했다. 올해는 약 106㎞의 배관을 설치할 계획이다. 시는 2001년 신규로 415㎞의 배관을 설치했으며 2001년말 기준 도시가스 보급률은 92.8%를 나타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공업체들이 지방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시공단가 하락은 시공업체들의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에 시공단가 회복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단적인 예로 IMF 당시 1억원 짜리 공사가 약 7,000만원으로 하락한 이후 수년 째 시공단가가 회복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IMF 이후 물가, 자재비, 인건비 상승 등을 계산하면 실질적으로 50∼60% 이하로 떨어졌다고 업계는 설명한다.

인입관공사비는 평균 50만원 수준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계량기 설치공사도 1건당 60∼70여 만원 하던 것이 35∼50만원 까지 하락했다.

게다가 급감하는 공사물량에 비해 시공업체 수는 증가하면서 과당경쟁이 속출, 시공단가는 곤두박질 치고 있다. 불에 휘발류를 끼엊은 셈이다.

대한설비건설협회가 집계한 전국 시·도별 가스시설시공업(1종) 등록 현황을 보면 2000년 1,046개, 2001년 1,144개, 2002년 1,188개, 올해 4월 말 현재까지 1,223개가 등록돼 있다. 이처럼 공사물량은 한정돼 있는데 업체수는 증가해 자연스레 덤핑수주가 이뤄질 수 밖에 없다.

이와 관련 모 시공업체 사장은 “도시가스사 관로 공사 입찰시 10여개 시공업체가 입찰에 참여하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과당경쟁을 막고 부실시공 방지를 위해 최저단가제를 도입해야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 무자격 시공업자 난립도 문제

일명 보따리 시공업체들의 난립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과거 표준공사비제도, 수탁공사제도가 폐지되면서 우후죽순격으로 무자격 시공업자들이 속출하고 있어 시공단가 하락, 부실시공 우려를 낳고 있다.

경기도에 있는 한 시공업체 사장은 “경기도의 경우 100명 중 10명은 면허대여 시공업자들인 걸로 알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관계 기관의 감독 강화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관계 기관에선 이러한 업자들을 단속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단순히 ‘무자격 시공업자들을 주의하라’는 내용을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리는 정도다. 또 이들을 단속하기 위한 인력과 비용도 확충돼 있지 않다. 자유경쟁 속에서 자연히 이들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고 관망만 하고 있다.

시공업계 일각에서는 표준공사비제도, 수탁공사제도를 다시 도입해야한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비치고 있다.

◈ 도시가스사와 ‘불편’ 여전

공정위는 지난해 삼천리, 대한도시가스엔지니어링의 특정 제품(정압기) 강매 등 불공정 거래 행위를 적발해 이 두 회사에게 각각 5억4,000만원, 5,500만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는 도시가스사들이 우월적 지휘를 이용해 특정제품 강매, 불필요한 서류 요구, 임의점검 비용 징수 등 불공정 행위가 지속되고 있다는 시공업계의 주장을 단편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한동안 논란이 됐었던 도시가스공급규정 ‘공급전 안전점검’ 문제도 이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당시 대한설비건설협회는 공급전안전점검 규정은 지난 98년 폐지된 시공의 자체검사제도보다 더 강력한 규제라고 주장하면서 이 규정의 폐지를 촉구했다. 건설산업기본법과 도시가스사업법(가스안전공사의 시공감리)에서도 충분한 데 공급전안전점검 규정을 만들어 도시가스사업자로 하여금 중복 점검토록 하는 것은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에 어긋나고 도시가스사업자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도시가스사업자나 지자체는 시공업계의 이러한 주장을 억지라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이 제도는 존속돼야 한다고 맞섰다.

◈ 발전방향은

무엇보다 시공단가의 회복이 급선무라는 게 업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를 위해 일각에서는 최저단가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과당경쟁을 자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과당경쟁은 시공단가를 하락시키고 부실시공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시공업 환경이 과당경쟁으로 갈 수 밖에 없는 형국이라지만 시공의 전문화, 고객 서비스 강화, 부실시공 방지를 위한 노력 등 차별화 전략을 이용하면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관계 기관의 노력도 필요하다. 무자격 시공자들의 난립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에 관심을 보일 때라는 것이다.

협회 및 협의회의 위상 재정립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설비건설협회에는 가스시공지원부 한 개 부서가 가스시공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올해로 설립 5년째인 가스설비공사협의회는 아직 회원사가 많지 않고 예산도 부족해 실질적인 사업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다. 무엇보다 대한설비건설협회에 일개의 협의회로 속해 있기 때문에 관계 기관에 시공업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에 대한설비건설협회에서 가스시공 업무를 독립시키려는 노력도 있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현재의 가스설비공사협의회의 활성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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