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에너지 장성혁 기자]

지난해 9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생소한 포럼이 개최됐다. 이름하여 ‘TBM산업발전포럼’이다. 관련 업계와 정부, 협단체, 학계 및 연구계 등 약 250여명이 참석해 4시간가량 진행된 행사 시간에도 불구하고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분위기는 뜨거웠다.
 
TBM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하공간을 효과적으로 뚫을 수 있는 자동화된 기계로 정의할 수 있다.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내 TBM공법의 터널 실적은 전체 사업 중 1%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TBM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시장관심도 높아지고 있어 주목된다. 이에 본지는 TBM의 특성과 관련산업의 세계시장, 기술수준, 국내여건 등을 알아보고 특히 에너지산업과의 궁합도를 점검하고자 한다.
 
1부 - TBM 글로벌마켓, 성장속도 가파르다
2부 - 국내시장, 변화의 훈풍이 불어온다
3부 - 에너지산업과 TBM의 궁합
 
지하공간을 개발하는 방법으로 다양한 공법이 활용되고 있지만 가장 과학적이고 생산적인 공법을 꼽으라면 단연 TBM공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무발파에 따른 소음과 진동이 발생하지 않는 점은 우리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친환경적 기대와 부합한다. 소음과 진동으로 자칫 환경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여타의 공법과 달리 원형의 단면으로 굴착하게 돼 지반 변형을 최소화하고 안전한 작업환경을 보장받는다.
 
이러한 안전성과 친환경적 특성은 최근 터널 굴착 시 공법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TBM장비 사용률은 이러한 사회적 눈높이와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많은 터널 공사에서 발파식 나틈(NATM)공법이 사용된다.
 
2010년 기준 국내 도심지 교통터널 공사의 TBM공법 시공률은 전체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TBM으로만 보자면 우리나라는 후진국 수준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국내 TBM시장, 에너지산업이 버팀목
2010년 기준 국내 TBM공법(세미쉴드 포함)의 사용현황을 살펴보면 전력구 44%로 절반에 육박한다. 뒤이어 통신구 20%, 철도(지하철 포함) 20%, 상하수 12%, 가스관로 4% 수준이다. 전체 TBM공법 중 에너지 기반시설인 유틸리티 건설이 약 80%로 절대적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쉴드TBM만 놓고 보더라도 이 비율은 유사하게 나타난다. 쉴드TBM이 최초로 적용된 1987년 부산 광복동 전력구 공사를 시작으로 2010년 까지 국내에서는 총 59대의 쉴드TBM이 사용됐다.(표1 참조)        
 
          <표1 - 국내 쉴드TBM 사용현황> 

구분

사용용도
대수
비율(%)
규격(m)
1
전력구
25
42.4
3.5~5.0
2
통신구
13
22.0
2.75~3.65
3
지하철
10
16.9
7.28~8.13
4
철도
2
3.4
7.9~8.25
5
하수관로
2
3.4
3.55
6
가스관로
2
3.4
2.5~3.5
7
방류관로
2
3.4
3.5
8
급수관로
2
3.4
2.5~3.75
9
취수로
1
1.7
4.3
합계
59
100
-

국내에서는 지하철과 대심도지하도로, 철도, 도로터널 등 중대형 이상의 TBM공법 사용은 극히 제한적으로 시공됐지만 상대적으로 기반시설 유틸리티 공사에는 꾸준한 사용을 이어왔다.

한마디로 에너지산업이 국내 TBM시장의 버팀목이 되어 온 것이다.
 
이웃하고 있는 중국시장을 들여다보면 그 차이는 확연하다. 2002년에서 2006년까지 중국에서 사용된 TBM장비의 용도별 현황을 보면 지하철이 압도적이다.(표2 참조)
 
        <표2 - 중국 용도별 TBM 사용현황>

구분

사용용도
대수
비율(%)
규격(m)
1
지하철
101
73.2
6.1~11.1
2
수로터널
18
13.1
3.7~10.8
3
도로터널
13
2.2
11.2~15.4
4
상하수도
3
2.2
3.3~4.3
5
철도
2
1.4
8.8
6
가스관로
1
0.7
4.5
합계
138
100
-

 이 기간 중국시장에 사용된 TBM은 총 138대로 이 가운데 101대가 지하철공사에 투입됐다. 국내에서 80%의 높은 사용률을 보인 에너지기반시설의 유틸리티부문에서는 상하수도와 가스관로용으로 총 4대가 사용돼 3%에 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형과 총연장길이 등 공사현장과 규모에 따라 공법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국내 TBM장비시장에서 에너지산업이 명맥을 이어왔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에너지산업의 기반시설인 주요 관로는 중소형구경이 대부분 사용된다. 표에서도 나타나듯 전력구의 송배전케이블을 비롯해 상하수관로, 가스관로 등이 모두 직경 3.5m이하로 하천이나 철로, 도로, 도심지역 공사 등 매설범위 전체를 개착(지표면에서부터 굴착하는 방식)하기 어려운 구간에 적용되고 있다.
 
▲ 주요 에너지시장의 TBM 적용현황
소득이 향상되고 우리 사회가 더욱 선진화될수록 에너지시장의 터널공사는 비개착식 방법인 TBM공법 적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공사에 따른 다양한 민원제기를 원천적으로 줄일 수 있는 공법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분야 내 터널공사는 도심지에 집중돼 있어 공사 시 민원제기가 공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공기 연장은 결국 투입비용을 상승시키는 요인이다. 이로 인해 매설 전 구간 개착에 따른 시민 불편과 진동, 소음 등의 민원 발생이 높은 개착식 공사보다는 비개착식 공법인 TBM장비 사용을 선호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국내 송배전 건설을 담당하는 한국전력의 공법별 적용 현황을 보면 2000년을 기준으로 명확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표3 참조)
 
         <표3 - 한전 터널 공법별 적용현황>

구분

NATM
TBM
기타
2000년 이전
17
24
1
42
2000년 이후
5
56
15
76
22
80
16
118

 2000년 이전까지의 전력구공사에서는 발파식 공법인 NATM과 TBM공법 차이가 크지 않지만 이후 공사에서는 대부분이 비개착식인 TBM공법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강태희 한전 송변전건설처 차장은 “여전히 터널 연장길이가 짧은 구간에서는 개착식 공법의 공사비용이 낮다”라며 “도심지나 2차선 등 짧은 도로를 통과할 경우 주민불편과 민원발생 소지가 높아 공법 평가 시 기계식(TBM) 공법 채택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TBM공법을 도입한 한전은 장비사용 횟수에서도 단연 국내 최고 사용처다. 전력구부문에서만 전체 TBM장비시장의 4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 2012년까지 착공된 총 118건의 전력구터널공사를 기준으로도 80건의 공사에서 TBM(세미쉴드 포함)장비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전은 업계 최초로 자체 TBM공법 적용기준과 적산기준을 마련해 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기억 한전 송변전건설처 차장은 “연장거리와 케이블 회선수 등 공사별 특성과 규모에 따라서 공법을 선택해 제안한다”면서 “(제안된)공사별 공법은 한전 자체의 전문가협의체에서 최종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농어촌지역 역차별을 해소하고 에너지복지 실현을 목적으로 한 ‘전국천연가스확대보급사업’ 1단계가 5년간 공사를 마감하고 성공적으로 성료했다. 이 과정에서도 TBM공법이 적용됐다.
 
가스공사에서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울진~속초 주배관 건설공사 4개구간(연장 100~534m)에서 세미쉴드공법이 사용됐다. 이 외에도 목포~해남 3개구간, 상주~영주 2개구간, 보은~무주구간, 통영~거제구간 등에서 세미쉴드공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업을 주관한 가스공사의 이용명 관로건설처 차장은 “1단계 보급사업에서 세미쉴드공법 사용은 주로 하천이나 강을 통과하는데 사용됐다”면서 “올해부터 시작되는 2단계 사업과정에서도 세미쉴드를 포함한 쉴드TBM공법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가스공사는 현재 ‘천연가스장기보급계획’에 따른 ‘영종도~교하 주배관건설공사’ 2개 구간에서도 TBM공법을 사용하고 있다. 영종도와 오류동을 잇는 해저 3.4km구간과 한강하저 1.5km을 잇는 가스관로 건설을 위해 2,400mm 쉴드TBM이 현재 바다와 강 밑에서 터널을 뚫고 있는 것이다.
 
전력구, 가스관로와 달리 주로 신도시를 중심으로 공급되는 열배관공사는 TBM장비 사용이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지역난방공사에 확인한 결과 시공완료된 1개 구간과 현재 시공 및 검토 중 구간이 각각 1개소로 확인됐다. 권성주 한난 네트워크처 과장은 “현재까지 TBM(세미쉴드)공법 사용은 많지 않다”면서도 “현재 계획중인 수도권 열네트워크(광역망)사업이 확정될 경우 많은 구간에서 사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난은 1,500mm 세미쉴드가 주로 사용된다.
 
 
 
▶ TBM 제조능력·인프라 확충 시급  
이처럼 에너지산업에서의 TBM공법은 중소형 쉴드TBM 또는 세미쉴드가 주로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 TBM보급과 관련해 의미 있는 설문결과를 소개한다.
 
중대형구경 TBM이 보편화되어 있는 외국과 달리 중소구경의 에너지산업이 전체 TBM장비사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내 여건에서 TBM에 대한 지식이 보통 이상인 터널분야 전문가 82명을 대상으로 <그림1>과 같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한국건설기술연구원, 2010년)
 
먼저 TBM사례가 적은 이유에 대해 기술과 전문가부족(23.81%), 발주체계 및 제도적 문제(36.9%) 등 주로 미흡한 국내 인프라 여건을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향후 수요예측과 관련해서는 점진적 증가(66.67%), 급격한 증가(21.43%)등 수요확대를 점치고 있었다.
 
또 국산화 필요성에도 절대다수인 88.1%가 ‘필요하다’는 응답을 보였다. 이런 결과로 미뤄 이들의 속마음을 정리하면 “TBM이 사용될 수요처는 향후 큰 폭으로 늘어나지만 관련 인프라 등의 부족으로 국산화는 더디고 결국 외국에서 수입해서 써야 하니 이 일을 어찌할는지”로 해석될 수 있다.
 
국내 TBM시장은 기회를 맞고 있으면서도 상당한 위협을 안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녹색성장이 부각되고 TBM관련 기술도 빠르게 진보하면서 터널공사의 TBM공법 사용은 급속도로 늘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이 커지고 있다. 최근 TBM 국산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 신규산업 육성으로도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가까운 중국이 최대 수요처이면서 최대의 공급자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은 경계할 대목이다.
 
중국은 1966년부터 TBM개발에 착수해 2005년 독자적으로 설계를 이뤄냈다. 또 제작기술도 향상되면서 지금은 수입장비 대비 2/3수준으로 장비가격을 떨어뜨렸다.
 
이러한 대외 여건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국산화를 이뤄내는 것이다. 설계기술뿐만이 아니다. 인프라가 고르게 형성되어야 한다.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오퍼레이터 양성이 시급하다. 현장 문제 발생 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국내에서 완제품을 제조할 수 있는 제조능력을 갖춰야 한다. 물론 발주체계도 혁신이 도입될 만큼 변해야 할 것이다.
 
선순환구조가 필요하다. 어느 한 곳만이 아니라 전체 사이클이 맞물려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그간 버팀목이 되어 온 국내 에너지산업에서뿐 만이 아니라 철도와 지하철, 도로 등 교통터널과 하·해저터널 등에서도 충분한 실적을 보유하고 쌓아 나가야 선순환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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