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경천 코텍엔지니어링 부사장
[투데이에너지] 지열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도 어느덧 15년이 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지난 15년 동안 우리나라의 지열은 어느 만큼 성장했는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재조명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인류의 발전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본고는 지열이 성장해온 과정을 돌아보고 지열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에너지가 되기 위한 조건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본질을 외면한 정책목표 
 
미국이나 유럽의 지열전문가에게 지열을 왜 하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화석연료 고갈에 대한 대비와 온실가스 감축에 따른 지구온난화 방지를 이야기한다. 필자가 지열을 처음 시작할 때 국내에서 지열과 관련된 공무원, 학자, 업계관계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수출증대와 고용창출이 대부분이었다. 본말이 완전히 전도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에너지절감이나 효율향상이라는 본질적인 부분은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업체수, 고용자수, 매출액과 같은 숫자들에게만 정신이 팔리게 된다. 지열이나 태양열같이 규모 자체가 작은 열원은 보이지도 않는 법이다. 모든 제도는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대형 신재생에너지원에 집중됐고 대기업이 중심이 돼 수출 주도형 산업으로 돌진해 갔다.

결과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대기업이 사업에서 철수했고 수많은 협력회사들이 도산했다. 국내시장에서의 충분한 성능검증, 원가절감, 경쟁력 향상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과정을 건너뛰려다 스스로 주저앉게 된 것 아닌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조급증을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생각한다.
 
‘과유불급’ 보급사업
 
신재생에너지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생소하던 시절 정부는 신재생에너지산업의 육성을 위해 보급사업을 시작했다. 태양광, 풍력, 태양열, 지열 등을 설치할 경우 엄청난 초기투자비의 일부를 정부에서 지원하는 제도다. 이 제도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시장에 뛰어들게 됐으며 MB정권 시절에는 녹색성장의 기치하에서 신재생에너지 붐이 일 정도로 활성화됐다.

보급사업은 이후 △그린홈백만호사업 △일반보급사업 △지방보급사업 △시설원예지열난방보급사업 등으로 확대됐으며 그 과정에서 신재생에너지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돼 1만개 가까운 기업이 신재생에너지사업에 동참했다.

과유불급이라고 이쯤되면 보조금을 대폭 줄이던가 아니면 경제성이 검증된 일부 열원은 보급사업에서 제외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정부는 아직도 원안과 대동소이한 보급사업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보급사업은 미래를 위해 반드시 육성할 가치가 있는 열원이나 정부의 보조금이 없으면 고사할 수밖에 없는 열원에만 집중적으로 지원돼야 한다.
 
공공의무화사업, 신재생산업 활성화 대표제도
 
2004년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이 발효되면서 공공건물을 신축할 때는 신재생에너지이용이 의무화됐다. 올해는 이 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공공의무화사업은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산업의 발전을 이끌어 온 핵심제도다.

필자는 외국의 신재생에너지 전문가를 만날 때마다 이 제도를 소개해 왔는데 많은 이들이 이 제도를 부러워했다. 정부는 대상 건물의 종류 및 규모, 의무적용비율, 시공지침 등을 그때그때 시대상황에 맞게 조정하면서 제도시행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계속해 왔으며 이제는 대한민국의 신재생에너지산업을 대표할 수 있는 제도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수천개의 공공건물에 지열 등의 신재생에너지가 설치됐다. 아쉬운 점은 그 용량의 합계가 얼마이고 가동률은 얼마이며 여기서 생산된 열량이 얼마인지 아무 것도 발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투자한 돈이 얼만데 왜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일까? 설치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제도에 문제는 없는 것인지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닌가?
 
전문기업제도, 전면적 대수술 불가피
 
MB 정부시절 정부는 신재생에너지산업에 참여한 기업의 숫자, 종업원의 숫자를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숫자의 증가가 산업성장의 바로미터로 각인된 것이다. 이때 전문기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전문기업의 폭발적인 증가는 미자격·부적격 업체를 양산했고 과당경쟁, 부실시공, 하자다발로 이어지면서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우수기업제도’, ‘전문기업 등급제도’ 등을 통해 시장을 정상화하고자 했지만 이마저도 유야무야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지열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 적당한 지열전문기업의 숫자는 10여개라고 한다. 현재 지열전문기업은 약 3,000개다. 모든 산업의 초기 육성단계에서는 시장진입의 적절한 통제가 필수적이다. 이는 특혜도 아니고 규제도 아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쌓기 위한 필수요건일 뿐이다.

모든 산업은 소수의 우수기업이 이끌어 간다. 우수기업이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는 적절한 진입장벽이 반드시 필요하나 신재생에너지산업에서는 어떠한 진입장벽도 존재하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들은 결국 공멸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모두가 갖고 있다. 정부는 전문기업제도를 전면적으로 대수술해야 한다. 우선 자격조건을 강화하고 시장 규모에 적정한 업체를 선정해 우량기업으로 집중 육성해야 한다. 덤핑, 하자, 불법을 반복하는 업체는 시장에서 과감하게 퇴출시킬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RHO, 신재생산업 획기적 성장 계기이지만…
 
공공의무화사업을 통해 노하우를 축적한 정부는 민간부문으로의 보급확산을 위해 RHO(신재생열에너지의무화)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산업을 획기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과 동시에 많은 리스크를 안고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RHO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해야 할 조건들이 있다. 첫째, 설계 및 시공표준화와 자격기준 강화다. 현재 지열의 경우 설계를 하는 사람이나 시공을 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자격도 보유해야 할 의무가 없다. 부실설계와 부실시공이 반복되는 이유다.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설비인 만큼 충분한 자격과 능력을 갖춘 개인 및 기업들에게만 설계 및 시공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둘째, 성능보장장치 구축이다. 고가의 신재생에너지설비를 갖췄는데 성능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누가 설치하려고 하겠는가? 신재생에너지설비를 통해 생산된 열량을 자동으로 계산해 해당 관청에 매년 보고하고 설계조건에 미달하는 결과에 대해서는 원인규명과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서 끝까지 제대로 성능이 나올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과학적, 체계적인 신재생에너지 산업육성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 각각의 열원은 자신만의 특성이 있다. 모든 열원을 동일 선상에 놓고 경쟁을 시키는 것은 자동차산업, 철도산업, 항공산업, 선박산업을 동일한 틀에서 육성하는 것과 같다. 각각의 열원 고유의 특성에 맞는 제도를 수립, 시행해야 한다. RHO제도는 이러한 문제들을 치밀하게 연구, 준비해서 시행돼야 한다.
 
전세계 신재생시장 석권 핵심 ‘지열’
 
중국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인 2000년대 초반에 지열을 도입한 이래 매우 적극적으로 지열산업을 육성해왔다. 그 결과 현재 지열시장의 규모는 우리나라의 25배에 달하며 단일국가로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2015년 미국을 넘어 세계 최대의 지열대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간에 양적으로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도 나타나고 있다. 기초기술이 부족한 이유로 하자가 양산되고 있다. 일부 중국기업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우리나라 지열전문기업과의 협업을 추구하고 있다. 지열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지열은 30여년간 꾸준한 성장을 지속해 왔다. 우리나라는 냉방과 난방이 거의 대등한 몇 안 되는 나라임과 동시에 제조업과 건설업이 세계적인 수준에 와 있어 지열산업이 발전하는데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정부에서 약간의 정책적인 고려가 더해질 경우 세계적인 지열강국이 될 것이 너무나 분명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1,500만세대의 주택과 더불어 공공건물과 상업용건물은 지열이 성장하기에 충분한 내수시장의 토대가 될 것이며 이를 기반으로 한 세계시장 공략에 나설 경우 조만간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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