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조대인 기자] 지난 2012년 반도체를 제치고 수출품목 1위를 차지했던 정유업계가 지난해 실적 악화에 시달렸다. 국제유가의 약보합세, 국내시장의 공급과잉, 중동 및 아시아의 정제처리 설비증설 등에 따른 정유부문 실적이 급락한 것이 주원인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정유부문에서 더 이상 나아갈 영역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제 능력은 이미 국내 소비량을 넘어섰으며 생산물량의 40%를 수출하고 있다. 국내 유통망인 주유소는 이미 포화상태로 진입했다. 게다가 정부의 기름값 압박 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과거 꿈적않던 4개 정유사의 시장점유율이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삼성토탈은 제5의 정유사를 표방하며 정유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위기의 정유업계에 판도변화를 몰고 올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 정유사들의 실적 저하 뚜렷
지난해는 정유사들의 실적 저하 현상이 두드러졌다.
SK이노베이션의 올 3분기 누적 순이익은 전년동기(9,201억원)대비 8.6% 감소한 8,414억원으로 나타났다. GS칼텍스도 같은 기간 순이익이 6,137억원에서 4,768억원으로 22.3%나 줄었다. S-OIL의 순이익은 전년동기(6,072억원)대비 무려 47.8%가 감소한 3,172억원으로 나타났다.
4대 정유사 중 3분기 누적 순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늘어난 곳은 현대오일뱅크뿐이었다.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전년동기(1,032억원)대비 무려 99.9%가 상승한 2,063억원의 누적 순이익을 기록했다.
정유사들의 실적 저하의 주요인은 정제마진에 있다. 정제마진은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경유·나프타 등의 석유제품을 만들어 얻는 이익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유가가 떨어지면 석유제품의 가격 하락폭이 더 커져 정제마진이 감소한다. 정유부문이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정유사들에게 유가하락은 실적 악화와 직결되는 요인이다.
2013년 국제유가는 1년 내내 등락을 반복하는 구조를 나타냈다. 2012년 2분기와 같은 폭락의 사태는 없었지만 2~3개월 단위로 등락을 거듭하면서 뚜렷한 방향성을 나타내지 못했다.
유가상승세를 막았던 것은 바로 수급요인이다. 세계 경기침체와 연료의 효율증가, 비OPEC 국가의 비전통원유 생산의 증가 등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시장의 공급과잉도 실적 저하의 요인으로 해석된다.
최근 정유사들은 고도화설비를 증설해 휘발유, 경유 등 경질유 생산능력이 대폭 늘었다. 하지만 늘어난 물량을 내수에서 소화하지 못해 대부분 싼 값에 수출로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하락(원화가치 상승), 중동 및 아시아의 정체처리 설비증설 등으로 수출 여건이 나빠진 것도 정유사들의 실적악화의 한 요인이 됐다.
■ 정부의 기름값 압박은 계속
정유사들의 실적 악화와는 관계없이 지난해 정부의 기름값 압박은 계속됐다. 알뜰주유소, 석유전자상거래, 석유혼합판매 등 경쟁을 통해 가격인하를 유도한다는 정부의 정책은 지난해에도 유효했다.
특히 지난해 3월 기름값이 2,000원대에 다가설 기미를 보이자 정부는 기름값이 2,000원대를 돌파할 경우 알뜰주유소에 주는 기름공급가격을 1,800원대로 고정해 공급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에 따른 여파인지 전국 주유소 기름값이 2,000원대를 넘어서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또한 지난해 12월 전국 알뜰주유소는 1,000개소(자영알뜰주유소 401개소, 도로공사 160개소, 농협 439개소)를 돌파했다.
알뜰주유소 1,000개 돌파는 지난 2011년 말 경기도 용인에서 알뜰주유소 1호점이 영업을 시작한 이후 1년11개월 만의 성과다.
알뜰주유소는 석유 유통시장 구조개선, 유가안정 도모를 목적으로 탄생했다. 독과점 구조의 유류유통 구조 변화에 새바람을 불어 넣어 정유사들의 공정한 시장 자율경쟁 체제로 변화시키면서 유가 인하는 물론 물가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알뜰주유소가 그 지역의 가격 결정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시장 전체적으로는 가격경쟁을 유인해 유가인하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특히 알뜰주유소가 등장함으로써 과거 SK, GS, 현대오일뱅크, S-OIL 등 국내 4개 정유사들의 과점 형태의 유통구조에서 자율경쟁으로 변화되고 있다.
과거 꿈쩍 않던 정유사간 시장점유율이 알뜰주유소 도입으로 변동이 발생했는데 이것은 알뜰주유소의 역할로 인해 가격경쟁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알뜰주유소의 확대와 함께 셀프주유소의 확대도 두드러졌다. 더 저렴한 가격을 원하는 운전자들과 알뜰주유소를 견제하기 위한 정유사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든 것이다.
국내 석유시장의 독과점 구조를 깨겠다며 되입된 석유전자상거래의 경우 국내 소비량의 10%에 달하는 양이 전자상거래를 통해 이뤄질 정도로 활성화가 됐다. 지난해 7월부터는 국내 정유사들도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부가 들이는 세금만큼 실제 가격인하로 연결되고 있는지에 대한 실효성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정부는 지속적으로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으면서 전자상거래를 정착시키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석유혼합판매의 경우 제도가 도입된 지 1년이 홀쩍 넘었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혼합판매를 시작한 주유소가 단 한 곳도 나오지 않으며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석유혼합판매 제도를 살리기 위해 지난해 8월 정부가 직접 개입해 정유사와 주유소간의 중간다리 역할을 자처하며 속도를 내고자 했지만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여러 논란에도 정부는 석유혼합판매 제도를 철회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석유혼합판매를 개설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석유혼합판매 제도는 정유사와 주유소의 암묵적인 전량 구매계약 관행을 해소시키겠다고 도입된 제도다. 주유소들이 관계 우위에 있는 정유사와의 거래관계에서 조금이라도 협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유사 외의 거래할 수 있는 루트를 만들어 준 것이 석유혼합판매 제도의 취지다.
즉 주유소들이 직접적으로 혼합판매 전환을 하지 않더라도 주유소가 정유사와의 관계에서 쓸 수 있는 협상카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정유업계의 구조적 변화 원인을 초래했던 요인들이 정유업계에 크게 우호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가에 대한 정부의 관리는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석유제품 가격상승으로 인한 경제 전체에 대한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고 정유사들은 정부 압박에 실제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안은 거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여진다.
정제마진 하락·정부압박 지속 따른 실적악화
삼성토탈, 알뜰주유소 확대 힘입어 영향력↑
■ 삼성토탈 정유사업 본격화
최근 정유업계에서 가장 핫한 이슈는 바로 삼성토탈이다. 한국석유공사를 통해 알뜰주유소에 휘발유를 공급하고 있는 삼성토탈이 올해에는 국내 경유시장에도 뛰어들 것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삼성토탈은 약 2조원대의 자금을 투입해 올해 하반기 제2 파라자일렌 공장 준공을 추진 중이다.
연산 100만톤 규모의 제2공장은 경유분리 설비와 탈황 설비를 갖춰 석유화학 부산물로 휘발유, 항공유, 연료유를 비롯해 경유 생산도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또한 삼성토탈은 석유공사의 비축용 저장시설을 임대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데 이어 삼성토탈이 물류 인프라 확보를 위해 송유관공사 지분 매입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토탈은 지난 2010년 석유정제업 등록을 완료하고 알뜰주유소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지난 2012년 7월부터 알뜰주유소를 통해 국내에 휘발유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특히 정부가 삼성토탈의 휘발유 공급물량을 2012년말 7%에서 지난해말 32%까지 대폭 늘리기로 하면서 삼성토탈은 호재를 맞았다.
알뜰주유소 휘발유의 40% 가량을 거래하고 있는 삼성토탈은 1,000개소를 돌파한 알뜰주유소의 확대에 힘입어 삼성토탈의 공급물량도 확대되며 국내 석유시장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있다. 이는 기존 정유 4사가 내수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몫이 그만큼 작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알뜰주유소 등장 이후 과거 꿈쩍 않던 정유사간 시장점유율에 변동이 발생했는데 이것은 알뜰주유소의 확대로 인해 삼성토탈의 영향력도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기존 정유사에서는 “치열한 품질, 가격 등 경쟁을 통해 거래처를 확보한 기존 정유사들과는 달리 삼성토탈은 정부 지원에 의해 무임승차로 거래처를 확장해 가고 있는 셈”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 정유업계 신성장동력 찾아서
유가는 올해에도 지난해와 유사한 변동성을 나타내며 정제마진에 따른 정유사들의 수익악화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정책 또한 정유업계에 비우호적일 것으로 보인다. 국내시장의 공급과잉 현상도 여전하다.
정유사들의 핵심인 정유부문의 수익성이 개선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 가운데 국내 정유사들은 정유부문에서 더 이상 나아갈 영역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제 능력은 이미 국내 소비량을 넘어섰으며 생산물량의 40%를 수출하고 있다. 국내 유통망인 주유소는 이미 포화상태로 진입했다.
게다가 중국·미국의 셰일가스, 타이트오일 생산이 본격화되는 등 국제 에너지시장의 급격한 변화로 국내 석유산업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려 있다.
이런 가운데 정유사들이 최근 어떠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SK에너지는 약 3,000억원 규모의 리뱀핑(Revamping: 설비증설)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SK에너지는 2013년 7월 인천CLX 및 트레이딩사업부를 분할했으며 인천CLX에 대한 투자는 SK인천석유화학에서 담당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2011년 고도화설비 투자 이후로는 정유부문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자회사를 통해 석유화학 및 윤활유, 터미널 등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며 종합정유사로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GS칼텍스는 2013년 4월 제4차 고도화설비를 완공하고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이에 대한 투자 규모는 1조2,000억원 수준으로 정유부문에 대한 신규 투자계획은 없는 상태다. 또한 2012년 쇼와셀과의 PX 100만톤 합작 투자를 발표한 바 있다.
S-OIL은 2011년 4월 약 1조3,000억원의 PX 투자를 완료해 105만톤 규모의 생산시설을 증설했고 고도화설비에 대한 투자는 2002년 완료해 최근 대규모의 투자는 없다.
S-OIL은 부지문제로 투자를 보류하다가 울산 온산공장(제1공장) 인근의 석유공사 부지 임대 등 부지문제가 정부와의 혐의에 따라 진척되면서 2013년 5월 제2정유,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에 약 8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각 정유사들의 투자형태의 특징은 석유화학 제품 등 모두 비정유부문이라는 점이다. 정유사 역시 현재의 업황에서 정유부문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기에는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정유사들은 신성장동력사업을 강화하고 설비투자를 마무리하는 등 안정적 수익성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엔 석유화학 제품의 동력도 불안해지자 플라스틱(폴리머)과 같은 신소재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사업구조 안정화를 위해 대외요인에 취약한 정유부문 대신 석유화학과 신사업을 통해 성장동력을 모색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유사가 언제까지 석유제품에 의존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에너지사업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