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택 국민대학교 교수
(대한설비공학회 회장)
[투데이에너지] 인간은 재주를 부리는 존재라하여 호모 하빌리스라 한다. 자연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자연을 이용해 삶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과학적 원리를 이용한 각종 기술을 부린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거처를 만들고 동물을 부려 탈 것을 만들며 불을 지펴서 난방과 조리에 이용한다. 인간은 자연재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솜씨를 부리며 영리하게 지구상에 종족을 번성시켜 왔다.

더욱 편리하고 윤택한 삶에 대한 욕구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고도의 재주를 부리며 현재와 같은 기술발전을 이뤘다.

사회의 각종 시스템을 대형화, 고속화, 집중화시킬수록 그 효율을 현저하게 높일 수 있다. 고대 올림픽에서 이상으로 여겼듯이 더 높이, 더 빨리, 더 세게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높아지고 빨라지고 세질수록 사고 위험성은 증가한다. 

주변과의 격차가 없는 상태, 즉 평형상태에 도달하면 아무런 움직임이 없으니 사고의 위험성이 전혀 없다. 주변과의 격차가 있을 때 변화가 시작되는데 격차가 클수록 그 변화의 크기나 속도가 증가한다.

에너지설비에서 소규모 저압용기는 더러 누설되더라도 위해가 크지 않지만 집적도가 높은 고온 고압의 시설물에서는 사고가 대형화되고 폭발력도 치명적이다.

사회가 고도화되고 있지만 사고 위험성에 대한 현실감각은 떨어지고 있다. 옛날 학교 교실 가운데 놓인 조개탄 난로의 화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올려놓은 도시락 바닥이 금새 누룽지가 되고 불빛이 보이는 곳 가까이 앉으면 뜨거워 못견딜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의 몇배 화력을 가진 보일러가 아파트에서 가동되고 있지만 뚝 떨어진 기계실에서 보일러가 돌아가고 있는지 조차 모른다.

시골 외할머니 댁에 놀러가서 소달구지를 타면서 짜릿한 속도감을 즐긴 적이 있다. 길이 안 좋아 조금만 달려도 덜컹거리고 상당한 속도감을 느끼던 시절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속 300km의 고속철을 타도, 시속 900km의 비행기를 타도 전혀 속도감을 느낄 수 없다. 기술이 워낙 좋아져서 정숙 쾌적 운전을 하다 보니 속도감을 느끼기 어렵고 따라서 위험에 대한 감각을 갖기 어렵다. 

또 하나, 사회 환경은 많이 바뀌었지만 우리들의 안전의식은 여전히 소달구지 타고 다니던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사회의 빠른 발전 속도에 맞춰 사람의 의식수준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의 의식 수준과 사회의 환경변화 사이에 시간적 지연 격차가 존재한다. 더구나 우리나라와 같이 짧은 기간에 급속한 경제성장이 이뤄진 경우에 그 괴리는 더욱 심하다.

현대문명은 인간이 재주 부린 위험한 칼날 위에 놓여 있다. 현실감각은 무뎌지고 안전의식 수준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채 편리함과 효율화에 대한 욕구는 그칠 줄 모른다. 원전 폭발과 같은 몇 건의 초대형 사고로 대형 참사가 발생하고 현대문명이 송두리째 날아갈 수 있다.

그동안 양적팽창과 급속성장이라는 액셀러레이터를 가동시켜 많은 발전과 성장을 이뤘다면 이제 여기 걸맞는 안전과 생명이라는 보다 중요한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 브레이크를 작동시켜야 할 때이다.

안전의식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하며 생명을 존중하는 기본적인 의식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 생명을 보호하고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부렸던 재주가 거꾸로 우리를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어리석은 존재인 호모 인사피엔스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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