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성 LNG 가열버너 폭파사고 현장.
[투데이에너지 이승현 기자]  5월의 대한민국은 해외언론조차 재난 공화국이라고 언급할 만큼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가 발생했다.

가뜩이나 세월호 참사 이후 어수선한 상황에 연일 계속되는 안전사고에 시민들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가스 및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5월, 이들 사고의 공통점은 모두 ‘안전불감증’에서 빚어진 사고였다.

정부는 규제개선이란 명목 하에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됨에도 사고사업장에 대한 작업 중지명령만을 내리며 뒷수습에만 급급한 모양새다.

때문에 특단의 예방대책은 온데간데없고 잠재적 위험을 방관하는 꼴이란 비판만 높아가고 있다. 특히 이번 5월 사고들은 울산공단을 주축으로 각종 독성물질과 유독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산업단지 내 사고가 잦았다. 

사고 기업에 대한 정부의 땜질식 처방이 자칫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불러올지 모른다는 걱정의 목소리는 커져만 가고 있다.

◆끊이지 않는 울산산업단지 사고

지난달 8일 각종 유독·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울산석유화학공단에서 2건의 사고가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 시작은 냉매 생산업체인 후성의 LNG 가열버너(보일러)의 폭발이었다. 이 사고로 근로자 조모(32)씨가 숨지고 박모(46)씨 등 4명이 크게 다쳤다. 후성의 이번 가열버너 폭발사고는 플랜트 설비인 외부노출 LNG 가열버너의 수리작업을 진행 후 재가동 과정에서 서비스기사가 퍼지 작업을 하고 점검을 해야 함에도 이를 묵과해 폭발사고로 이어졌다.

이 업체는 지난해 5월에도 에어컨 냉매로 사용되는 프레온 가스가 10여분간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해 큰 피해로 이어질 뻔 했다.

같은 날 SK케미칼 울산공장에서 옥외 위험물 저장탱크 청소와 코팅작업 중 가스중독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3명이 금속 세정제인 염화메틸렌 가스에 중독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어 5일 만에 또 다시 울산에서는 수증기 폭발사고가 발생 한다.

LS그룹 계열사 LS니꼬동제련 2공장에서 발생한 수증기 폭발사고는 또 다시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사고는 제련 2공장에서 보수작업을 하던 중 발생했다. 구리물이 흐르는 탕로 끝 부분에서 폭발이 발생한 것이다. 제련 2공장은 광석과 황산을 녹여 구리를 만드는 공정을 하는 설비로 자칫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사고였다.

이어 이 업체는 22일에도 공장 냉각타워에서 불이 나 냉각타워 상부의 냉각팬을 태우고 20여분 만에 진화됐다. 이처럼 지난 한 달 동안 울산공단을 중심으로 한 크고 작은 사고는 안전사고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많았다. 사고원인도 이유도 다양했지만 대부분은 안전의식이 결여된 안전 불감증이 불러온 인재였다.

▲ LS니꼬동제련 화재진압 현장.

◆울산공단 근본대책은 없나?

울산소방본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폭발·화재사고는 모두 197건으로 재산 피해는 총 45억9,000만원이며 사상자만 50여명(사망 5명·부상 43명)에 이른다. 비화재성 일반사고까지 합하면 사고는 300여건 이상, 사상자는 150여명 이상이고 피해액은 1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분석됐다.

사고유형을 보면 부주의가 50건, 전기적 요인이 35건, 기계적 요인이 25건, 화학적 요인이 16건, 기타가 53건으로 분석됐다. 사고 중 부주의 사고가 전체사고의 1/3을 차지하는 결과를 볼 때 이는 작업자가 안전에 대한 충분한 인지가 부족하다는 결론이 도출 가능하다.

즉 울산산업단지 내 일부 사업장에는 충분한 안전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안전 불감증이 만연해 이로 인해 끊임없이 사고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걱정스러운 점은 산업단지라는 특성이 말해 주듯 대형인명피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요인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울산공단에는 유해화학물질 및 초대형 유류·가스 저장시설이 밀집해 작은 사고에도 대형 참사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울산국가공단의 연간 위험물질 취급량은 1억602만톤 가량으로 전체 물량의 30%를 차지한다. 폭발성이 강한 유류와 초산, 황산 등 138종의 유해화학물질, 가스 등이 들어있는 초대형 저장탱크도 1,700여기에 이른다.

공단지역이다 보니 지하에 매설된 화학관로 및 중고압 가스관로, 송유관 등에 대한 관리 문제도 특별점검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러나 예산부족 문제와 관리권한이 중앙정부에 있다 보니 지자체의 경우 ‘사후약방문’식 처방에 그 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실제 지난해 울산국가공단에 지원된 노후시설 개선 및 정밀안전진단 사업비는 50억원에 그쳤다. 게다가 유해화학물질 관리는 환경부, 산업 안전은 고용노동부, 고압가스 관리는 산업통상자원부 등으로 이원화돼 있고 그마저도 중앙정부에 관리권한이 집중돼 있어 지자체인 울산시 인력으로는 공단 전체를 관리하기에 예산도 인력도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나마 한국가스안전공사가 지난 3월 말부터 전국 주요 도시의 중압 도시가스 배관에 대한 정밀 안전 진단을 실시하고 있고 크고 작은 사고로 국회 차원에서 관련 법안을 상정해 안전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 불안감을 털어내기에는 미흡해 보인다.

◆사고 기업, 도덕적 해이까지

울산공단의 몇몇 기업들의 안전사고에 대한 인식자체도 문제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발생한 사고로 인해 울산공단의 몇몇 기업들은 현재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으로부터 작업 정지명령을 받고 진단명령에 따른 개선작업을 진행 중이거나 이미 마친 상태다.

그러나 사고 후 천편일률적인 작업 정지명령만으로는 사고에 대한 예방적 기능이 사실상 불가능 하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일부 사고기업의 경우 사고에 대한 경각심이나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면작업중지 명령을 받은 H기업의 한 관계자는 “사고를 대비해 보험에 가입해 있고 제고물량도 충분해 전면작업중지 명령에도 기업 입장에서는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는다”라며 “향후 개선안에 대해 정부의 지시사항을 이행 중이며 사고예방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라고 말해 도덕적 해이 현상까지 보였다. 이처럼 기업들의 안전사고에 대한 불감증은 도를 넘었다.

때문에 작업 중지명령이 철회되고 다시 작업장이 가동된다고 해도 잠재적 사고 위험성은 여전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의 한 관계자는 “문제 기업에 대해 작업 중지명령과 개선사항을 유도할 수는 있지만 도덕적 문제까지 언급할 수 없는 노릇”이라며 “홍보와 교육을 통해 안전에 대해 강조하고 있지만 사업체 스스로 이에 대해 얼마나 진정성 있게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기업의 안일한 대처는 P제철소 2고로 폭발사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정기 보수작업 중 가스밸브 교체작업을 진행하다 갈라진 배관 틈새로 가스가 유출되며 근로자 5명이 병원에 이송되는 사고가 발생했던 P사는 사고 후 신고조차 하지 않아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화재도 없었고 미세한 폭발사고가 난 것으로 파악해 별도 신고 조치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업체 측의 주장이지만 안전사고발생을 의도적으로 숨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기업 스스로가 사고에 대한 경각심과 위험성을 곱씹어 봐야 된다고 지적했다.

▲ LS니꼬동제련 수증기 폭파 현장.

◆정부, 사전 예방기능 확대해야

산업체의 이 따른 사고에 대비해 정부가 산업계 전반에 대한 위기대책 매뉴얼 마련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5월 수많은 사고 중 산업체 내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지자 해외 선진기업의 안전대책 운영방향 및 제도를 모색해 종합적인 대책 마련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산업분야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이에 대한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그 일환으로 산업부는 제철소, 석유화학공장, 발전소 등 주요 산업시설을 중심으로 설비 설계부터 운영까지 단계별 안정성 확보 조치 현황 및 대응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외부용역 공모를 통해 해외 선진기업의 관련 조직·제도를 파악, 구체적인 위기대책 매뉴얼작성의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이 어떻게 구현될지 아직 확실한 가이드라인은 나오지 않았지만 늦게나마 다행이란 평이다.

지난해 4월 텍사스주 소도시 웨스트 비료공장 화재 진압 중 질산암모늄 폭발사건으로 15명이 사망하고 160여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화학물질 화재에 대한 불감증이 사상자를 키웠다. 이후 미국은 실효적 규제 강화를 통해 향후 발생할 지도 모를 화학물질 사고에 미연에 대비하고 있다.

우리정부 역시 울산공단 사고에 대해 철저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고는 메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반복될 개연성이 크며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어느때보다 철저한 예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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